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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前代未聞)은 이제까지 들어 본 적이 없음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앞선 시대(前代)에 아직 들어 보지 못했다(未聞)’는 말로, 매우 놀랍거나 새로운 일을 가리킨다.

전례가 없을 만큼 드문 일을 두고 “전대미문의 사건”, “전대미문의 기록”처럼 쓴다. 흔히 사고나 추문 같은 나쁜 일에 많이 쓰지만, 본래 뜻은 좋고 나쁨과 관계없이 ‘처음 듣는 일’이다(아래 ‘혼동 주의’ 참고).

일본어에서도 ‘前代未聞(ぜんだいみもん)’이라고 하며, 12세기 말부터 쓰인 오래된 말이다.[2] 현대 중국어에서는 이 네 글자를 잘 쓰지 않고 ‘전소미문(前所未聞)’, ‘문소미문(聞所未聞)’, ‘전소미유(前所未有)’를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에도 ‘前代未聞’은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다.[3] 다만 한문 전적에는 일찍부터 보인다(아래 ‘유래’ 참고).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前 전 앞 앞선
代 대 대신하다, 시대 시대, 세대
未 미 아니다, 아직 ~하지 않다 아직 ~하지 못하다
聞 문 듣다 들어 보다

특정한 고사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 한문에서 흔히 쓰던 서술이 네 글자로 굳은 말이다.

《마하지관》과 《진서(陳書)》

편집 원본 편집

확인되는 이른 예는 수나라 천태종의 개조 지의(智顗)가 594년 형주 옥천사에서 강설한 것을 제자 관정(灌頂)이 기록한 《마하지관(摩訶止觀)》이다. 이 책은 첫머리를 “지관의 밝고 고요함은 앞 시대에 아직 듣지 못한 것이다(止觀明靜,前代未聞)”라는 말로 연다.[4] 천태종에서 널리 읽힌 구절이라, 당나라 담연(湛然)의 《지관보행전홍결(止觀輔行傳弘決)》 등 뒤의 주석서들이 이 구절을 거듭 풀이했다.[5]

당나라 요사렴(姚思廉)이 편찬한 《진서(陳書)》 권1 〈고조기(高祖紀)〉에서는 진(陳)나라를 세운 진패선(陳霸先)이 양나라 원제의 공을 두고 “원수를 갚고 어려움을 구한 이는 오직 효원제뿐이니, 그 공업의 성대함은 앞 시대에 듣지 못한 것이다(唯孝元而已,功業茂盛,前代未聞)”라고 말한다.[6] 《태평어람》이 인용한 같은 대목에는 ‘茂盛’이 ‘懋盛’으로 되어 있다.[7] 두 예 모두 좋은 일을 기리는 말이다.

나무위키 등에는 ‘전대미문’이 중국어에는 없는 표현이라고 소개한 경우가 있으나, 현대 중국어에서 잘 쓰지 않을 뿐 수·당 시기 한문 문헌에 이미 네 글자 그대로 나온다.[4][6]

《일본국어대사전》은 첫 용례로 고후쿠지(興福寺)의 첩장(牒狀, 1198)에 나오는 “신목(神木)이 불탄 것은 전대미문(御榊焼失前代未聞)”을 들고, 이어 《태평기(太平記)》(14세기 후반)의 “밧줄에 묶여 끌려가는 모습은 전대미문의 치욕”을 든다. ‘せんだいみもん’이라고도 읽고, ‘선대미문(先代未聞)’이라고도 썼다.[2] 일본에서는 중세 이래 꾸준히 쓰인 말이다.

