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리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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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리스턴(Robert Liston, 1794년 10월 28일 ~ 1847년 12월 7일)은 마취가 보편화되기 이전 빠르고 능숙한 수술로 명성을 얻었으며, 1846년 유럽 최초의 에테르 마취를 이용한 주요 수술을 집도한 스코틀랜드의 외과의사이다.

리스턴은 1794년 10월 28일 스코틀랜드 웨스트로디언의 에클스마컨(Ecclesmachan)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주로 아버지에게 교육받았으며, 10대에 에든버러에서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해부학자 존 바클레이(John Barclay)의 조수와 해부 실습 조교를 거쳐 에든버러 왕립병원(Royal Infirmary of Edinburgh)에서 외과 수련을 받았고, 런던에서도 세인트 바솔로뮤 병원과 런던 병원 등에서 수학했다.[1]

1818년 에든버러 왕립외과의사협회에 입회했으며 이후 에든버러에서 해부학과 외과학을 가르치고 환자를 진료했다.[1] 동료 의사들과의 갈등으로 에든버러 왕립병원에서 한동안 배제되기도 했으나 1827년 외과의사로 복귀하였다. 이 시기 리스턴은 다른 의사들이 수술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환자까지 적극적으로 수술하면서 빠르고 능숙한 외과의사로 명성을 얻었다.[1]

1830년대에는 에든버러를 떠나 런던으로 옮겼으며, 1835년 University College Hospital의 초대 임상외과학 교수(Professor of Clinical Surgery)가 되었다.[2]

빠른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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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턴이 활동하던 19세기 전반은 현대적인 전신마취가 도입되기 전이었다. 환자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외과의사가 수술을 얼마나 신속하게 끝낼 수 있는지가 환자가 겪는 고통과 수술 수행에 중요한 요소였다. 당시에는 소독법과 항생제도 확립되지 않아 수술 후 감염 역시 큰 위험이었다.[1]

리스턴은 특히 절단 수술의 속도와 정확성으로 유명했다. 동시대 기록에는 칼로 연조직을 자른 직후 거의 곧바로 뼈를 톱질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동작이 빨랐다는 평가가 남아 있으며, 30초가 채 걸리지 않은 절단 수술 사례도 전해진다.[3]

이 때문에 리스턴이 수술을 시작하기 전 학생들에게 시간을 재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3] 다만 후대에 리스턴의 수술 속도를 둘러싼 여러 극적인 이야기가 추가되었으므로 개별 일화는 사실 여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에테르 마취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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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미국에서 에테르를 이용한 전신마취 수술이 공개되면서 외과수술은 큰 전환점을 맞았다. 이 소식은 곧 영국에도 전해졌다. 영국에서는 1846년 12월 19일 치과의사 제임스 로버트슨(James Robertson)이 에테르 마취하에 발치술을 시행했으며, 이틀 뒤 리스턴이 이를 주요 외과수술에 적용했다.[4]

1846년 12월 21일 University College Hospital에서 리스턴은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의 다리를 절단했다. 에테르는 당시 21세의 의학생이었던 윌리엄 스콰이어(William Squire)가 투여했다. University College London Hospitals는 이를 유럽에서 기록된 최초의 에테르 마취하 주요 수술로 설명하고 있다.[5]

리스턴은 에테르 마취의 효과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이 수술은 이후 유럽에서 외과 마취가 확산되는 데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UCL 역시 이 수술을 유럽 최초의 마취하 수술 가운데 의학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6]

빠른 수술로 이름을 알린 리스턴 자신이 수술 속도의 중요성을 크게 낮춰 준 마취의 도입을 직접 보여준 인물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상징성이 크다.

외과 기구와 수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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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턴은 단순히 수술 속도로만 유명했던 의사는 아니었다. 절단술을 비롯한 여러 외과수술의 기법을 개선했으며 수술용 기구 개발에도 관여했다. UCL에는 리스턴이 사용한 각종 외과 기구가 보존되어 있다.[2]

그의 이름이 붙은 대표적인 기구와 치료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리스턴 나이프(Liston knife) — 절단 수술에서 연조직을 빠르게 절개하기 위해 사용한 길고 날카로운 수술용 칼이다.
  • 리스턴 골겸자(Liston's bone forceps) — 뼈를 절단하는 데 사용하는 외과용 겸자이다.
  • 리스턴 장부목(Liston's long splint) — 대퇴골 골절 등의 고정을 위해 사용된 긴 부목이다.

