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야청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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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야청청(獨也靑靑)은 홀로 푸르다는 뜻으로, 남들이 모두 절개를 꺾는 상황 속에서도 홀로 절개를 굳세게 지키는 것을 비유하는 한자성어이다.[1]
다른 나무들이 잎을 떨구는 한겨울에도 소나무와 잣나무만은 푸른빛을 잃지 않는다는 데서, 어지러운 세상이나 모두가 변절하는 때에 홀로 뜻을 지키는 사람을 기리는 말로 쓴다. 한국에서는 사육신 성삼문(成三問)의 시조 끝 구절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가운데 ‘也’는 뜻 없이 말을 고르는 어조사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독야-청청’처럼 끊지 않고 한 단어로 올려 두었다.[1] 이 네 글자는 중국어 사전에는 성어로 올라 있지 않으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에도 표제어가 없다. 중국에서는 같은 뜻으로 ‘세한송백(歲寒松柏)’을 흔히 쓴다.[2]
네 글자의 바탕은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에서 공자의 입을 빌려 한 말이다.[3]
受命於地,唯松柏獨也在,冬夏青青;受命於天,唯舜獨也正,幸能正生,以正衆生。
“땅에서 목숨을 받은 것 가운데 오직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홀로 제 모습을 지켜 겨울에도 여름에도 푸르고, 하늘에서 목숨을 받은 것 가운데 오직 순(舜)만이 홀로 바르니, 다행히 스스로의 삶을 바르게 하여 뭇 삶을 바르게 할 수 있었다.”[3] 흐르는 물이 아니라 고요히 멈춘 물에 비추어 보아야 제 모습이 보인다는 비유에 이어지는 대목으로, 외부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본성을 지키는 것을 소나무·잣나무와 순임금에 빗댔다.
원문은 “홀로(獨也) 있어(在) 겨울에도 여름에도 푸르다(冬夏青青)”로 이어지며, ‘獨也靑靑’이라는 네 글자가 붙어 있지는 않다. 이것을 네 글자로 줄여 쓴 것은 한국 문인들이다. 고려의 이규보(李奎報)는 채송년(蔡松年)에게 자(字)를 지어 주며 “전(傳)에 ‘하늘에서 명을 받은 것 가운데 오직 송백만이 홀로 푸르다(受命於天,唯松柏獨也靑靑)’고 했다”고 썼는데, 《장자》의 ‘땅(地)’을 ‘하늘(天)’로 적고 ‘在冬夏’를 뺀 채 인용했다.[4] 성현(成俔)도 〈세한정기(歲寒亭記)〉에서 “만물이 하늘에서 명을 받아 살지만 송백만이 그 바름을 얻어 홀로 푸르러(獨也靑靑) 사철을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5]
한국고전종합DB 문집 원문 기준으로 ‘獨也靑靑’은 30건 넘게 검색되며, 대부분 조선 문인의 글이다.[6] 반면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는 검색되지 않는다.[7]
송백을 절개의 상징으로 삼은 더 오랜 전거는 《논어》 〈자한(子罕)〉의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이다.[2] 이규보도 앞의 글에서 《장자》의 구절에 이어 이 말을 함께 들었고, 조선 문인들은 두 구절을 한데 엮어 ‘독야청청’을 절개의 말로 썼다.
독야청청을 한국인에게 가장 널리 알린 것은 성삼문의 시조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성삼문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되기 전에 지은 것으로, 《청구영언》을 비롯한 여러 가집에 전한다.[8]
이 몸이 죽어가셔 무어시 될고 ᄒᆞ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야이셔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ᄒᆞᆯ 졔 독야청청(獨也靑靑)ᄒᆞ리라
흰 눈이 온 천지에 가득할 때, 곧 세상이 모두 한쪽으로 기울어 절개를 버릴 때에도 홀로 푸르겠다는 뜻이다.[8]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도 계유정난 뒤 죽은 신하들을 다룬 대목에 이 시조를 싣고 있다.[9] 낙락장송 문서도 참고.
