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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불허(豫測不許)는 미리 헤아려 짐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앞일이 어떻게 될지 전혀 내다볼 수 없음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주로 어떤 일이 예고 없이 일어나는 상황을 가리킨다.[1]

“예측불허의 승부”, “예측불허의 상황”, “결과는 예측불허다”처럼 승부·정세·날씨처럼 결과를 점칠 수 없는 일에 두루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고, 우리말샘에 ‘예측 불허’로 띄어 쓴 형태가 실려 있다.[1]

‘예측(豫測)’은 미리 헤아려 짐작함, ‘불허(不許)’는 허락하지 않음을 뜻하므로,[2] 글자대로는 “사태가 예측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문 어순으로 ‘不許豫測’이 아니라 ‘豫測不許’로 쓴 것은 근대 신문 표제에서 굳은 한국식 짜임으로 보인다(아래 ‘유래’). 일본어에서는 같은 뜻을 “予断を許さない(예단을 허락하지 않는다)”, “予測を許さない”처럼 문장으로 풀어 말하고, ‘予測不許’라는 네 글자 단어는 쓰지 않는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豫 예 미리, 먼저 미리
測 측 재다, 헤아리다 헤아려 짐작함
不 불 아니다 아니다
許 허 허락하다 허락함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중국 고전과 《조선왕조실록》·한국 문집 원문에서는 ‘豫測不許’를 찾을 수 없고,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의 근대 문헌에서도 이 네 글자 형태는 확인되지 않는다.

확인된 가장 이른 예는 1929년 6월 28일자 《동아일보》 1면의 기사 제목 “日本極左運動滅裂, 分裂과 內紛이 接踵하야 方向의 豫測不許”이다.[3] 이후 1930년대 《동아일보》에는 “豫測不許의 政局”(1932), “米英 「크로스」의 動向은 豫測不許”(1935)처럼 정치·국제 기사 제목에 자주 쓰였고, 1934년에는 ‘預測不許’로 적은 예도 있다.[4]

같은 시기 《동아일보》 제목에는 ‘○○不許’ 꼴이 여럿 보인다. 1920년 4월에 이미 “米鐵道復業樂觀不許”처럼 ‘낙관불허(樂觀不許)’가 쓰였고, 1929년 7월에는 ‘예단불허(豫斷不許)’도 나온다.[5] 당시 일본어 신문·서적에서는 “豫測を許さぬ”, “豫斷を許さゞる”처럼 문장으로 쓰던 표현이 1910년대부터 흔했는데,[6] 한국 신문은 이를 한문 투의 네 글자 제목어로 줄여 쓴 것으로 보인다.

사자성어 목록에는 1929년 6월 28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출전’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이 기사는 지금 확인되는 가장 이른 신문 용례이지만, 같은 신문에 같은 꼴의 ‘樂觀不許’가 1920년부터 쓰였으므로 특정 기사가 이 말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이런 제목 문체 속에서 생겨난 말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 대규모 트래픽이 몰리는 시점은 예측불허이므로, 서버는 자동 확장 정책으로 미리 대비해 둔다.
  • 제로데이 공격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예측불허라서 탐지만큼 빠른 대응 체계가 중요하다.
  • 두 팀은 연장전까지 가는 예측불허의 승부를 펼쳤다.
  • 1920~30년대 한국 신문 제목에서는 ‘낙관불허(樂觀不許)’, ‘예단불허(豫斷不許)’, ‘예측불허(豫測不許)’가 비슷한 자리에 번갈아 쓰였다. 이 가운데 오늘날 국어사전(우리말샘)에 오른 것은 예측불허뿐이고, 낙관불허·예단불허는 실려 있지 않다.[3][1]

유의어와 관련 표현

편집 원본 편집
  • 오리무중(五里霧中): 짙은 안개 속에 있어 방향을 알 수 없다는 뜻으로, 일의 갈피를 잡을 수 없음.
  • 예단불허(豫斷不許): 미리 판단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음. 1920~30년대 신문 제목에 쓰였다.
  • 변화무쌍(變化無雙): 변화가 매우 많거나 심함.
  • 풍전등화(風前燈火): 앞일을 장담할 수 없을 만큼 위태로운 처지.
  1. ↑ 1.0 1.1 1.2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예측 불허”,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focus_name=query&query=%EC%98%88%EC%B8%A1%EB%B6%88%ED%97%88, 확인날짜=2026-10-11.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예측”·“불허”,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8%88%EC%B8%A1, 확인날짜=2026-10-11.
  3. ↑ 3.0 3.1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동아일보》 1929년 6월 28일 1면, “日本極左運動滅裂, 分裂과 內紛이 接踵하야 方向의 豫測不許”, https://db.history.go.kr/id/npda_1929_06_28_v0001_0070, 확인날짜=2026-10-11.
  4.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동아일보》 1932년 8월 19일 1면 “北中舊將領 張學良辭職挽留 豫測不許의 政局”, https://db.history.go.kr/id/npda_1932_08_19_v0001_0190 ; 1934년 6월 9일 석간 4면 “蘭日公式會商 開會 … 會議의 前途는 預測不許”, https://db.history.go.kr/id/npda_1934_06_09_x0004_1430 , 확인날짜=2026-10-11.
  5.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동아일보》 1920년 4월 25일 2면 “米鐵道復業樂觀不許, 組合側서 새 要求提示로”, https://db.history.go.kr/id/npda_1920_04_25_v0002_0110 ; 1929년 7월 6일 1면 “民政黨內閣에 對한 小會派態度複雜 … 今後推移豫斷不許”, https://db.history.go.kr/id/npda_1929_07_06_v0001_0150 , 확인날짜=2026-10-11.
  6. ↑ 나카자와 린센(中沢臨川), 《ベルグソン》, 1914, “永劫、豫測を許さないものであらねばならない”; 소에지마 야소로쿠(副島八十六), 《帝国南進策》, 1916, “吾人の豫測を許さゞるものあり”,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컬렉션, https://dl.ndl.go.jp/pid/952128 , https://dl.ndl.go.jp/pid/955815 , 확인날짜=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