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약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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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약고구(良藥苦口)는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뜻으로, 충언(忠言)은 귀에 거슬리나 자신에게 이로움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병을 고치는 약일수록 맛이 써서 삼키기 어렵듯이, 나를 위한 충고일수록 듣기 괴롭다는 비유다. 흔히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충언역이(忠言逆耳)와 짝을 지어 “良藥苦口利於病,忠言逆耳利於行(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이라고 말한다. 우리 속담 “좋은 약은 입에 쓰다”와 같은 뜻이다.
중국어에서도 같은 형태로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은 “병을 고치는 약은 대개 써서 삼키기 어렵다. 간언은 흔히 귀에 거슬리지만 사람에게 이롭다는 비유”로 풀이한다.[2] 일본어에서는 ‘良薬は口に苦し(りょうやくはくちににがし)’라고 한다.[3]
표준국어대사전은 출전으로 《공자가어》 〈육본편〉과 《설원》 〈정간편〉을 든다.[1] 두 책은 이 말을 공자의 말로 전한다. 한나라 유향(劉向)의 《설원(說苑)》 권9 〈정간(正諫)〉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5]
孔子曰:「良藥苦於口,利於病;忠言逆於耳,利於行。故武王諤諤而昌,紂嘿嘿而亡。……」
“공자가 말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 그러므로 무왕은 곧은 말을 하는 신하들이 있어 번창했고, 주왕은 신하들이 입을 다물어 망했다.” 이어서 임금에게 곧은 말을 하는 신하가, 아버지에게 곧은 말을 하는 아들이, 선비에게 곧은 말을 하는 벗이 없으면 망할 날을 서서 기다리는 셈이라고 했다.
《공자가어(孔子家語)》 권4 〈육본(六本)〉에는 “孔子曰:良藥苦於口而利於病,忠言逆於耳而利於行。湯武以諤諤而昌,桀紂以唯唯而亡”이라 하여, 탕왕과 무왕, 걸왕과 주왕을 함께 들었다.[6] 조선 후기 김간(金榦)이 인용한 〈육본〉 구절은 “良藥苦口而利於病,忠言逆耳而利於行”으로 되어 있어,[7] 전하는 본에 따라 ‘苦於口’와 ‘苦口’가 섞여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디지털 대사천》은 출전을 《공자가어》 〈육본〉으로,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은 《한비자》로 든다.[3]
흔히 이 말은 장량(張良)이 유방(劉邦)에게 한 간언과 함께 소개된다. 기원전 206년 유방이 진나라 궁궐에 들어가 머물려 하자 장량이 말렸다는 이야기로, 《사기》 권55 〈유후세가(留侯世家)〉에 나온다.[8]
且「忠言逆耳利於行,毒藥苦口利於病」,願沛公聽樊噲言。
“또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고, 독한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고 했으니, 부디 패공께서는 번쾌의 말을 들으십시오.” 그런데 원문을 보면 장량이 인용한 것은 ‘良藥’이 아니라 ‘毒藥(독한 약)’이다. 흔히 이 대목을 “良藥苦口利於病”으로 인용하지만, 《사기》 원문과는 다르다. 여기서 ‘毒藥’은 사람을 해치는 독이 아니라 약효가 센 약으로 풀이된다. 나무위키 등에는 장량이 《한비자》의 경구를 인용했다고 설명한 경우가 있으나, 장량의 말은 ‘毒藥’, ‘逆耳’로 되어 있어 《한비자》의 ‘良藥’, ‘拂於耳’와 글자가 다르며, 어느 책에서 따왔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이 이야기의 자세한 내용은 충언역이 문서에 있다.
