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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 번이나 집을 옮겼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한자성어로, 자식 교육에서 주변 환경이 중요함을 이르는 말이다.[1] 전한(前漢)의 유향(劉向)이 엮은 《열녀전(列女傳)》 권1 〈모의전(母儀傳)〉의 ‘추맹가모(鄒孟軻母)’ 조에 실린 이야기이다.

맹자의 집이 처음에는 묘지 근처에 있었는데 어린 맹자가 장례 치르는 흉내를 내며 놀자, 어머니가 시장 근처로 옮겼더니 이번에는 장사꾼 흉내를 냈고, 다시 학교 근처로 옮기자 비로소 제사와 예절을 흉내 냈다는 이야기이다. 아이는 보고 듣는 것을 따라 배우므로 자라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교훈으로 쓰이며, 자식 교육에 정성을 쏟는 부모를 가리킬 때도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줄여서 ‘맹모삼천’, ‘삼천’, ‘삼천지교’라고도 한다고 적는다.[1] 오늘날에는 자녀의 학군을 좇아 이사하는 세태를 두고 긍정적으로도, 비꼬는 뜻으로도 자주 쓴다.

같은 《열녀전》에 이어서 실린 베틀의 베를 끊어 가르친 이야기는 단기지계(斷機之戒)로 따로 알려져 있다. 중국어에서는 ‘孟母三迁(mèng mǔ sān qiān)’이라고 하며,[2] 일본어에서도 ‘孟母三遷(もうぼさんせん)’, ‘孟母三遷の教え’라고 한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孟 맹 맏, 성씨 맹자(孟子)
母 모 어머니 어머니
三 삼 셋 세 번
遷 천 옮기다 집을 옮기다, 이사하다
之 지 가다, ~의 ~의
敎 교 가르치다 가르침

《열녀전》은 맹자의 어머니를 ‘맹모’라고만 부르고 성은 적지 않았다. 명나라 진사원(陳士元)의 《맹자잡기(孟子雜記)》는 “맹가의 어머니는 장씨(仉氏)”라 하고 仉의 음을 ‘掌(장)’으로 달았으며, 원나라 연우 3년(1316) 맹모를 주국부인(邾國夫人)으로 봉하고 선헌(宣獻)이라는 시호를 내렸다고 적었다.[4] 나무위키 등에는 맹모를 ‘급씨(伋氏)’로 소개한 경우가 있으나, 伋은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의 이름(孔伋)이다.

鄒孟軻之母也。號孟母。其舍近墓。孟子之少也,嬉遊為墓間之事,踴躍築埋。孟母曰:「此非吾所以居處子也。」乃去舍市傍。其嬉戲為賈人衒賣之事。孟母又曰:「此非吾所以居處子也。」復徙舍學宮之傍。其嬉遊乃設俎豆揖讓進退。孟母曰:「真可以居吾子矣。」遂居之。及孟子長,學六藝,卒成大儒之名。君子謂孟母善以漸化。詩云:「彼姝者子,何以予之?」此之謂也。

[5]

“추(鄒)나라 맹가(孟軻)의 어머니로, 맹모라고 불렸다. 그 집이 묘지 가까이에 있었는데, 맹자는 어릴 때 무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흉내 내며 놀아, 뛰어다니며 흙을 다지고 묻는 시늉을 했다. 맹모가 ‘이곳은 내 아들을 살게 할 곳이 못 된다’ 하고 집을 떠나 시장 곁으로 옮겼다. 그러자 맹자는 장사꾼이 물건을 자랑하며 파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맹모가 또 ‘이곳도 내 아들을 살게 할 곳이 못 된다’ 하고 다시 학궁(學宮) 곁으로 집을 옮겼다. 그러자 맹자는 제기(俎豆)를 벌여 놓고 읍하고 사양하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예를 흉내 내며 놀았다. 맹모가 ‘참으로 내 아들을 살게 할 만하다’ 하고 마침내 그곳에 살았다. 맹자가 자라서 육예(六藝)를 배워 끝내 큰 유학자라는 이름을 이루었다. 군자는 맹모가 점차 감화시키는 데 능했다고 평했다. 《시경》에 ‘저 훌륭한 분에게 무엇을 드릴까’라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遂居之’는 ‘마침내 그곳에 살았다’는 뜻이고, 다음 문장은 ‘及孟子長’(맹자가 자라서)으로 시작한다. 나무위키 등에는 ‘遂居及’으로 끊어 “드디어 살 곳에 이르렀다”로 옮긴 경우가 있으나, 원문은 ‘遂居之。及孟子長’이다.[5] 인용된 시는 《시경》 〈용풍(鄘風)·간모(干旄)〉의 구절이다.

