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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륵(鷄肋)은 닭의 갈비라는 뜻으로, 그다지 큰 쓸모는 없으나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몸이 몹시 약한 사람을 비유하는 뜻도 있다.[1]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조조(曹操)가 한중(漢中)에서 유비(劉備)와 대치하다 철군을 고민하며 내린 한마디에서 나왔다.

닭 갈비뼈에는 먹을 만한 살이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그냥 버리기에는 조금 아깝다. 이처럼 가지고 있자니 별 이득이 없고 내버리자니 아쉬운 물건·자리·사업·사람을 두고 쓴다. “계륵 같은 존재”, “계륵 신세”처럼 흔히 부정적인 평가로 쓰인다.

중국어에서도 ‘鸡肋(jīlèi)’를 같은 뜻으로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맛이 닭 갈비처럼 밍밍하다’는 ‘味如雞肋’를 표제어로 올려 “맛이 없거나 실속이 적은 것”을 비유한다고 풀이한다.[2] 일본어에서는 ‘鶏肋(けいろく)’라고 하며, 《일본국어대사전》은 14세기 후반의 군담 《태평기(太平記)》 권14를 첫 용례로 든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鷄 계 닭 닭
肋 륵 갈빗대 갈비, 갈비뼈

《삼국지》 배송지 주의 《구주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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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이른 기록은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 〈위서 무제기(武帝紀)〉에 배송지(裴松之)가 주석으로 인용한 《구주춘추(九州春秋)》이다. 《구주춘추》는 서진(西晉)의 사마표(司馬彪)가 지은 역사서로, 지금은 전하지 않고 인용문으로만 남아 있다. 〈무제기〉 본문에 따르면 건안(建安) 24년(219) 정월 하후연(夏侯淵)이 양평(陽平)에서 유비와 싸우다 전사하자, 조조는 3월에 장안에서 야곡(斜谷)을 지나 양평까지 나아갔으나 유비가 험한 지형에 의지해 막았고, 조조는 5월에 군사를 이끌고 장안으로 돌아갔다.[4] 배송지는 그 사이에 다음 기록을 붙였다.

《九州春秋》曰:時王欲還,出令曰「雞肋」,官屬不知所謂。主簿楊脩便自嚴裝,人驚問脩:「何以知之?」脩曰:「夫雞肋,棄之如可惜,食之無所得,以比漢中,知王欲還也。」

[4]

“그때 위왕(조조)은 돌아가려고 ‘계륵’이라는 영을 내렸는데, 관속들은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주부(主簿) 양수(楊脩)가 곧바로 행장을 꾸리자, 사람들이 놀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다. 양수가 말했다. ‘닭 갈비는 버리자니 아까운 듯하고 먹자니 얻을 것이 없다. 이를 한중에 견주었으니 왕께서 돌아가려 하심을 알았다.’”

곧 ‘계륵’은 조조가 한중이라는 땅, 또는 한중을 두고 벌인 싸움의 처지를 스스로 빗댄 말이고, 양수는 그 속뜻을 먼저 읽어 낸 것이다.

《후한서》 양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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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 송(宋)의 범엽(范曄)이 지은 《후한서(後漢書)》 권54 〈양진열전(楊震列傳)〉에 딸린 양수전에도 같은 이야기가 실렸다.[5]

及操自平漢中,欲因討劉備而不得進,欲守之又難為功,護軍不知進止何依。操於是出教,唯曰「雞肋」而已。外曹莫能曉,修獨曰:「夫雞肋,食之則無所得,棄之則如可惜,公歸計決矣。」乃令外白稍嚴,操於此回師。

[5]

“조조가 한중을 평정한 뒤 이어서 유비를 치려 했으나 나아갈 수 없었고, 지키자니 공을 세우기 어려워 호군(護軍)도 나아갈지 머물지 몰랐다. 이에 조조가 교령을 내렸는데 오직 ‘계륵’이라고만 했다. 관원들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으나 양수만이 ‘닭 갈비는 먹자니 얻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듯하니, 공께서 돌아가기로 마음을 정하셨다’고 했다. 그러고는 밖에 알려 행장을 꾸리게 했고, 조조는 이 일로 군사를 돌렸다.”