네 글자가 그대로 이어진 형태는 후한 말부터 보인다. 204년 원소(袁紹)의 아들 원상(袁尙)과 원담(袁譚) 형제가 싸울 때, 원상의 신하 심배(審配)는 원담에게 보낸 편지를 “제가 듣기로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고 합니다(配聞良藥苦口而利於病,忠言逆耳而便於行)”로 시작했다.[9] 삼국 시대 오나라의 제갈각(諸葛恪)도 손권의 아들 손분(孫奮)에게 보낸 글에서 “좋은 약은 입에 쓰니 병든 자만이 달게 여길 수 있고,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리니 통달한 자만이 받아들일 수 있다(夫良藥苦口,惟疾者能甘之。忠言逆耳,惟達者能受之)”고 했다.[10] 당 태종도 설연타(薛延陀) 원정에 나서며 내린 조서에서 “좋은 약은 입에 써서 병자가 달게 여기지 않지만 반드시 마시는 것은 고질병을 없애려 해서다”라는 비유를 썼다.[11]
《삼국사기》에는 이 말로 백제 동성왕을 비판한 김부식(金富軾)의 사론이 있다. 동성왕 22년(500) 봄, 왕이 궁궐 동쪽에 높이 다섯 길의 임류각(臨流閣)을 짓고 연못을 파 진기한 새를 기르자 간언하는 신하들이 글을 올렸으나 왕은 답하지 않고, 다시 간하는 자가 있을까 봐 궁궐 문을 닫아 버렸다. 김부식은 이렇게 논평했다.[12]
良藥苦口,利於病;忠言逆耳,利於行。是以,古之明君,虛己問政,和顔受諫,猶恐人之不言,懸敢諫之鼓,立誹謗之木而不已。今牟大王諫書上而不省,復閉門以拒之。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 그래서 옛 밝은 임금들은 자기를 비우고 정사를 묻고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여 간언을 받으면서도, 사람들이 말하지 않을까 걱정하여 감히 간하는 북을 달고 비방하는 나무를 세우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모대왕(동성왕)은 간하는 글이 올라와도 살피지 않고 다시 문을 닫아 막았다.” 그해 여름 왕은 임류각에서 신하들과 밤새 잔치를 벌였고, 이듬해 가림성으로 보낸 백가(苩加)가 보낸 자객에게 찔려 세상을 떠났다.[12]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良藥苦口’가 12건 나온다.[13] 1441년(세종 23년) 성균관 유생들은 불교를 숭상하는 세종에게 올린 상소를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로 맺었다.[14] 15세기의 성간(成侃)은 〈대루원(待漏院)〉에서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어지러울 만큼 독해야 한다(良藥苦口須瞑眩)”고 읊었다.[15] ‘瞑眩’은 《서경(書經)》 〈열명 상(說命上)〉의 “약이 어지럽게 하지 않으면 병이 낫지 않는다(若藥弗瞑眩,厥疾弗瘳)”에서 온 말이다.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良 | 양(량) | 어질다, 좋다 | 좋은, 효험이 있는 |
| 藥 | 약 | 약 | 약 |
| 苦 | 고 | 쓰다, 괴롭다 | (맛이) 쓰다 |
| 口 | 구 | 입 | 입 |
- 외부 감사인의 지적은 양약고구다. 당장은 불편해도 사고를 막아 준다.
- 모의 해킹 결과 보고서를 양약고구로 받아들이고 취약점을 하나씩 고쳐 나갔다.
- 선생님의 쓴소리를 양약고구로 여기고 공부 습관을 바꿨다.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양약고구”,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6%91%EC%95%BD%EA%B3%A0%EA%B5%AC, 확인날짜=2026-09-27.
- ↑ 2.0 2.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良藥苦口”,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517, 확인날짜=2026-09-27.
- ↑ 3.0 3.1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良薬は口に苦し”,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89%AF%E8%96%AC%E3%81%AF%E5%8F%A3%E3%81%AB%E8%8B%A6%E3%81%97, 확인날짜=2026-09-27.
- ↑ 《한비자(韓非子)》 〈외저설 좌상(外儲說左上)〉.
- ↑ 유향(劉向), 《설원(說苑)》 권9 〈정간(正諫)〉.
- ↑ 《공자가어(孔子家語)》 권4 〈육본(六本)〉.
- ↑ 김간(金榦), 〈명륜(明倫)〉, 《후재집(厚齋集)》 권18,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
- ↑ 사마천, 《사기》 권55 〈유후세가(留侯世家)〉.
- ↑ 범엽(范曄), 《후한서(後漢書)》 권74 하 〈원소유표열전(袁紹劉表列傳)〉.
- ↑ 진수(陳壽), 《삼국지(三國志)》 권59 〈오서(吳書)·오주오자전(吳主五子傳)〉.
- ↑ 당 태종(唐太宗), 〈평설연타행영주조(平薛延陀幸靈州詔)〉, 《전당문(全唐文)》 권8.
- ↑ 12.0 12.1 김부식(金富軾),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6 〈백제본기(百濟本紀)〉 동성왕 22년.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良藥苦口”(12건),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94권, 세종 23년 윤11월 24일 정해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2311124_001, 확인날짜=2026-09-27.
- ↑ 성간(成侃), 〈대루원(待漏院)〉, 《진일유고(眞逸遺稿)》 권1,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