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박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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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박빙(如履薄氷)은 살얼음을 밟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민(小旻)〉의 “如臨深淵,如履薄冰”에서 나왔다.
오늘날 한국어에서는 “여리박빙의 경영 환경”, “여리박빙의 휴전 상태”처럼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쓴다. 옛 문헌에서는 그런 위태로움 앞에서 스스로를 삼가고 조심하는 마음가짐을 가리키는 경우가 더 많았다(→ 뜻의 변화).
‘氷’과 ‘冰’은 같은 글자로, 한국과 일본에서는 주로 ‘氷’을, 중국에서는 ‘冰’을 쓴다. 중국어로는 ‘如履薄冰(rú lǚ bó bīng)’이라고 하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의 참고 자료는 “얇은 얼음 위를 걷는 듯하다. 일을 처리함이 지극히 신중하고 조심스러움을 비유한다”고 풀이한다.[2] 일본어에서는 ‘薄氷を履む(はくひょうをふむ)’라고 하여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임하는 것”의 비유로 쓰고, “薄氷を履む思い(살얼음을 밟는 심정)”처럼 말한다.[3]
《시경》 소아 〈소민〉의 마지막 장에 나온다. 〈모시서(毛詩序)〉는 이 시를 대부가 주나라 유왕(幽王)을 풍자한 것으로 본다.[4]
不敢暴虎,不敢馮河。人知其一,莫知其他。
戰戰兢兢,如臨深淵,如履薄冰。
“감히 맨손으로 범을 잡지 못하고, 감히 걸어서 강을 건너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 하나는 알지만 다른 것은 알지 못한다.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못에 다다른 듯, 얇은 얼음을 밟는 듯하라.” 맨손으로 범을 잡는 포호빙하(暴虎馮河)의 위험은 누구나 알지만, 소인의 계책을 따르다 나라가 무너지는 더 큰 위험은 모르니, 깊은 못가에 선 듯 얇은 얼음을 밟는 듯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앞 구절 “戰戰兢兢”에서 전전긍긍이 나왔다.
바로 다음 시인 〈소완(小宛)〉의 마지막 장에도 “조심조심 마음을 졸이기를 골짜기에 다다른 듯,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얇은 얼음을 밟는 듯한다(惴惴小心,如臨于谷。戰戰兢兢,如履薄冰)”는 구절이 있다.[5]
《시경》·《논어》·《효경》에서 여리박빙은 위태로움을 알고 스스로 삼가는 태도였다. 그래서 옛 문헌에서는 주로 임금이나 선비가 자신을 경계하는 말로 썼다. 《성어전》이 이 말을 “일을 처리함이 지극히 신중하고 조심스러움”으로 풀이하는 것도 이런 쓰임을 따른 것이다.[2]
조선에서도 같았다. 1770년 77세의 영조는 경복궁 근정전 옛터에 나아가 손수 지은 글에서 “나라를 세운 지 이미 379년이 되었으니 아, 성대하도다. 덕 없고 무능한 나에게 이르러서는 살얼음을 밟는 듯하다(至于否德無能,如履薄氷)”고 했다.[9] 1828년 대리청정을 하던 효명세자도 팔도 관찰사에게 내린 영(令)에서 “덕 없는 내가 외람되이 대리청정을 맡아 밤낮으로 근심하고 두려워하기를 살얼음 밟듯 한다(顧余否德,猥膺代聽,夙夜憂懼,如履薄氷)”고 했다.[10] 이황(李滉)은 1568년 선조에게 올린 경연 계차에서 옛 성현들이 “조심하고 삼가며, 깊은 못에 다다른 듯 얇은 얼음을 밟는 듯(兢兢業業,如臨深淵,如履薄氷)” 공부했다고 했다.[11]
오늘날 한국어의 여리박빙은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처럼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일’ 자체를 가리키는 쪽으로 무게가 옮겨 갔다.[1] 일본어의 ‘薄氷を履む’도 위험한 상태에 임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3] 같은 구절이 중국에서는 ‘조심스러움’으로, 한국과 일본에서는 ‘위태로움’으로 더 많이 읽히는 셈이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如履薄氷이 3건 보인다. 1545년 명종 즉위 직후 석강에서 《효경》을 강론하며 증자의 말을 든 기사, 위의 1770년 영조의 글과 1828년 효명세자의 영이다.[12] 한국고전종합DB의 문집 원문에서는 如履薄氷이 105건 검색된다.[13] 15세기 후반의 최충성(崔忠成)은 〈독소학경신편문(讀小學敬身篇文)〉에서 몸을 공경하는 요체는 마음을 공경하는 데 있다며 “《시경》에 ‘작은 마음으로 삼가고 삼간다’ 했고, 전(傳)에 ‘얇은 얼음을 밟듯, 깊은 못에 다다른 듯하다’ 했으니, 두려워하기 때문에 행하는 바가 공경스러울 수 있다”고 했다.[14]
- 인증서 만료를 하루 앞두고 갱신 작업을 하는 동안 운영팀은 여리박빙의 심정이었다.
- 협상은 타결됐지만 양측의 신뢰가 약해 여리박빙의 평화가 이어지고 있다.
- 선비들은 임금 앞에서 늘 여리박빙의 자세로 말을 삼갔다.
- 전전긍긍(戰戰兢兢): 몹시 두려워 벌벌 떨며 조심함. 같은 구절에서 나왔다.
- 여림심연(如臨深淵): 깊은 못에 다다른 듯함. 같은 구절의 앞부분으로, 《성어전》 참고 자료에도 실려 있다.[15]
- 임심리박(臨深履薄): 깊은 못에 다다르고 얇은 얼음을 밟음. 두 구절을 합친 말로, ‘이박임심(履薄臨深)’, ‘임심리빙(臨深履冰)’이라고도 한다.[8]
- 소심익익(小心翼翼): 매우 조심스럽고 삼감. 《성어전》이 임심리박의 비슷한 말로 든다.[8]
- 풍전등화(風前燈火), 누란지위(累卵之危): 매우 위태로운 처지. 오늘날 한국어의 여리박빙과 뜻이 통한다.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여리박빙”,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7%AC%EB%A6%AC%EB%B0%95%EB%B9%99, 확인날짜=2026-09-28.
- ↑ 2.0 2.1 2.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수정본 참고 자료 “如履薄冰”,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4564, 확인날짜=2026-09-28.
- ↑ 3.0 3.1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 “薄氷を履む”,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96%84%E6%B0%B7%E3%82%92%E5%B1%A5%E3%82%80, 확인날짜=2026-09-28.
- ↑ 《시경(詩經)》 〈소아(小雅)·소민(小旻)〉.
- ↑ 《시경(詩經)》 〈소아(小雅)·소완(小宛)〉.
- ↑ 《논어(論語)》 〈태백(泰伯)〉.
- ↑ 《효경(孝經)》 〈제후장(諸侯章)〉 제3.
- ↑ 8.0 8.1 8.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臨深履薄”,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378,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114권, 영조 46년 2월 8일 을묘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ua_14602008_001,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순조실록》 30권, 순조 28년 1월 1일 신축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wa_12801001_004, 확인날짜=2026-09-28.
- ↑ 이황(李滉), 〈무진경연계차(戊辰經筵啓箚) 2〉, 《퇴계집(退溪集)》 권7,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如履薄氷”,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8.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한국문집총간 원문 검색 “如履薄氷”,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8.
- ↑ 최충성(崔忠成), 〈독소학경신편문(讀小學敬身篇文)〉, 《산당집(山堂集)》 권1,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8.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수정본 참고 자료 “如臨深淵”,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3719,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