《후한서》는 ‘먹자니’와 ‘버리자니’의 순서가 《구주춘추》와 반대이고, 조조가 나아가지도 지키지도 못하는 처지였다는 설명을 앞에 덧붙였다. 표준국어대사전과 일본의 사전들은 출전을 《후한서》 양수전으로 적지만,[1][3] 《후한서》는 5세기 저작이므로 서진의 《구주춘추》가 더 이른 기록이다. 《성어전》은 《구주춘추》를 출전으로 든다.[2]

양수의 죽음: 정사와 《삼국지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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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에서 양수는 계륵 일로 곧바로 죽지 않았다. 《삼국지》 〈진사왕식전(陳思王植傳)〉은 조조가 후계 문제의 변고를 염려했는데, 양수가 재주와 꾀가 많고 원소(袁紹) 집안의 외조카이기도 해서 죄를 씌워 죽였다고 적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전략(典略)》은 그 시점을 “건안 24년 가을(二十四年秋)”로 적고, 양수가 앞뒤로 교령을 누설하고 제후와 사귄 것을 죄목으로 들었다. 양수는 조조의 셋째 아들 조식(曹植)의 측근이었다.[6] 《후한서》도 조조가 양수의 영리함을 꺼렸고 원술(袁術)의 외조카여서 뒷날의 걱정거리로 여겨 일을 빌미로 죽였다고 하고, 주석에 인용된 《속한서(續漢書)》는 양수가 조식과 술에 취해 사마문(司馬門)으로 나간 일을 들었다.[5] 조조가 한중에서 돌아온 것이 그해 5월이므로, 양수는 철군 뒤 몇 달이 지나 죽은 셈이다.

흔히 알려진 “계륵 때문에 양수가 목이 달아났다”는 이야기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72회의 줄거리이다. 연의에서는 조조가 저녁에 들어온 닭국 그릇 속 닭 갈비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하후돈(夏侯惇)이 야간 암호(夜間口號)를 묻자 무심코 “계륵! 계륵!”이라고 한다. 이를 들은 양수는 “계륵이란 먹자니 고기가 없고 버리자니 맛이 있다(雞肋者,食之無肉,棄之有味)”며 짐을 꾸리게 하고, 조조는 “감히 말을 지어내 군심을 어지럽히느냐(汝怎敢造言,亂我軍心)”며 그 자리에서 양수를 베게 한다. 그 뒤 조조는 싸움에서 위연(魏延)이 쏜 화살에 인중을 맞아 앞니 두 개가 부러지고서야 양수의 말을 떠올려 그 시신을 거두어 후히 장사 지내고 군사를 돌린다.[7] 닭국, 암호, 즉결 처형, 위연의 화살은 모두 정사에는 없는 소설의 각색이다.

또 다른 뜻: 약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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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국어대사전의 「2」 뜻인 ‘몸이 몹시 약한 사람’은 《진서(晉書)》 〈유령전(劉伶傳)〉의 일화에서 나왔다.[1][3]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유령(劉伶)은 술에 취해 어떤 사람과 시비가 붙었는데, 그 사람이 소매를 걷고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자 이렇게 말했다.

伶徐曰:「鷄肋不足以安尊拳。」其人笑而止。

[8]

“유령이 천천히 말했다. ‘닭 갈비 같은 이 몸은 당신의 주먹을 받아 줄 만하지 못하오.’ 그 사람은 웃고 그만두었다.” 여기서 계륵은 삐쩍 마른 자기 몸을 낮추어 이른 말이다.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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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문인들은 계륵을 흔히 미련이 남는 벼슬자리에 빗대었다. 황준량(黃俊良)은 “검은 인끈으로는 흰머리가 늘어가는 것을 막기 어렵고, 뜬구름 같고 계륵 같은 벼슬에는 이미 마음이 없다(黑綬難禁白髮侵。浮雲鷄肋已無心)”라고 읊었다.[9] 기대승(奇大升)도 만사(挽詞)에서 고인을 두고 “계륵 같은 벼슬에 오래 싫증 나 인끈을 풀려 했고, 순채국을 자주 떠올리며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다(鷄肋久厭思解紱。蓴羹頻憶擬歸田)”라고 썼다.[10] ‘순채국’은 서진의 장한(張翰)이 고향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그리워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다는 고사를 가리킨다.[11]

