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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지경(無人之境)은 사람이 살지 않는 외진 곳, 또는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는 판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2]

글자 그대로는 ‘사람이 없는 지경’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1」의 뜻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외진 곳을 들고, ‘무인경’을 비슷한 말로 올렸다.[1] 우리말샘은 여기에 「2」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는 판”이라는 비유의 뜻을 따로 올렸다.[2]

지금 한국어에서는 둘째 뜻이 훨씬 자주 쓰인다. 대개 “무인지경을 달리듯”, “무인지경으로 휘젓다”처럼 막는 사람이 없어 마음대로 움직이는 모습을 그릴 때 쓰는데, 이 비유는 중국어의 관용구 如入無人之境(사람 없는 곳에 들어가듯)에서 왔다. 중국어에서도 無人之境은 “사람이 없는 곳”이고,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如入無人之境을 따로 올려 “적군이 없는 곳에 들어간 것 같다는 뜻으로, 싸움이 용맹하여 아무도 막지 못함을 비유한다”고 풀이한다.[3][4]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無 무 없다 없다
人 인 사람 사람
之 지 가다, ~의 ~의(관형격 조사)
境 경 지경, 경계 곳, 땅

사람 없는 땅: 동진의 〈유천태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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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人之境’이라는 네 글자는 처음에는 말 그대로 사람이 닿지 않는 깊은 곳을 가리켰다. 동진의 손작(孫綽)은 〈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에서 천태산이 오악(五嶽)에 들지 못하고 나라의 제사 목록에도 오르지 않은 까닭을 그 길이 깊고 멀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썼다.[5]

始經魑魅之塗,卒踐無人之境。舉世罕能登陟,王者莫由禋祀。

“처음에는 도깨비가 다니는 길을 지나 마침내 사람 없는 땅을 밟는다. 온 세상에 오를 수 있는 이가 드물고, 임금도 제사를 지낼 길이 없다.”[5]

거칠 것 없는 기세: 당·송의 ‘如~無人之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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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없는 땅을 가듯 한다’는 비유는 당나라 때 이미 보인다. 곽원진(郭元振)은 중종 때 올린 〈논궐철충절소(論闕啜忠節疏)〉에서, 앞서 장수들이 발한나(拔汗那, 페르가나)에 들어가 마음대로 거두어들인 일을 두고 “사방에 끌어들일 적이 없으니 멋대로 침탈하기를 사람 없는 땅을 혼자 가듯 하였다(拔汗那四面無賊可勾,恣意侵吞,如獨行無人之境)”고 썼다.[6]

북송에 이르면 ‘如入無人之境’이라는 형태가 자리를 잡는다. 당경(唐庚)은 서북 변경에 성을 쌓은 일을 축하하는 표에서 “네 길의 군사가 구름처럼 모여 사람 없는 땅에 들어가듯 하였다(四路雲屯,如入無人之境)”고 했고,[7] 이강(李綱)도 도적이 고을을 짓밟은 일을 같은 말로 적었다.[8]

《삼국지연의》의 조자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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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현을 널리 알린 것은 명나라 소설 《삼국지연의》이다. 연의에는 ‘如入無人之境’이 여러 번 나오는데, 장수 혼자 적진을 휘젓는 장면에 쓰인다. 여포가 왕광의 군사를 무너뜨리는 장면(제5회), 관우가 안량을 베고 나오는 장면(제25회), 관우가 노숙의 연회에 칼 한 자루만 들고 가겠다며 큰소리치는 장면(제66회) 등에 보이지만, 가장 많이 쓰인 인물은 조운(趙雲, 자룡)이다. 처음 등장하는 제7회 계교 싸움에서 그는 이렇게 그려진다.[9]

趙雲一騎馬飛入紹軍,左衝右突,如入無人之境。

“조운이 말 한 필로 원소의 군중에 날듯이 뛰어들어 왼쪽으로 찌르고 오른쪽으로 부딪치니, 마치 사람 없는 곳에 들어간 듯하였다.”[9]

장판파(당양 장판) 싸움 장면 자체에는 이 말이 쓰이지 않지만, 뒤의 제52회에서 계양 태수 조범이 “지금 군사를 이끌고 오는 조자룡은 당양 장판의 백만 대군 속을 사람 없는 곳에 들어가듯 하였다(今領兵來的趙子龍,在當陽長板百萬軍中,如入無人之境)”며 항복을 주장하는 대목에서 그 싸움을 이 말로 돌아본다.[10] 일흔 살의 조운이 한덕 부자를 꺾는 제92회에도 같은 말이 나온다.

