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맹어호
더 많은 작업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는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뜻으로, 혹독한 정치가 백성에게 끼치는 해가 매우 크다는 것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예기(禮記)》 〈단궁 하(檀弓下)〉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1]
《예기》 〈단궁 하〉에 실린 이야기에서 나왔다.[4]
孔子過泰山側,有婦人哭於墓者而哀。夫子式而聽之,使子路問之,曰:「子之哭也,壹似重有憂者。」而曰:「然,昔者吾舅死於虎,吾夫又死焉,今吾子又死焉。」夫子曰:「何為不去也?」曰:「無苛政。」夫子曰:「小子識之,苛政猛於虎也。」
공자가 태산(泰山) 곁을 지나다가 무덤 앞에서 슬피 우는 부인을 만났다. 공자는 수레 앞의 가로나무를 잡고 몸을 숙여 예를 표하고(式) 그 울음을 듣다가, 자로(子路)를 시켜 “그대의 울음은 거듭 슬픈 일을 당한 사람 같소”라고 묻게 했다. 부인은 “그렇습니다. 전에 시아버지가 호랑이에게 죽었고, 남편도 호랑이에게 죽었으며, 이제 아들마저 호랑이에게 죽었습니다”라고 답했다. 공자가 “어째서 이곳을 떠나지 않소?”라고 묻자 부인은 “여기에는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기억해 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납다”라고 말했다.
한나라 정현(鄭玄)은 “而는 乃(이에)와 같고, 남편의 아버지를 舅라 한다”고 주석했다.[5] 원문의 ‘焉’은 ‘그것(호랑이)에게’라는 뜻으로, 남편과 아들도 호랑이에게 죽었다는 말이다. 이야기에는 그곳이 어느 나라였는지, 누구의 정치를 두고 한 말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통행본 《예기》에는 공자가 보낸 제자가 ‘자로’로 되어 있다. 이 이야기를 ‘자공(子貢)’이 물은 것으로 소개하는 글도 있는데, 이는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실린 다른 전승이다. 《공자가어》에서는 공자가 제(齊)나라로 가다가 태산 곁을 지났고, 부인은 무덤이 아니라 들에서 울었으며, 자공을 보내 묻게 했고, 공자의 말도 “가혹한 정치는 사나운 호랑이보다 사납다(苛政猛於暴虎)”로 되어 있다.[6] 《예기》의 원문에 ‘자공’을 넣어 인용하는 것은 두 전승을 섞은 것이다. 조선의 성종도 1482년 가뭄을 걱정하며 이 고사를 인용할 때 “자로를 보내 묻게 했다(使子路往問之)”고 했다.[7]
당나라 유종원은 〈포사자설〉에서 영주(永州)의 장씨(蔣氏) 집안 이야기를 전한다. 장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독사를 잡다가 죽었고 자신도 여러 번 죽을 뻔했지만, 뱀을 바치면 세금을 면해 주었기 때문에 그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유종원은 “공자가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납다’고 했을 때 나는 일찍이 이를 의심했는데, 이제 장씨를 보니 믿을 만하다(孔子曰:『苛政猛於虎也。』吾嘗疑乎是,今以蔣氏觀之猶信)”고 썼다.[2] 호랑이가 뱀으로 바뀌었을 뿐, 세금이 목숨을 건 위험보다 무섭다는 구조가 같다.
조선에서는 경연에서 《예기》를 강독하거나 수령의 가렴을 비판할 때 자주 인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苛政猛於虎’가 6건 나온다.
- 1482년(성종 13) 가뭄이 이어지자 성종은 “혹시 가혹한 정치가 있어 이렇게 된 것은 아닌가” 하며 이 고사를 들어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7]
- 1514년(중종 9) 조강에서 《예기》의 이 대목을 강독하던 시독관 임추(任樞)는 “백성에게서 가혹하게 거두어 권세가에 바치고 뒷날 벼슬을 얻을 밑천으로 삼는 수령이 모두 그러하다”며 수령을 잘 골라야 한다고 아뢰었다.[8]
- 1529년(중종 24) 석강에서 시강관 김희열(金希說)은 호랑이의 해는 급하지만 한 사람에 그치고 덫으로 막을 수도 있는 반면, 가혹한 정치의 해는 날로 깊어져 일족과 온 고을에 미치고 피할 곳도 없다고 풀이하고, 유종원의 〈포사자설〉을 함께 들었다.[9]
- 1607년(선조 40) 정인홍(鄭仁弘)은 상소에서 임진왜란 초기 영남의 “수령 가운데 호랑이보다 사나운 자가 많아, 태산의 곡소리가 고을마다 그러했다(南土守令猛於虎者多,泰山之哭,比邑皆是)”고 이 고사를 비틀어 썼다.[10]
- 성간(成侃)은 굶주린 여인의 참상을 읊은 〈아부행(餓婦行)〉에서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사납다는 이 가르침은 천고에 걸려 있다(苛政猛於虎。此訓千古揭)”고 했다.[11]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苛 | 가 | 가혹하다, 까다롭다 | 가혹한 |
| 政 | 정 | 정사, 정치 | 정치 |
| 猛 | 맹 | 사납다 | 사납다, 무섭다 |
| 於 | 어 | ~에, ~보다 | 비교를 나타냄(~보다) |
| 虎 | 호 | 범, 호랑이 | 호랑이 |
‘猛’의 본뜻은 ‘사납다’여서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납다’로 옮기는 것이 글자에 더 가깝지만, 표준국어대사전처럼 ‘무섭다’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 숫자 목표만 내려보내고 현장 사정을 듣지 않는 관리 방식은 가정맹어호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 흉년에도 세금을 줄이지 않자 사람들은 가정맹어호라며 고향을 떠났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가정맹어호”,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0%80%EC%A0%95%EB%A7%B9%EC%96%B4%ED%98%B8, 확인날짜=2026-09-26.
- ↑ 2.0 2.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苛政猛於虎”,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7323, 확인날짜=2026-09-26.
- ↑ 3.0 3.1 3.2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苛政は虎よりも猛し”,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8B%9B%E6%94%BF%E3%81%AF%E8%99%8E%E3%82%88%E3%82%8A%E3%82%82%E7%8C%9B%E3%81%97, 확인날짜=2026-09-26.
- ↑ 《예기》 〈단궁 하(檀弓下)〉.
- ↑ 정현 주, 《예기정의(禮記正義)》 〈단궁 하〉.
- ↑ 《공자가어(孔子家語)》 권9 〈정론해(正論解)〉.
- ↑ 7.0 7.1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144권, 성종 13년 8월 4일 경자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1308004_002, 확인날짜=2026-09-26.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21권, 중종 9년 11월 29일 정해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0911029_001, 확인날짜=2026-09-26.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66권, 중종 24년 9월 12일 갑진 5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2409012_005, 확인날짜=2026-09-26.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211권, 선조 40년 5월 15일 정축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4005015_002, 확인날짜=2026-09-26.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성간, 《진일유고(眞逸遺稿)》 권2 〈아부행(餓婦行)〉,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65A_0030_010_0220,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