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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복격양(鼓腹擊壤)은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며 노래한다는 뜻으로, 태평한 세월을 즐김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중국 요(堯)임금 때 한 노인이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며 노래했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1]

먹을 것이 넉넉해 배를 두드리고(鼓腹), 흥에 겨워 땅을 치며(擊壤) 노래하는 백성의 모습으로 태평성대를 그린 말이다. 이 노래를 ‘격양가(擊壤歌)’라 하며, 표준국어대사전은 “풍년이 들어 농부가 태평한 세월을 즐기는 노래”로 풀이한다.[2] 격양가의 핵심은 백성이 임금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만큼 편안하게 산다는 데 있다.

앞뒤를 바꾼 ‘격양고복(擊壤鼓腹)’도 같은 뜻으로 쓰였고, 중국어에서는 이 형태가 사전에 올라 있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鼓 고 북, 북을 치다 두드리다
腹 복 배 부른 배
擊 격 치다 치다
壤 양 흙, 땅 땅, 또는 놀이에 쓰는 나무 조각

‘격양(擊壤)’의 ‘壤’은 보통 땅이나 흙덩이로 풀지만, 다른 풀이도 있다.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은 ‘壤’을 흙으로 만든 악기로 보는 설을 소개하고, 진(晉)나라 주처(周處)의 《풍토기(風土記)》를 근거로 신발 모양의 나무 조각을 땅에 세워 두고 멀리서 다른 나무 조각을 던져 맞히는 옛 놀이를 ‘격양’이라 했다고 설명한다.[4]

《논형》의 격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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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양가 이야기가 실린 가장 이른 현존 문헌은 후한 왕충(王充)의 《논형(論衡)》이다. 〈예증(藝增)〉 편은 《논어》의 “크도다, 요의 임금 됨이여! 넓고 넓어 백성이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구나”를 든 뒤 이렇게 인용한다.[5]

傳曰:「有年五十擊壤於路者,觀者曰:大哉,堯德乎!擊壤者曰:吾日出而作,日入而息,鑿井而飲,耕田而食,堯何等力!」

“전하는 말에, 쉰 살 된 사람이 길에서 땅을 치고 있었는데, 구경하던 사람이 ‘크도다, 요임금의 덕이여!’라고 하자 땅을 치던 사람이 말했다. ‘나는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며, 우물 파서 마시고 밭 갈아 먹을 뿐이니, 요임금이 무슨 힘을 썼단 말이오!’”

왕충은 이 이야기를 ‘민무능명(民無能名)’의 증거로 드는 것이 과장이라고 비판했다. 구경꾼은 요임금의 덕을 알았으니 백성이 모두 몰랐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는 〈감허(感虛)〉와 〈수송(須頌)〉에도 나오는데, 여기서는 ‘길(路)’이 ‘길바닥(塗)’으로 되어 있다.[6]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고사를 “한 노인이 … 요임금의 덕을 찬양하고 태평성대를 즐겼다”고 풀었으나,[1] 원문에서 요임금의 덕을 찬양한 것은 구경꾼이고, 노인은 오히려 임금의 힘이 자기와 무슨 상관이냐고 되물었다. 임금의 덕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편안하다는 데 이 노래의 뜻이 있다.

《제왕세기》와 그 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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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西晉)의 황보밀(皇甫謐)이 지은 《제왕세기(帝王世紀)》는 지금 전하지 않지만, 여러 유서에 인용되어 남아 있다. 《태평어람》 권80이 인용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7]

天下大和,百姓無事。有八十老人擊壤歌于道,觀者嘆曰:「大哉,帝之德也!」老人曰:「吾日出而作,日入而息,鑿井而飲,耕田而食,帝何力有于我哉!」

나이가 ‘쉰’에서 ‘여든’으로 바뀌고, 끝 구도 ‘요임금이 무슨 힘을 썼나’에서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슨 상관인가’로 바뀌었다. 송나라 곽무천(郭茂倩)의 《악부시집(樂府詩集)》 권83은 같은 《제왕세기》를 “여든이나 아흔 살 된 노인(八九十老人)”, “帝何力於我哉”로 인용한다.[8]

《십팔사략》과 ‘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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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두드린다(鼓腹)’는 표현은 본래 《장자(莊子)》 〈마제(馬蹄)〉에서 옛 혁서씨(赫胥氏) 시대의 백성을 “음식을 입에 물고 즐거워하며 배를 두드리며 노닐었다(含哺而熙,鼓腹而遊)”고 한 데서 왔다.[9] 요임금 이야기와는 따로 있던 말이다.