- 이정귀(李廷龜)가 죽은 뒤 동궁(東宮)이 내린 제문(문인 정두경 지음)은, 광해군 때 인륜이 무너져 이름난 선비들도 지조를 잃었을 때 이정귀가 홀로 절개를 지켰다며 “겨울에도 여름에도 홀로 푸르다(冬夏,獨也靑靑)”고 기렸다. 《장자》의 원문을 그대로 절개의 찬사로 쓴 예이다.[10]
- 권필(權韠)은 소나무를 읊은 시에서 “이제야 알겠네, 홀로 푸르른 것이 땅에서 명을 받았음을(乃知獨也靑靑受…)”이라고 하여 《장자》의 ‘땅에서 명을 받았다’는 원문을 살렸다.[11]
- 김만중(金萬重)은 정시(庭試)에서 장원한 답안에서, 당나라 육상선(陸象先)이 임금에게서 ‘세한송백’이라는 칭찬을 받고 사례하는 표(表)를 그의 입장에서 지어 “나라가 위태로울 때 난을 막은 공은 부끄러우나, 오직 송백만이 홀로 푸르다는 과분한 칭찬을 받았다(唯松柏獨也靑靑,猥承過實之獎)”고 썼다.[12]
- 구한말의 유인석(柳麟錫)은 1896년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조승(李肇承)·홍선표(洪選杓)에게 써 준 글에서 “큰 눈이 뭍을 덮어도 언덕의 솔숲 하나가 홀로 푸르다(大雪壓陸,一邱松林,獨也靑靑)”고 하여, 나라가 기울던 때에 뜻을 지키는 선비들을 여기에 빗댔다.[13]
- 모두가 권력에 줄을 설 때도 그는 독야청청 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 협력사마다 편법으로 인증을 따낼 때도 그 회사는 독야청청 원칙대로 보안 감사를 받았다.
- 눈 덮인 산비탈에 소나무 몇 그루만 독야청청 서 있었다.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독야청청”,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F%85%EC%95%BC%EC%B2%AD%EC%B2%AD, 확인날짜=2026-09-28.
- ↑ 2.0 2.1 2.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歲寒松柏”,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8624, 확인날짜=2026-09-28.
- ↑ 3.0 3.1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
- ↑ 이규보(李奎報), 〈채추밀송년자서(蔡樞密松年字序)〉,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04A_0550_020_0010, 확인날짜=2026-09-28.
- ↑ 성현(成俔), 〈세한정기(歲寒亭記)〉, 《허백당집(虛白堂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72A_0270_010_0020, 확인날짜=2026-09-28.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문집 원문 검색 “獨也靑靑”,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獨也靑靑”,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8.
- ↑ 8.0 8.1 최진원, “봉래산가(蓬萊山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3832, 확인날짜=2026-09-28.
- ↑ 이긍익(李肯翊),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단종조 고사본말〉 ‘정난에 죽은 여러 신하’,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1300A_0050_020_0090, 확인날짜=2026-09-28.
- ↑ 이정귀(李廷龜), 〈동궁치제문(東宮致祭文)〉(문인 정두경 지음), 《월사집(月沙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82A_0650_010_0210, 확인날짜=2026-09-28.
- ↑ 권필(權韠), 〈송(松)〉, 《석주집(石洲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94A_0090_010_0140, 확인날짜=2026-09-28.
- ↑ 김만중(金萬重), 〈의당육상선사유이세한송백표(擬唐陸象先謝諭以歲寒松柏表)〉, 《서포집(西浦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416A_0100_060_0050, 확인날짜=2026-09-28.
- ↑ 유인석(柳麟錫), 〈서증이기중·홍원옥귀고국(書贈李紀仲肇承洪元玉選杓歸故國)〉, 《의암집(毅菴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654A_0380_010_0040,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