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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양장(九折羊腸)은 아홉 번 꺾인 양의 창자라는 뜻으로, 꼬불꼬불하고 험한 산길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같은 뜻으로 ‘구곡양장(九曲羊腸)’, 줄여서 ‘구절(九折)’이라고도 한다.[1]

양의 창자처럼 가늘고 구불구불하며, 아홉 번이나 꺾일 만큼 굽이가 많은 길을 가리킨다. 첩첩산중의 고갯길이나 비탈길을 묘사하는 말로 쓰고, 나아가 벼슬길이나 세상살이의 험난함, 일이 순탄하지 않고 곡절이 많음을 빗대는 데도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산길의 뜻만 싣지만, 조선 문헌에서부터 비유의 뜻이 두루 보인다.

중국어에서는 ‘九折羊腸’, ‘九曲羊腸’이 모두 옛 시문에 보이며, 오늘날에는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뜻하는 ‘양장소경(羊腸小徑)’, ‘양장소도(羊腸小道)’를 더 흔히 쓴다.[2] 일본어에서는 ‘羊腸(ようちょう)’과 ‘九折(きゅうせつ)’를 각각 구불구불한 산길이라는 뜻으로 쓰고, 두 말을 서로의 동의어로 풀이한다.[3][4]

‘구절’과 ‘양장’은 각각 따로 험한 길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두 말을 합친 네 글자 형태는 남조 송나라 때 이미 보인다.

구절: 왕존의 구절판 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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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九折)’은 한나라 때 익주(益州, 지금의 쓰촨) 공래산(邛郲山)에 있던 험한 비탈 ‘구절판(九折阪)’에서 나왔다. 《한서(漢書)》 〈왕존전(王尊傳)〉에 그 이야기가 있다.[5]

先是,琅邪王陽為益州刺史,行部至邛郲九折阪,歎曰:「奉先人遺體,柰何數乘此險!」後以病去。及尊為刺史,至其阪,問吏曰:「此非王陽所畏道邪?」吏對曰:「是。」尊叱其馭曰:「驅之!王陽為孝子,王尊為忠臣。」

“앞서 낭야 사람 왕양(王陽)이 익주 자사가 되어 관할 고을을 돌다가 공래의 구절판에 이르러 탄식하기를 ‘조상이 물려주신 몸을 받들고서 어찌 이런 험한 길을 자주 오르겠는가’ 하고는 뒤에 병을 핑계로 물러났다. 왕존(王尊)이 자사가 되어 그 비탈에 이르자 아전에게 ‘이것이 왕양이 두려워하던 길이 아니냐’고 물었다. 아전이 그렇다고 하자, 왕존은 마부를 꾸짖어 ‘몰아라! 왕양은 효자가 되었고 왕존은 충신이 되리라’ 하였다.” 이 일로 ‘질어(叱馭)’, 곧 마부를 꾸짖어 몬다는 말은 험한 길이나 어려운 임무를 마다하지 않고 나아가는 충신을 가리키는 전고가 되었다. 명나라 서협(徐熥)의 시에도 “구절양장에서 일찍이 마부를 꾸짖었다(九折羊腸曽叱馭)”는 구절이 있다.[6]

당나라 이백은 〈촉도난(蜀道難)〉에서 청니령(青泥嶺)을 두고 “청니령은 어찌 그리 굽이굽이 서렸는가, 백 걸음에 아홉 번 꺾이며 바위 봉우리를 휘감네(青泥何盤盤,百步九折縈巖巒)”라고 읊었다.[7]

양장: 조조의 〈고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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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羊腸)’은 태항산(太行山)의 험한 고개 ‘양장판(羊腸阪)’에서 쓰인 말이다. 조조(曹操)는 〈고한행(苦寒行)〉에서 “북으로 태항산에 오르니, 험하구나 어찌 그리 높은가. 양장판은 구불구불 꺾여, 수레바퀴가 이 때문에 부서지누나(北上太行山,艱哉何巍巍!羊腸阪詰屈,車輪為之摧)”라고 읊었다.[8]

네 글자 ‘九折羊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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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말을 합친 ‘九折羊腸’은 남조 송나라 포조(鮑照, 414?~466)의 〈석범명(石帆銘)〉에 나온다.[9]

二崤虎口,周王夙趨;九折羊腸,漢臣電驅。

“두 효산(崤山)의 호랑이 아가리 같은 길을 주나라 임금은 새벽부터 달려갔고, 아홉 번 꺾인 양 창자 같은 길을 한나라 신하는 번개처럼 몰았다.” 여기서 ‘한나라 신하’는 구절판에서 마차를 몰게 한 왕존을 가리킨다. 곧 ‘구절양장’은 왕존의 고사가 서린 구절판과, 조조의 시에서도 읊은 험한 고개 양장판을 한데 엮은 말로 볼 수 있다. 이후 송·명의 시문에도 이어지며, 명나라 유기(劉基)의 사 〈소막차(蘇幕遮)〉의 “완적의 길, 양주의 갈림길, 구절양장이 몇 번이나 수레바퀴를 그르쳤던가(阮公途,楊子路。九折羊腸,曾把車輪誤)”는 소설 《금병매(金瓶梅)》 제99회 첫머리에도 인용되었다. 완적(阮籍)이 길이 끝난 곳에서 통곡했다는 이야기, 양주(楊朱)가 갈림길에서 울었다는 이야기와 나란히 세상길의 험난함을 비유한 것이다.

