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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상륙 작전(長沙上陸作戰)은 6.25 전쟁 중인 1950년 9월 14일, 학도병이 주축인 육군 독립 제1유격대대 772명이 수송선 문산호를 타고 경상북도 영덕군 장사리 해안에 상륙해 북한군의 보급로를 끊으려 한 작전이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공방이 이어지던 1950년 9월, 유엔군은 인천 상륙 작전을 앞두고 있었다. 장사 상륙 작전은 그 하루 전에 동해안에서 벌인 양동 작전으로, 북한군 제2군단의 주 보급로인 7번 국도를 차단하고 적의 눈을 동해안으로 돌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부대원은 대부분 훈련을 충분히 받지 못한 학도 의용군이었다.[1]

  • 상륙 - 태풍 케지아가 몰고 온 거센 파도 속에 2,700톤급 전차 상륙함 문산호가 해안에서 좌초했고, 배를 발견한 북한군의 거센 공격 속에 상륙하면서 많은 대원이 쓰러졌다.
  • 전투 - 작전 개시 12시간 만에 200고지를 빼앗고 7번 국도를 끊었다. 2~3일로 예정했던 작전은 6일 동안의 전투로 이어졌다.
  • 철수 - 구조선 조치원호가 북한군의 공격으로 예정보다 일찍 떠나면서 대원들이 해변에 남겨졌다. 한국관광공사 자료는 구조되지 못한 대원을 39명, 인천광역시 웹진은 포로로 끌려간 대원을 40여 명으로 적는다.[2]

두 출처 모두 전사(또는 사망·실종) 139명, 부상 92명을 들지만, 인천광역시 웹진은 이 수치가 정확하지 않은 추정치라고 밝힌다. 작전은 오랫동안 잊혀 있다가, 1997년 해병대가 장사 앞바다에서 문산호를 찾아내면서 다시 알려졌다. 2020년 장사리 해변에 문산호를 본뜬 장사 상륙 작전 전승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1. ↑ 장사 상륙 작전, 인천 상륙 작전을 대성공으로 이끈, 인천광역시 웹진, 인천광역시, 2026-10-18 확인.
  2. ↑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영웅, 영덕 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관,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