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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蛇足)은 뱀을 다 그리고 나서 있지도 않은 발을 덧붙여 그린다는 뜻으로, 쓸데없는 일을 덧붙이다가 도리어 일을 그르침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화사첨족(畫蛇添足)’을 줄인 말이다.[1][2]

한국어에서는 “사족을 달다”, “사족을 붙이다”처럼 이미 충분한 말이나 일에 군더더기를 보태는 것을 가리킬 때 주로 쓴다. 말이나 글 끝에 덧붙이는 말을 스스로 낮추어 “사족이지만”이라고 앞세우기도 한다.

중국어에서는 두 글자로 줄이지 않고 ‘화사첨족(畫蛇添足)’이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일본어에서는 ‘蛇足(だそく)’라고 하며, 필요 없는 것, 있어도 쓸모없는 것을 가리킨다. 《일본국어대사전》은 《관여집(丱余集)》(1409년 무렵)을 첫 용례로 든다.[3]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 2〉에 나오는 이야기이다.[4] 초(楚)나라 장수 소양(昭陽)이 위(魏)나라를 쳐서 군대를 깨뜨리고 장수를 죽인 뒤 여덟 성을 빼앗고, 군사를 옮겨 제(齊)나라를 치려 했다. 제나라 왕의 사신으로 온 진진(陳軫)은 소양에게 초나라에서 이런 공을 세우면 어떤 벼슬을 받는지 물었다. 소양이 상주국(上柱國)이라는 관직과 상집규(上執珪)라는 작위를 받는다고 하자, 진진은 그보다 높은 자리는 영윤(令尹)뿐인데 왕이 영윤을 두 사람씩 둘 리는 없다고 하며 비유를 들었다.

楚有祠者,賜其舍人巵酒。舍人相謂曰:「數人飲之不足,一人飲之有餘。請畫地為蛇,先成者飲酒。」一人蛇先成,引酒且飲之,乃左手持巵,右手畫蛇,曰:「吾能為之足。」未成,一人之蛇成,奪其巵曰:「蛇固無足,子安能為之足。」遂飲其酒。為蛇足者,終亡其酒。

[5]

“초나라에 제사를 지낸 사람이 있어 식객들에게 술 한 잔을 내렸습니다. 식객들이 ‘여럿이 마시기에는 모자라고 한 사람이 마시기에는 넉넉하니, 땅에 뱀을 그려 먼저 그린 사람이 마시자’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 먼저 뱀을 그리고는 술을 당겨 마시려다가, 왼손에 잔을 든 채 오른손으로 뱀을 그리며 ‘나는 발까지 그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발을 다 그리기도 전에 다른 사람이 뱀을 완성하고는 잔을 빼앗으며 ‘뱀은 본래 발이 없는데 자네가 어찌 발을 그린단 말인가’ 하고 그 술을 마셔 버렸습니다. 뱀의 발을 그린 사람은 끝내 술을 잃었습니다.”

진진은 이어서 “지금 공은 초나라를 도와 위나라를 치고 여덟 성을 얻었는데, 군사가 지치지 않았다고 제나라까지 치려 합니다. 제나라는 공을 몹시 두려워하니 이것으로 이름을 떨치기에 충분하며, 관직은 이보다 더 높아질 수 없습니다. 싸우면 이기면서도 그칠 줄 모르는 사람은 몸이 죽고 작위는 뒷사람에게 돌아가니, 뱀의 발을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했다. 소양은 옳다고 여겨 군대를 거두어 돌아갔다.[4] 곧 ‘사족’은 원래 이미 이룬 공에 욕심을 더하다가 가진 것마저 잃는다는 경고였다.

쓰임과 변이형

편집 원본 편집

《성어전》은 비슷한 형태로 다음을 든다.[4]

  • 망화사족(妄畫蛇足): 《후한서(後漢書)》 〈원소전(袁紹傳)〉. 원소의 아들들 사이를 이간한 곽도(郭圖)를 두고 “흉악한 신하 곽도가 함부로 뱀의 발을 그려”라고 했다. 없는 일을 지어내 말썽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쓴 예이다.
  • 위사화족(爲蛇畫足): 《삼국지(三國志)》 〈촉서·장익전(張翼傳)〉. 강유(姜維)가 위나라 왕경(王經)을 크게 깨뜨린 뒤 장익이 “이제 그쳐야 하며 더 나아가면 이 큰 공을 망칠 수 있다”고 한 대목에 나온다.
  • 화사착족(畫蛇著足): 당나라 한유(韓愈)의 시 〈감춘(感春)〉 “뱀에 발을 붙여 봐야 쓸 데가 없다(畫蛇著足無處用)”.
  • 화사첨족(畫蛇添足): 《삼국지연의》 제110회 등 명·청 소설에 널리 쓰였다.