조선 문헌에서는 ‘前代未聞’이 드물다. 《조선왕조실록》과 한국고전종합DB 문집 원문에서는 검색되지 않고,[8] 《승정원일기》 효종 즉위년(1649) 8월 기사에 임금의 효성을 기리며 “정성스러운 효와 지극한 덕은 전대미문(誠孝至德,前代未聞)”이라 한 예가 보인다.[9] 조선에서는 같은 뜻으로 ‘전고소무(前古所無)’, ‘전소미문(前所未聞)’, ‘전고미문(前古未聞)’, ‘광고소무(曠古所無)’ 같은 말을 훨씬 많이 썼다. 《조선왕조실록》 원문 기준으로 ‘前古所無’는 380건 넘게, ‘前所未聞’은 120건 넘게 검색된다.[10] 조선 문집을 옮긴 현대 번역문에는 ‘전대미문’이 여러 번 보이지만, 이는 번역자가 쓴 말이다.

‘전대미문’은 나쁜 일에만 쓰는 말이 아니다.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은 일본에서 “불상사 같은 나쁜 일에 쓰는 것이 보통”이라는 주장이 퍼져, 좋은 뜻으로 쓴 문장을 틀렸다고 한 퀴즈 프로그램까지 있었다고 소개하면서, 《진서(陳書)》의 예나 이시자카 요지로(石坂洋次郎)의 《푸른 산맥(青い山脈)》(1947)처럼 좋은 뜻으로 쓴 예가 얼마든지 있다고 설명한다.[2] 한국어에서도 “전대미문의 쾌거”처럼 좋은 일에 쓸 수 있다.

  • 국가 행정망 전체가 하루 넘게 멈춘 것은 전대미문의 사태였다.
  • 창단 3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은 전대미문의 쾌거다.
  • 한 사람이 같은 날 두 대회에서 우승하는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졌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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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무후무(前無後無), 공전절후(空前絕後):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음.[11]
  • 미증유(未曾有): 지금까지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12]
  • 전인미답(前人未踏): 이제까지 그 누구도 가 보지 못함.[13]
  • 전소미문(前所未聞): 이전에 들어 본 적이 없음. 《성어전》은 원나라 주밀(周密)의 《제동야어(齊東野語)》를 용례로 든다.[3]
  • 문소미문(聞所未聞): 들어 보지 못한 것을 들음.
  • 파천황(破天荒): 이전에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처음으로 해냄. 당나라 형주에서 과거 합격자가 나오지 않다가 처음 나온 일을 두고 이른 말로, 《북몽쇄언(北夢瑣言)》에 나온다.[14] 일본어에서도 ‘破天荒(はてんこう)’을 전대미문과 비슷한 말로 쓴다.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전대미문”,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0%84%EB%8C%80%EB%AF%B8%EB%AC%B8, 확인날짜=2026-09-28.
  2. ↑ 2.0 2.1 2.2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前代未聞”,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89%8D%E4%BB%A3%E6%9C%AA%E8%81%9E, 확인날짜=2026-09-28.
  3. ↑ 3.0 3.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前所未聞”,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3456, 확인날짜=2026-09-28.
  4. ↑ 4.0 4.1 지의(智顗) 설, 관정(灌頂) 기, 《마하지관(摩訶止觀)》 권1상, 대정신수대장경 T1911, CBETA.
  5. ↑ 담연(湛然), 《지관보행전홍결(止觀輔行傳弘決)》 권1, 대정신수대장경 T1912, CBETA.
  6. ↑ 6.0 6.1 요사렴(姚思廉), 《진서(陳書)》 권1 〈고조기(高祖紀) 상〉.
  7. ↑ 이방(李昉) 등, 《태평어람(太平御覽)》 권133 인용.
  8.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한국고전종합DB 문집 원문 검색 “前代未聞”, 확인날짜=2026-09-28.
  9.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효종 즉위년(1649) 8월.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前古所無”·“前所未聞”·“前古未聞”·“曠古所無”,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8.
  1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전무후무”,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0%84%EB%AC%B4%ED%9B%84%EB%AC%B4, 확인날짜=2026-09-28.
  1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미증유”,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F%B8%EC%A6%9D%EC%9C%A0, 확인날짜=2026-09-28.
  13.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전인미답”,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0%84%EC%9D%B8%EB%AF%B8%EB%8B%B5, 확인날짜=2026-09-28.
  14.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파천황”,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8C%8C%EC%B2%9C%ED%99%A9,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