이 조에는 이어서 맹자가 공부를 그만두고 돌아오자 어머니가 짜던 베를 칼로 끊어 깨우친 이야기, 맹자가 아내를 내보내려 하자 예를 들어 꾸짖은 이야기, 제나라를 떠나려는 맹자를 격려한 이야기가 차례로 실려 있다.[5] 《일본국어대사전》과 《일본대백과전서》도 삼천 고사의 출전을 《열녀전》 권1로 든다.[3]

‘삼천’이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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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전》 본문에는 ‘三遷’이라는 말이 직접 나오지 않는다. 묘지 곁에서 시장 곁으로, 시장 곁에서 학궁 곁으로 옮겼으니 원문대로 세면 옮긴 것은 두 번이고 산 곳이 세 곳이다. ‘세 번 옮겼다’는 말은 이 이야기를 줄여 부르면서 굳은 표현이다. 후한의 조기(趙岐)는 《맹자》에 붙인 〈맹자제사(孟子題辭)〉에서 맹자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서 자애로운 어머니의 세 번 옮긴 가르침을 입었다(夙喪其父,幼被慈母三遷之教)”고 써서 ‘三遷之教’라는 말을 이미 쓰고 있다.[6]

원나라 인종(仁宗)은 1316년(연우 3) 10월 맹자의 부모를 추봉하는 제서(制書)에서 아버지가 일찍 죽은 뒤 어머니가 ‘세 번 옮긴 가르침(三遷之教)’으로 맹자를 이끌었다고 해 맹모의 공을 기렸다.[7] 송나라 때 엮인 것으로 알려진 아동 교재 《삼자경(三字經)》의 “옛날 맹자의 어머니는 이웃을 가려 살았고, 아들이 배우지 않자 베틀의 북을 끊었다(昔孟母,擇鄰處。子不學,斷機杼)”는 구절로도 널리 퍼졌다.[8]

맹자는 기원전 4세기 사람이고 《열녀전》은 기원전 1세기에 엮였으므로, 이 이야기가 실제 있었던 일인지는 알 수 없다. 일본 평범사 《세계대백과사전》은 맹모삼천과 맹모단기를 “널리 알려진 전설”이라고 적는다.[9] 《맹자》 본문에는 맹자의 어린 시절이나 어머니의 이사에 관한 기록이 없다.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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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부터 어머니를 기리는 만시(輓詩)와 묘문에 즐겨 쓰였다. 이승소(李承召)는 한 승지의 어머니를 애도하는 만장에서 “맹모의 세 번 옮김은 사관의 붓에 남았다(孟母三遷留管史)”고 했고,[10] 홍귀달(洪貴達)도 만사에서 “맹모의 삼천지교 덕분에 조씨 집안의 팔두(八斗) 재주가 나왔다(曾緣孟母三遷敎,做出曺家八斗才)”고 썼다.[11]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한 묘표에는 아이들이 목동들과 어울려 놀자 어머니가 “옛날 맹모는 세 번 옮겼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 내 잘못이다” 하고 곧 서울 집으로 옮겼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12]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 孟母三遷은 1675년(숙종 1) 청풍부원군 김우명(金佑明)이 올린 차자(箚子) 한 건에 보인다. 이 차자는 “세 번 이른 참언은 자애로운 어머니도 북을 던지게 한다는 말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맹모삼천의 가르침이 이간하는 말을 불러온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고 하여, 증삼살인의 고사와 나란히 썼다.[13]

