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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1일 (목) 18:40 기준 최신판

이경여(李慶餘, 1591년/1579년 경기도 - 1636년 7월 14일)는 조선시대 후기의 무신, 군인이다. 본관은 우계(羽溪)이고 자(字)는 대유(大有)이다. 전라도병마절도사 이복남의 아들이고,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이경보(李慶寶)의 형제이다. 인조반정에 참여한 공로로 1625년 정사원종공신3등(靖社原從功臣三等)에 책록되었다.

보인(保人) 신분으로 1613년(광해군 5년) 증광무과(增廣武科)에 장원(壯元)으로 급제하여 선전관, 판관, 비변사 낭청, 부사용 등을 역임했다. 1623년(광해군 15년) 3월 수문장으로 당일 숙직으로 있던 중 인조반정에 참여했다. 1623년(인조 1) 5월 제주판관으로 부임했다가 1년만에 면직되었고 1625년에는 정사원종공신 3등에 녹선되었다. 이후 부사과를 거쳐 1627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에 이르러 파직되었다가 부호군, 선전관 등을 거쳐 1631년(인조 9) 공청수사로 부임하였다. 공청수사 재직 시 근무중 음주와 남형, 전선 방납 방해 등의 이유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가 복직했다. 대구영장을 거쳐 가선대부 전라좌도수군절도사에 이르렀다.

가계[편집]

참고 항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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