원나라 증선지(曾先之)의 《십팔사략(十八史略)》은 요임금이 강구(康衢)에서 아이들의 노래를 듣는 《열자》의 이야기와 격양가를 한데 이어, “노인이 음식을 입에 물고 배를 두드리며 땅을 치면서 노래했다(有老人含哺鼓腹,擊壤而歌)”고 하고 노래 끝 구를 “帝力何有於我哉”로 적었다.[10] ‘고복’과 ‘격양’이 한 장면에 놓인 것은 이 책에서 굳어졌으며, 《디지털 대사천》도 고복격양을 《십팔사략》 등에 보이는 고사로 설명한다.[11] 강구요와 격양가가 문헌마다 어떻게 다른지는 강구연월 문서의 대조표에 정리했다.

네 글자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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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글자로 붙여 쓴 예는 《십팔사략》보다 훨씬 이르다. 남조 양나라 왕승유(王僧孺)는 〈위위옹주치사표(爲韋雍州致仕表)〉에서 물러나 쉬게 해 달라고 청하며 “땅 치고 배 두드리며 지내게 해 주신다면 그 은혜가 오히려 크다(擊壤鼓腹,其賜猶多)”고 했다.[12] 수나라 말 조군언(祖君彦)이 이밀(李密)을 위해 지은 격문(617)은 옛 성왕의 다스림 아래 “모두가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며 우물 파고 밭을 갈았다(莫不鼓腹擊壤,鑿井耕田)”고 했다.[13] 《성어전》은 ‘擊壤鼓腹’의 용례로 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의 〈여배훈서(與裴塤書)〉를 든다.[3]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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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이규보(李奎報)는 〈사가재기(四可齋記)〉에서 언젠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 “태평한 시절의 농부가 되어 땅을 치고 배를 두드리며 임금의 교화를 노래하겠다(作大平農叟。擊壤鼓腹。歌詠聖化)”고 했다.[14] 조선에서는 《십팔사략》을 늘린 《십구사략(十九史略)》으로 이 대목을 익혔고, 문집과 상소에 태평을 기리는 상투어로 자주 썼다.