  • 맹모삼천지교라지만, 좋은 동네로 이사하는 것보다 집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먼저다.
  • 신입 개발자를 코드 리뷰 문화가 자리 잡은 팀에 두는 것도 일종의 맹모삼천지교이다.
  • 그는 아이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다며 스스로를 맹모삼천의 어머니에 빗댔다.
  • 2004년 3월 개봉한 김지영 감독, 조재현 주연의 영화 《맹부삼천지교》는 제목을 바꾸어, 아들의 명문대 입학을 위해 애쓰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코미디로 그렸다.[14]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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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기지계(斷機之戒): 맹자의 어머니가 짜던 베를 끊어 학업을 중도에 그만두지 말라고 가르친 일. 같은 《열녀전》 조에 이어서 나온다.[5]
  • 삼천지교(三遷之敎), 맹모삼천(孟母三遷): 같은 말.[1]
  • 근묵자흑(近墨者黑):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뜻으로, 환경의 영향을 말한다.
  • 마중지봉(麻中之蓬): 삼밭에서 자란 쑥은 붙들어 주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는 뜻. 《순자》 〈권학〉의 “蓬生麻中,不扶而直”에서 나왔다.[15]
  1.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맹모삼천지교”,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7%B9%EB%AA%A8%EC%82%BC%EC%B2%9C%EC%A7%80%EA%B5%90, 확인날짜=2026-09-28.
  2.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孟母三遷”,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8572, 확인날짜=2026-09-28.
  3. ↑ 3.0 3.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일본대백과전서(日本大百科全書)》, “孟母三遷”,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AD%9F%E6%AF%8D%E4%B8%89%E9%81%B7, 확인날짜=2026-09-28.
  4. ↑ 진사원(陳士元), 《맹자잡기(孟子雜記)》 권1.
  5. ↑ 5.0 5.1 5.2 5.3 유향(劉向), 《열녀전(列女傳)》 권1 〈모의전(母儀傳)·추맹가모(鄒孟軻母)〉.
  6. ↑ 조기(趙岐), 〈맹자제사(孟子題辭)〉, 《맹자주소(孟子注疏)》.
  7. ↑ 장사관(張士觀), 〈추봉맹자부모제(追封孟子父母制)〉, 소천작(蘇天爵) 편, 《원문류(元文類)》 권11.
  8. ↑ 《삼자경(三字經)》.
  9. ↑ 《세계대백과사전(世界大百科事典)》(구판), “孟子” 항목,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AD%9F%E6%AF%8D%E4%B8%89%E9%81%B7, 확인날짜=2026-09-28.
  10. ↑ 이승소(李承召), 〈한승지모씨만장(韓承旨母氏挽章)〉, 《삼탄집(三灘集)》 권3,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63A_0060_010_0090, 확인날짜=2026-09-28.
  11. ↑ 홍귀달(洪貴達), 〈조대허대부인류씨만(曺大虛大夫人柳氏輓)〉, 《허백정속집(虛白亭續集)》 권2,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71A_0070_010_0900, 확인날짜=2026-09-28.
  12. ↑ 송시열(宋時烈), 〈진사이군묘표(進士李君墓表)〉, 《송자대전(宋子大全)》 권197,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367A_1990_010_0120, 확인날짜=2026-09-28.
  13.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3권, 숙종 1년 3월 12일 경오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sa_10103012_002, 확인날짜=2026-09-28.
  14. ↑ 씨네21, “맹부삼천지교” 영화 상세정보, https://cine21.com/movie/info/?movie_id=8342, 확인날짜=2026-09-28.
  15. ↑ 《순자(荀子)》 〈권학(勸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