《성어전》은 如入無人之境의 용례로 원나라 《설인귀정료사략(薛仁貴征遼事略)》과 《삼국지연의》 제7회를 든다.[4] 사자성어 목록류에는 무인지경의 출전을 《삼국지연의》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으나, 네 글자 자체는 동진의 부(賦)에 이미 보이고 ‘거칠 것이 없다’는 비유도 당·송 문헌에 먼저 나온다. 연의는 이 표현을 널리 퍼뜨린 작품으로 보는 것이 맞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無人之境’이 129건 보인다.[11] 이른 기사들은 대개 첫째 뜻으로 썼다.

  • 1412년(태종 12) 사헌부는 박자청의 죄를 다시 청하며 “밝은 시대에는 비록 사람 없는 곳에서 간악한 짓을 하더라도 오히려 가려내는데, 하물며 대낮 큰 도성 한가운데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보고 안 일이겠습니까(雖作姦宄於無人之境,尙且分辨。況白晝大都之中,衆人所共見知者乎)”라고 상소했다.[12]
  • 1420년(세종 2) 원주 목사 조계생은 “인삼은 험하고 사람 없는 곳에서 나서 캐기가 매우 괴롭다(人蔘産於險阻無人之境,採之甚苦)”며 공납의 폐단을 아뢰었다.[13]

다른 언어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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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어: 無人之境은 “사람이 없는 곳”, 비유의 뜻은 如入無人之境으로 쓴다.[3][4] 《성어전》은 無人之地를 같은 말로 든다.[3]
  • 일본어: 無人の境(むじんのきょう)라고 하며, 《일본국어대사전》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풀이하고 1874~76년 《동경신번창기(東京新繁昌記)》의 용례를 든다. 비유로 쓴 “無人の境を行くが如く”는 나가요 요시로(長与善郎)의 소설(1924~25)을 용례로 든다.[14]
  • 방화벽 안쪽에 접근 통제가 없으면, 일단 내부망에 들어온 공격자는 무인지경을 가듯 서버 사이를 옮겨 다닌다.
  • 수비가 무너진 틈을 타 공격수가 무인지경으로 문전까지 치고 들어갔다.
  • 깊은 산속 무인지경에 홀로 남겨진 등산객이 사흘 만에 구조되었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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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인경(無人境): 사람이 살지 않는 외진 곳.[1]
  • 좌충우돌(左衝右突): 이리저리 마구 찌르고 치고받음. 연의에서 如入無人之境과 짝을 이루어 자주 나온다.
  • 종횡무진(縱橫無盡): 자유자재로 행동하여 거침이 없는 상태.
  • 파죽지세(破竹之勢): 거침없이 쳐들어가는 기세.
  • 일기당천(一騎當千): 한 사람의 기병이 천 사람을 당해 낼 만큼 셈.
  • 천하무적(天下無敵): 세상에 겨룰 만한 적이 없음.
  1.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무인지경”,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C%B4%EC%9D%B8%EC%A7%80%EA%B2%BD, 확인날짜=2026-10-11.
  2. ↑ 2.0 2.1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무인지경”,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query=%EB%AC%B4%EC%9D%B8%EC%A7%80%EA%B2%BD, 확인날짜=2026-10-11.
  3. ↑ 3.0 3.1 3.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無人之境”,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9237, 확인날짜=2026-10-11.
  4. ↑ 4.0 4.1 4.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如入無人之境”,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8582, 확인날짜=2026-10-11.
  5. ↑ 5.0 5.1 손작(孫綽), 〈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 소통(蕭統) 편 《문선(文選)》 권11.
  6. ↑ 곽원진(郭元振), 〈논궐철충절소(論闕啜忠節疏)〉.
  7. ↑ 당경(唐庚), 〈하진축표(賀進築表)〉, 《미산집(眉山集)》 문집 권6.
  8. ↑ 이강(李綱), 《양계집(梁溪集)》 권108.
  9. ↑ 9.0 9.1 나관중(羅貫中),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7회(모종강본).
  10. ↑ 나관중(羅貫中),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52회(모종강본).
  1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無人之境”, https://sillok.history.go.kr/search/searchResultList.do?topSearchWord=%E7%84%A1%E4%BA%BA%E4%B9%8B%E5%A2%83&sillokType=S&type=w, 확인날짜=2026-10-11.
  1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23권, 태종 12년 6월 1일 갑인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ca_11206001_002, 확인날짜=2026-10-11.
  13.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0권, 세종 2년 11월 5일 기사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0211005_003, 확인날짜=2026-10-11.
  14.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無人の境”,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84%A1%E4%BA%BA%E3%81%AE%E5%A2%83, 확인날짜=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