다른 언어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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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어: ‘擊壤鼓腹’이 사전에 올라 있으며, ‘含哺鼓腹’(함포고복)도 같은 장면을 가리킨다. 《성어전》은 ‘含哺鼓腹’을 《장자》 〈마제〉에 근거한 말로 본다.[15] 격양가 자체는 ‘擊壤歌’로, 《성어전》은 그 출전을 《논형》 〈예증〉으로 든다.[16]
  • 일본어: ‘鼓腹撃壌(こふくげきじょう)’이라 하며,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은 칙찬 한시집 《경국집(経国集)》(827)의 “鼓腹撃壌之民”을 첫 용례로 든다.[11] 《십팔사략》의 이 대목은 일본 고등학교 한문 교재에 자주 실리는 글로 알려져 있다.[17][18]
  • 이만수(李晩秀)의 〈함포고복격양실기(含哺鼓腹擊壤室記)〉에 따르면, 일곱 살 된 동궁이 서연에서 《십구사략》 〈제요기(帝堯紀)〉를 강독한 뒤 네 폭의 글씨를 써서 내렸고, 그중 “含哺鼓腹擊壤” 여섯 자를 받은 빈객 서영보(徐榮輔)는 이를 서재 편액으로 걸었다.[19]
  • 1837년(헌종 3) 4월 5일, 헌종은 입시한 신하들에게 “함포고복하며 땅을 치고 노래하다(含哺鼓腹擊壤而歌)”를 제목으로 부(賦)를 지어 쓰게 했다.[20]
  •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鼓腹擊壤’과 ‘擊壤鼓腹’이 한 건도 없고, 《승정원일기》에는 ‘鼓腹擊壤’이 2건 있다.[21]
  • 풍년이 들자 마을 사람들은 고복격양하며 잔치를 열었다.
  • 대형 장애 없이 한 해를 넘긴 운영팀은 오랜만에 고복격양의 연말을 보냈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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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포고복(含哺鼓腹): 잔뜩 먹고 배를 두드린다는 뜻으로, 먹을 것이 풍족하여 즐겁게 지냄.
  • 격양가(擊壤歌): 풍년이 들어 농부가 태평한 세월을 즐기는 노래.
  • 강구연월(康衢煙月): 번화한 거리의 평화로운 풍경이라는 뜻으로, 태평한 세상.
  • 태평성대(太平聖代): 어진 임금이 잘 다스려 태평한 세상이나 시대.
  • 국태민안(國泰民安):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함.
  • 비옥가봉(比屋可封): 집집마다 덕행이 있어 모두 표창할 만하다는 뜻으로, 나라에 어진 사람이 많음.
  • 반대 의미: 도탄지고(塗炭之苦), 삼순구식(三旬九食)
  1.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고복격양”,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3%A0%EB%B3%B5%EA%B2%A9%EC%96%91, 확인날짜=2026-10-03.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격양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2%A9%EC%96%91%EA%B0%80, 확인날짜=2026-10-03.
  3. ↑ 3.0 3.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擊壤鼓腹”,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0096, 확인날짜=2026-10-03.
  4. ↑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撃壌”,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92%83%E5%A3%8C, 확인날짜=2026-10-03.
  5. ↑ 왕충(王充), 《논형(論衡)》 〈예증(藝增)〉.
  6. ↑ 왕충(王充), 《논형(論衡)》 〈감허(感虛)〉·〈수송(須頌)〉.
  7. ↑ 이방(李昉) 등, 《태평어람(太平御覽)》 권80 〈황왕부(皇王部) 5·제요 도당씨(帝堯陶唐氏)〉에 인용된 황보밀(皇甫謐) 《제왕세기(帝王世紀)》.
  8. ↑ 곽무천(郭茂倩), 《악부시집(樂府詩集)》 권83 〈잡가요사(雜歌謠辭) 1·격양가(擊壤歌)〉.
  9. ↑ 《장자(莊子)》 〈마제(馬蹄)〉.
  10. ↑ 증선지(曾先之), 《십팔사략(十八史略)》 권1 〈제요 도당씨(帝堯陶唐氏)〉.
  11. ↑ 11.0 11.1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鼓腹撃壌”,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BC%93%E8%85%B9%E6%92%83%E5%A3%8C, 확인날짜=2026-10-03.
  12. ↑ 왕승유(王僧孺), 〈위위옹주치사표(爲韋雍州致仕表)〉, 《예문유취(藝文類聚)》 권18 인용.
  13. ↑ 조군언(祖君彦), 〈위이밀격낙주문(為李密檄洛州文)〉, 《전당문(全唐文)》 권132.
  14. ↑ 이규보(李奎報), 〈사가재기(四可齋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04A_0250_010_0030, 확인날짜=2026-10-03.
  15.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含哺鼓腹”,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1868, 확인날짜=2026-10-03.
  16.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擊壤歌”,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7998, 확인날짜=2026-10-03.
  17. ↑ 참고: “『鼓腹撃壌』書き下し文・わかりやすい現代語訳と文法解説”, 마나페디아(マナペディア), https://manapedia.jp/text/1995, 확인날짜=2026-10-03.
  18. ↑ 참고: “鼓腹撃壌 十八史略 : 教科書 和訳 現代語訳”, 신신 제미널(新進ゼミ), https://shinshin-seminal.blog.jp/archives/13169861.html, 확인날짜=2026-10-03.
  19. ↑ 이만수(李晩秀), 〈함포고복격양실기(含哺鼓腹擊壤室記)〉, 《극원유고(屐園遺稿)》,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585A_0020_020_0110, 확인날짜=2026-10-03.
  20.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헌종 3년 4월 5일 임자, https://sjw.history.go.kr/id/SJW-I03040050-02000, 확인날짜=2026-10-03.
  2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鼓腹擊壤”·“擊壤鼓腹”, https://sillok.history.go.kr/;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검색 “鼓腹擊壤”, https://sjw.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