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의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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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의포식(暖衣飽食)은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는다는 뜻으로, 입고 먹는 것이 넉넉하게 지냄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줄여서 ‘난포(暖飽)’라고도 한다.[1]
앞뒤를 바꾼 ‘포식난의(飽食暖衣)’와 같은 뜻이다. 의식(衣食) 걱정이 없는 넉넉한 생활을 가리키는데, 일하지 않고 편히 먹고 입는 사람을 꼬집거나, 물질은 넉넉하지만 정신이 해이해진 상태를 비판하는 맥락에서도 자주 쓴다. 한국어에서는 두 형태를 모두 쓰고, 일본어에서는 ‘暖衣飽食’ 쪽이 일반적이다.
옛 문헌에서는 ‘暖’ 대신 같은 뜻의 ‘煖’을 써서 ‘煖衣飽食’으로 적는 경우가 많다.
‘飽食暖衣’ 형태의 대표 출전인 《맹자》 〈등문공 상〉의 구절은 포식난의 문서에서 다룬다. ‘暖衣飽食’ 순서로는 다음 두 곳이 이르다.
《묵자(墨子)》 〈천지 중(天志中)〉은 하늘의 뜻을 따라 다스리면 형벌과 정치가 바로잡히고 백성이 화합하며 나라가 부유해진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2]
則刑政治,萬民和,國家富,財用足,百姓皆得煖衣飽食,便寍無憂。
“형벌과 정치가 다스려지고 만백성이 화합하며, 나라가 부유하고 재용이 넉넉하여, 백성이 모두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으며 편안하여 근심이 없게 된다.” 《맹자》가 ‘포식난의’를 교화가 없으면 짐승에 가까워지는 상태로 말한 것과 달리, 《묵자》는 ‘난의포식’을 좋은 정치가 이룬 결과로 말했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도 이 구절을 ‘暖衣飽食’의 출전으로 든다.[3]
한나라 유향(劉向)의 《설원(說苑)》 〈신술(臣術)〉에는 제나라 재상 안자(晏子)의 일화가 있다. 안자가 낡은 수레에 둔한 말을 매고 조회에 나오자 경공(景公)이 녹봉이 적어서냐고 물었다. 안자는 이렇게 답했다.[4]
賴君之賜,得以壽三族及國交遊皆得生焉,臣得暖衣飽食,敝車駑馬,以奉其身,於臣足矣。
“임금님의 은혜로 삼족과 나라 안의 벗들까지 모두 살아갈 수 있고, 신은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으며 낡은 수레와 둔한 말로 몸을 받드니 신에게는 넉넉합니다.” 경공이 좋은 수레와 말을 보내자 안자는 세 번이나 돌려보내며, 재상이 사치하면 백성의 사치를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은 이 《설원》 〈신술〉을 ‘暖衣飽食’의 참고 문헌으로 든다.[5]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煖衣飽食’이 2건 있으며, 모두 성종 때 승려를 비판하는 말 속에 나온다. 1476년(성종 7) 도승지 현석규(玄碩圭)는 군역을 피해 승려가 되는 사람이 많다며 승도는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으며(煖衣飽食)” 아무 역도 지지 않는다고 했다.[6] 1485년(성종 16) 흉년에 홍문관 부제학 안처량(安處良) 등은 “승도는 곡식을 많이 쌓아 두고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는데, 우리 백성은 지게미와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하여 굶어 죽게 되었다(僧徒多積穀粟,煖衣飽食;吾民不厭糟糠,將爲餓殍)”며 승려에게 진휼하지 말자고 했다. 성종은 “중도 사람이다. 굶어 죽게 되었는데 어찌 구하지 않겠는가(僧亦人也,將至餓死,則獨不救之乎)”라며 이 말을 물리쳤다.[7]
- 난의포식에 젖은 사람은 남의 굶주림을 헤아리기 어렵다.
- 큰 사고 없이 몇 년을 보낸 조직일수록 난의포식에 안주하지 않도록 정기 점검을 거르지 말아야 한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난의포식”,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2%9C%EC%9D%98%ED%8F%AC%EC%8B%9D, 확인날짜=2026-10-03.
- ↑ 《묵자(墨子)》 〈천지 중(天志中)〉.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暖衣飽食”,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5153, 확인날짜=2026-10-03.
- ↑ 유향(劉向), 《설원(說苑)》 권2 〈신술(臣術)〉.
- ↑ 5.0 5.1 5.2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暖衣飽食”,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9A%96%E8%A1%A3%E9%A3%BD%E9%A3%9F,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68권, 성종 7년 6월 5일 병자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0706005_003,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181권, 성종 16년 7월 4일 임자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1607004_003,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