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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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부단(優柔不斷)은 어물어물 망설이기만 하고 결단성이 없음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마음이 여리고 무르거나 생각이 너무 많아서, 해야 할 결정을 제때 내리지 못하고 미루는 성격이나 태도를 가리킨다. “우유부단한 성격”, “우유부단하게 굴다”처럼 쓰며, 대개 비판하는 뜻이다. 신중함과 달리 결정을 미루는 사이에 때를 놓친다는 점에 초점이 있다.
일본어에서도 優柔不断(ゆうじゅうふだん)이라고 한다.[2] 현대 중국어에서는 優柔寡斷(优柔寡断, yōu róu guǎ duàn)을 주로 쓴다. 《성어전》은 優柔를 ‘유약함’으로 풀고, 優柔寡斷을 “일을 할 때 머뭇거려 때에 맞게 결단하지 못함”으로 설명한다.[3] 다만 옛 한문에서는 優柔不斷도 널리 쓰였다(아래 ‘유래’).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은 아니지만, 뿌리가 되는 표현은 선진·한대 문헌에 있다.
《한비자(韓非子)》 〈망징(亡徵)〉은 나라가 망할 징조 수십 가지를 늘어놓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다음과 같다.
緩心而無成,柔茹而寡斷,好惡無決而無所定立者,可亡也。
“마음이 느슨하여 이루는 것이 없고, 유약하여 결단이 적으며, 좋아하고 싫어함을 정하지 못해 뜻을 세우는 바가 없는 임금은 망할 수 있다.” 《성어전》은 優柔寡斷이 이 ‘柔茹而寡斷’에서 나왔다고 본다.[3]
《한서(漢書)》 〈원제기(元帝紀)〉의 찬(贊)에서 반고는 전한 원제(元帝)를 두고 이렇게 평하였다.
少而好儒,及即位,徵用儒生,委之以政,貢、薛、韋、匡迭為宰相。而上牽制文義,優游不斷,孝宣之業衰焉。
“어려서부터 유학을 좋아하여 즉위하자 유생을 불러 정사를 맡기니, 공우·설광덕·위현성·광형이 번갈아 재상이 되었다. 그러나 임금은 글의 뜻에 얽매여 머뭇거리며 결단하지 못하였으니, 선제(宣帝)가 이룬 업적이 이로써 쇠하였다.” 《성어전》은 이 ‘優游不斷’을 優柔寡斷과 같은 뜻의 말로 든다.[6]
송나라 때부터는 ‘優柔不斷’이라는 지금의 형태가 흔히 보인다. 북송의 조보지(晁補之)는 당나라 대종(代宗)이 환관 이보국과 정원진을 총애하다 “우유부단하여 큰 형벌을 무너뜨렸다(優柔不斷以隳大刑)”고 비판했다.[7] 남송 초의 이강(李綱)은 원제를 평하며 “원제에 이르러서는 우유부단하여 선제의 업적이 쇠하였다(至元帝則優柔不斷,孝宣之業衰焉)”라고 써서, 《한서》의 優游를 優柔로 바꾸어 적었다.[8] 1124년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서긍(徐兢)도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고려 현종의 뒤를 이은 임금을 두고 “우유부단하여 정사가 거칠어지고 힘이 꺾이자 북쪽의 적을 꺼려 다시 신하로 섬겼다(優柔不斷,政荒力屈,憚于北敵,遂復臣事之)”고 적었다.[9]
-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3건이 나오며 모두 조선 초기의 것이다. 1409년 대간은 민무구·민무질 형제의 처벌을 청하는 상소에서, 후한 장제(章帝)가 외척 두헌(竇憲)의 죄를 바로잡지 못해 두씨 일가가 권력을 휘두르게 된 일을 두고 “사관은 황제가 우유부단한 탓이라 하였다”고 들었다.[10]
- 1416년 밤, 태종이 처남인 민무휼·민무회 형제마저 죽이는 것은 차마 못하겠다고 하자 유사눌(柳思訥)은 같은 두헌의 예를 들고 “이제 전하께서 이 두 사람을 죽이지 않으신다면, 신 같은 자는 전하를 우유부단하다고 사책에 쓸 것이니, 만세 뒤에 전하께서 어찌 그 이름을 피하시겠습니까(如臣者以殿下爲優柔不斷,書諸史冊。萬世之後,殿下安敢辭其名也哉)”라고 몰아붙였다. 태종은 “알았다. 그러나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겠다. 전날부터 오늘 밤까지 되풀이해 생각해 보았으나 쉽게 결정하지 못하겠다”고 답했다.[11]
- 최부(崔溥)는 역사 논평 〈백제망(百濟亡)〉에서 백제 문주왕이 “와신상담해야 할 때에 우유부단하여 강한 신하에게 휘둘리다 제 몸도 지키지 못했다”고 평하였다.[12]
- 장애 대응 중에 롤백 여부를 두고 우유부단하게 시간을 끌면 피해만 커진다.
- 그는 신중한 것이 아니라 우유부단할 뿐이라는 평을 들었다.
- 메뉴 하나 고르는 데도 우유부단한 친구 때문에 모두가 기다려야 했다.
- 우유과단(優柔寡斷): 현대 중국어에서 주로 쓰는 같은 뜻의 말.[3] 소리가 같은 우유부단(優游不斷)은 《한서》에서 나온 옛 형태이다.[5][5]
- 수서양단(首鼠兩端): 구멍에서 머리를 내밀고 나갈까 말까 망설이는 쥐라는 뜻으로, 머뭇거리며 진퇴나 거취를 정하지 못함.
- 좌고우면(左顧右眄): 이쪽저쪽을 돌아본다는 뜻으로, 앞뒤를 재고 망설임.
- 반대 의미: 일도양단(一刀兩斷): 한 칼로 쳐서 두 도막을 낸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머뭇거리지 않고 선뜻 결정함. 과단성(果斷性): 일을 딱 잘라서 결정하는 성질. 중국어로는 當機立斷, 剛毅果決 등을 반의어로 든다.[3]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우유부단”,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A%B0%EC%9C%A0%EB%B6%80%EB%8B%A8, 확인날짜=2026-09-30.
- ↑ 2.0 2.1 2.2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優柔不断”,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84%AA%E6%9F%94%E4%B8%8D%E6%96%AD, 확인날짜=2026-09-30.
- ↑ 3.0 3.1 3.2 3.3 3.4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優柔寡斷”,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495, 확인날짜=2026-09-30.
- ↑ 《한비자(韓非子)》 〈망징(亡徵)〉.
- ↑ 5.0 5.1 5.2 반고(班固), 《한서(漢書)》 권9 〈원제기(元帝紀)〉 찬(贊).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優游不斷”,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3031, 확인날짜=2026-09-30.
- ↑ 조보지(晁補之), 《계륵집(雞肋集)》 권45.
- ↑ 이강(李綱), 《양계집(梁溪集)》 권151.
- ↑ 서긍(徐兢),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권2.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17권, 태종 9년 4월 2일 갑술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ca_10904002_002, 확인날짜=2026-09-30.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31권, 태종 16년 1월 12일 을사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ca_11601012_004, 확인날짜=2026-09-30.
- ↑ 최부(崔溥), 〈백제망(百濟亡)〉, 《금남집(錦南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