‘九曲羊腸’은 이보다 늦게 남송과 금나라 이후의 시에서 보이는 변이형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이 동의어로 싣는 ‘구곡양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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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문인들은 이 말을 산길 묘사와 세상길의 비유 양쪽으로 즐겨 썼다. 한국고전종합DB 문집 원문에서 ‘九折羊腸’은 10여 건이 확인된다.[10]

  • 조위(曺偉, 1454~1503)는 〈과피반령(過皮盤嶺)〉에서 “한 해에 세 번 피반령을 넘으니, 구절양장이 촉도처럼 험하구나(一年三度過皮盤,九折羊腸蜀道難)”라고 읊었다. 피반령은 충청도 청주와 보은 사이의 고개이다.[11]
  • 《중종실록》 중종 36년(1541) 왕희언(王希彦) 등의 상소에는 절을 헐어 목재를 옮기는 어려움을 두고 “깊은 산 그윽한 골짜기, 양장처럼 아홉 번 꺾인 험한 길(羊腸九折之險)에서 끌고 지고 오르내리며 넘어지고 엎어지는 괴로움”이라는 구절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 확인되는 유일한 예이며, 어순이 ‘羊腸九折’로 바뀌어 있다.[12]
  • 오원(吳瑗)은 〈유풍악일기(遊楓嶽日記)〉에서 금강산 가는 길이 “구불구불한 것이 구절양장 같다(屈曲如九折羊腸)”고 적었다.[13]
  • 서형수(徐瀅修)는 형의 제문에서 “몸은 사방으로 뚫린 큰길에 있으나 마음은 구절양장의 길에 얽혀 있다(身處乎八達康莊之衢,而心纏乎九折羊腸之塗)”며 세상 사람들의 번민을 대비했다.[14]
  • 김귀주(金龜柱)는 벼슬길을 두고 “구절양장에 부서진 수레가 줄을 잇는다(九折羊膓,破輈相望)”고 경계했다. 조조의 시에서 수레바퀴가 부서지던 양장판이 벼슬길의 비유로 옮겨 온 예이다.[15]

곧 한국어의 ‘구절양장’은 포조 이래의 ‘九折羊腸’ 형태를 그대로 이은 것이고, 중국에서 뒤에 생긴 ‘九曲羊腸’은 표준국어대사전의 동의어 ‘구곡양장’으로 함께 들어와 있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九 구 아홉 여러 번, 매우 많이
折 절 꺾다 꺾이다, 굽이
羊 양 양 양
腸 장 창자 창자처럼 구불구불한 길
  • 구절양장 고갯길을 한참 오르자 산마루의 작은 절이 나타났다.
  • 이번 인증 심사는 요구 문서가 구절양장처럼 얽혀 있어, 체크리스트부터 정리해 두지 않으면 길을 잃기 쉽다.
  • 그의 인생은 구절양장의 연속이었지만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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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곡양장(九曲羊腸): 구절양장과 같은 말.
  • 양장소경(羊腸小徑): 좁고 구불구불한 오솔길. 현대 중국어에서 흔히 쓰는 형태.
  • 질어(叱馭): 왕존이 마부를 꾸짖어 험한 구절판을 몰게 한 고사. 험난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 충신.
  • 첩첩산중(疊疊山中): 여러 산이 겹겹이 둘러싼 깊은 산속.
  • 산전수전(山戰水戰): 세상일의 온갖 어려움을 다 겪음.
  • 진퇴양난(進退兩難):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는 어려운 처지.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구절양장”,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5%AC%EC%A0%88%EC%96%91%EC%9E%A5, 확인날짜=2026-09-27.
  2.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羊腸小徑”,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7820, 확인날짜=2026-09-27.
  3.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羊腸”,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BE%8A%E8%85%B8, 확인날짜=2026-09-27.
  4.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九折”,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9%9D%E6%8A%98, 확인날짜=2026-09-27.
  5. ↑ 반고, 《한서(漢書)》 권76 〈왕존전(王尊傳)〉.
  6. ↑ 서협(徐熥), 〈증왕군밀민부(贈王君密民部)〉, 《만정집(幔亭集)》 권9.
  7. ↑ 이백(李白), 〈촉도난(蜀道難)〉.
  8. ↑ 조조(曹操), 〈고한행(苦寒行)〉.
  9. ↑ 포조(鮑照), 〈석범명(石帆銘)〉, 《포명원집(鮑明遠集)》 권10.
  10. ↑ 한국고전종합DB 문집 원문 검색 “九折羊腸”,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
  11. ↑ 조위, 〈과피반령(過皮盤嶺)〉, 《매계집(梅溪集)》 권2,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83A_0040_010_1070, 확인날짜=2026-09-27.
  1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94권, 중종 36년 3월 16일 임인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3603016_002, 확인날짜=2026-09-27.
  13. ↑ 오원, 〈유풍악일기(遊楓嶽日記)〉, 《월곡집(月谷集)》 권10,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515A_0100_010_0030, 확인날짜=2026-09-27.
  14. ↑ 서형수, 〈제백씨판서공문(祭伯氏判書公文)〉, 《명고전집(明皐全集)》 권13,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582A_0140_010_0120, 확인날짜=2026-09-27.
  15. ↑ 김귀주, 〈상백재종형(上伯再從兄) 경자 2월 3일〉, 《가암유고(可庵遺稿)》 권10,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1116A_0100_010_0150,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