1947년 《Nature》에 실린 리스턴 회고문은 그의 골겸자가 당시에도 사용되고 있었으며, 리스턴 장부목 역시 오랫동안 널리 사용되었다고 평가했다.[7]

그는 외과학 저술도 남겼으며 대표적인 저서로 《Elements of Surgery》(1831~1832)와 《Practical Surgery》(1837)가 있다.[7]

'사망률 300%' 수술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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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턴과 관련해 인터넷과 대중적인 의학사 서적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는 이른바 '사망률 300% 수술'이다.

널리 퍼진 이야기는 리스턴이 환자의 다리를 절단하던 중 조수의 손가락까지 잘랐고, 칼이 구경하던 사람의 옷도 스쳤다는 것이다. 이후 환자와 조수는 감염으로 사망하고 관람자는 자신도 칼에 찔렸다고 생각해 충격으로 사망하여, 환자 한 명을 수술했는데 세 명이 사망했다는 의미에서 '300% 사망률'이라는 표현이 붙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신뢰할 만한 동시대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의학사 연구자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은 리스턴에게 귀속된 이 일화를 검토하면서, 관람자가 사망했다는 이야기에는 근거가 없으며 조수의 손가락 절단이나 환자의 다른 신체 부위를 잘랐다는 내용 역시 리스턴 생전의 자료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8]

현재 널리 알려진 형태의 '300% 사망률' 이야기는 의사이자 작가인 리처드 고든(Richard Gordon)이 1983년에 출간한 《Great Medical Disasters》를 통해 크게 확산되었다. 그러나 브라운의 연구에 따르면 이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19세기 1차 사료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일부 구성 요소의 출처도 20세기 후반의 일화까지밖에 추적되지 않는다.[8]

따라서 리스턴이 실제로 매우 빠른 수술로 유명했다는 것은 당시 자료와 후대의 의학사 연구로 확인되지만,[3] '한 번의 수술로 세 명을 죽인 의사'라는 설명은 역사적 사실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사망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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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턴은 1847년 12월 7일 런던에서 대동맥류로 사망했다. 향년 53세였다.[7]

리스턴의 경력은 외과수술이 마취 이전 시대에서 현대적인 마취 시대에 접어들던 전환기와 겹친다. 그는 마취 이전에는 속도와 수기 능력으로 당대 최고 수준의 외과의사라는 평판을 얻었고, 이후에는 유럽에서 에테르 마취를 이용한 최초의 주요 외과수술을 집도했다.[5]

오늘날에는 극단적으로 빠른 절단 수술과 여러 기괴한 일화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의학사에서는 임상외과 교육, 수술 기법과 기구의 개선, 그리고 외과 마취 도입기의 역할이 함께 평가된다.[2]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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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0 1.1 1.2 1.3 The Royal College of Surgeons of Edinburgh, 「Robert Liston」, https://archiveandlibrary.rcsed.ac.uk/surgeon/3770447-robert-liston , 확인: 2026-09-20
  2. 2.0 2.1 2.2 University College London, 「Robert Liston’s surgical instruments」, https://www.ucl.ac.uk/engage/museums-collections/ucl-science-collections/highlights-ucl-science-collections/robert-listons-surgical-instruments , 확인: 2026-09-20
  3. 3.0 3.1 3.2 Clinical Orthopaedics and Related Research, 「ArtiFacts: Built for Speed—Robert Liston’s Surgical Technique」,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8083913/ , 확인: 2026-09-20
  4. Royal College of Surgeons of England, 「History - His contribution to the introduction of general anaesthesia」, https://www.rcseng.ac.uk/dental-faculties/fds/faculty/history/ , 확인: 2026-09-20
  5. 5.0 5.1 University College London Hospitals NHS Foundation Trust, 「1800 - 1899」, https://www.uclh.nhs.uk/about-us/who-we-are/our-history/1800-1899 , 확인: 2026-09-20
  6. University College London, 「Our history」, https://www.ucl.ac.uk/medical-sciences/about/our-history , 확인: 2026-09-20
  7. 7.0 7.1 7.2 Nature, 「Robert Liston (1794–1847)」, https://www.nature.com/articles/160783a0 , 확인: 2026-09-20
  8. 8.0 8.1 Cambridge University Press, Michael Brown, 《Emotions and Surgery in Britain, 1793–1912》, 「Epilogue」, https://www.cambridge.org/core/books/emotions-and-surgery-in-britain-17931912/epilogue/47393FAE899C144CCDA12A168FDE1695 , 확인: 2026-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