한국 문헌에서는 대부분 ‘畫蛇添足’의 형태로 쓰였다. 조선 후기 학자들은 경전 주석이나 예서(禮書)에 군말을 보태는 것을 경계하며 이 말을 자주 썼다. 이재(李栽)는 편지에서 “많은 것을 자랑하고 넓음을 힘써서 화사첨족의 경계를 범할 필요가 없다(不必誇多務博,以犯畫蛇添足之戒)”고 했다.[6]

  • “사족을 못 쓰다”의 ‘사족’은 이 말이 아니다. 무엇에 반하거나 혹해서 꼼짝 못 한다는 뜻의 이 관용구는 짐승의 네 발이나 사람의 팔다리를 가리키는 ‘사족(四足)’을 쓴다.[7]
  • ‘사족(士族)’은 문벌이 좋은 집안이나 그 자손을 뜻하는 전혀 다른 말이다.[1]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蛇 사 뱀 뱀
足 족 발 (그려 넣은) 발
  • 이미 원인과 대책이 다 담긴 장애 보고서에 경위를 한 장 더 붙이는 것은 사족이다.
  • 사족을 붙이자면, 이 설정은 테스트 환경에서만 바꾸어야 한다.
  • 잘 끝난 영화에 굳이 쿠키 영상을 넣은 것이 사족이라는 평이 많았다.
  •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뱀은 원래 다리가 있던 조상에게서 다리를 잃은 동물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나온 약 1억 년 전의 뱀 화석 ‘나자시 리오네그리나(Najash rionegrina)’는 뒷다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2019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연구는 뱀이 앞다리를 잃은 뒤에도 뒷다리를 7천만 년 넘게 유지했다고 보았다.[8]
  • 일본 무로마치 시대의 화가 이름으로 전하는 ‘소가 자소쿠(曾我蛇足)’가 있다. 실존 인물인지, 여러 대에 걸쳐 쓰인 호인지를 두고 여러 설이 있다.[9]
  • 《선조실록》 선조 33년(1600) 기사에는 “이는 뱀에게 발이 생기고 범에게 날개가 돋는 격(是猶蛇足而虎翼)”이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는 쓸데없다는 뜻이 아니라 해로운 자가 힘을 더 얻는다는 뜻으로 쓰였다.[10]

유의어와 관련 표현

편집 원본 편집
  • 화사첨족(畫蛇添足): 같은 뜻이다.
  • 다차일거(多此一擧): 쓸데없는 짓을 함. 《성어전》이 가까운 말로 든다.[4]
  • 농교성졸(弄巧成拙): 재주를 부리다 도리어 일을 망침.[4]
  •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음.
  • 대조되는 말: 화룡점정(畫龍點睛):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마무리하여 일을 완성함. 《아녀영웅전》 제30회는 두 말을 나란히 써서, 알맞은 덧붙임은 화룡점정이지만 쓸데없는 덧붙임은 화사첨족이라고 했다.[4]
  1.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사족”,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2%AC%EC%A1%B1, 확인날짜=2026-09-26.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화사첨족”,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9%94%EC%82%AC%EC%B2%A8%EC%A1%B1, 확인날짜=2026-09-26.
  3.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蛇足”,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9B%87%E8%B6%B3, 확인날짜=2026-09-26.
  4. ↑ 4.0 4.1 4.2 4.3 4.4 4.5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畫蛇添足”,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3, 확인날짜=2026-09-26.
  5. ↑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 2〉.
  6.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재, 《밀암집(密菴集)》 권5 〈여이열경(與李悅卿)〉,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450A_0050_010_0060, 확인날짜=2026-09-26.
  7. ↑ “[우리말 바루기] 사족을 못 쓰다”, 미주중앙일보, https://www.koreadaily.com/article/4966985, 확인날짜=2026-09-26.
  8. ↑ “뱀 다리는 ‘사족(蛇足)’?…뒷다리 7000만년 이상 제기능”, 사이언스타임즈, https://www.sciencetimes.co.kr/news/뱀-다리는-사족蛇足뒷다리-7000만년-이상-제기능/, 확인날짜=2026-09-26.
  9. ↑ 《세계대백과사전(世界大百科事典)》, “曾我蛇足”,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9B%87%E8%B6%B3, 확인날짜=2026-09-26.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24권, 선조 33년 4월 18일 신묘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3304018_004,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