계륵은 뒤에 책 이름에도 쓰였다. 북송 조보지(晁補之)의 문집은 《계륵집(雞肋集)》이고, 남송 초의 장작(莊綽)은 잡기를 모은 책을 《계륵편(雞肋編)》이라 이름 붙이고 그 첫머리에 조조가 한중에서 ‘계륵’이라는 교령을 내린 이야기를 적었다.[12][13]

  • 지원이 끝난 구형 서버는 이제 계륵이다. 걷어내자니 아직 돌아가는 업무가 있고, 두자니 보안 패치가 나오지 않는다.
  • 한 번도 쓰지 않은 부가 서비스 요금제가 계륵처럼 남아 있다.
  • 금리가 오르자 예전에 들어 둔 저금리 예금이 계륵이 되었다.
  • 《후한서》에 따르면 양수가 죽은 뒤 조조가 아버지 양표(楊彪)를 보고 “공은 어찌 이리 여위었소?” 하고 묻자, 양표는 “김일제(金日磾) 같은 선견지명이 없어 부끄러운데, 그래도 늙은 소가 송아지를 핥는 사랑은 남아 있습니다(猶懷老牛舐犢之愛)”라고 답했고, 조조는 낯빛을 고쳤다고 한다. 자식 사랑을 이르는 노우지독(老牛舐犢)이 여기서 나왔다.[5]
  • 드라마 《대장금》(MBC, 2003) 제4회에는 어린 장금이 궁녀 선발 시험에서 조조가 내린 암호를 묻는 문제에 “계륵입니다. 닭의 갈비는 버리자니 아깝지만 먹자니 먹을 것이 없습니다”라고 답하는 장면이 있다.[14]
  •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合肥)에는 조조가 이곳에 주둔할 때 약재를 넣어 고아 먹고 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붙은 향토 요리 ‘조조닭(曹操鸡)’이 있다. 이 이야기는 전설로 전해질 뿐 사서에 나오지는 않는다.[15]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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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여계륵(味如雞肋): 맛이 닭 갈비와 같다는 뜻으로, 맛이 없거나 실속이 적은 것.[2]
  • 노우지독(老牛舐犢): 늙은 소가 송아지를 핥는다는 뜻으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양수의 아버지 양표의 말에서 나왔다.
  1.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계륵”,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3%84%EB%A5%B5, 확인날짜=2026-09-28.
  2. ↑ 2.0 2.1 2.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味如雞肋”,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2770, 확인날짜=2026-09-28.
  3. ↑ 3.0 3.1 3.2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鶏肋”,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B6%8F%E8%82%8B, 확인날짜=2026-09-28.
  4. ↑ 4.0 4.1 진수(陳壽), 《삼국지(三國志)》 권1 〈위서(魏書) 무제기(武帝紀)〉 및 배송지(裴松之) 주.
  5. ↑ 5.0 5.1 5.2 5.3 범엽(范曄), 《후한서(後漢書)》 권54 〈양진열전(楊震列傳)〉 부(附) 양수전(楊修傳).
  6. ↑ 진수, 《삼국지》 권19 〈위서 진사왕식전(陳思王植傳)〉 및 배송지 주에 인용된 《전략(典略)》.
  7. ↑ 나관중,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72회.
  8. ↑ 《진서(晉書)》 권49 〈유령전(劉伶傳)〉.
  9. ↑ 황준량(黃俊良), 〈부차조목운(復次曹牧韻)〉, 《금계집(錦溪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169A_0110_010_1090, 확인날짜=2026-09-28.
  10. ↑ 기대승(奇大升), 〈만인(挽人)〉, 《고봉집(高峯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185A_0100_010_0580, 확인날짜=2026-09-28.
  11. ↑ 《진서(晉書)》 〈장한전(張翰傳)〉.
  12. ↑ 장작(莊綽), 《계륵편(雞肋編)》 권상.
  13. ↑ 조보지(晁補之), 《계륵집(雞肋集)》.
  14. ↑ 참고: “[대장금(大長今)] 04 - MBC대본”, 다음 카페 작가지망생의 미로찾기, https://m.cafe.daum.net/ygy2317/8Dzy/27, 확인날짜=2026-09-28.
  15. ↑ 참고: “三国美食曹操鸡”, 중국신문망(中新网), 2013-02-16, https://www.chinanews.com.cn/hwjy/2013/02-16/4566019.shtml,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