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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면피(鐵面皮)는 쇠로 만든 낯가죽이라는 뜻으로, 염치가 없고 뻔뻔스러운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철면피는 남의 비난이나 눈총을 받아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 또는 그런 태도를 가리킨다. “철면피한 사람”, “철면피 같은 짓”처럼 쓰며, 속된 말로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뜻이 가까운 성어로 ‘후안무치(厚顔無恥)’, ‘면장우피(面張牛皮)’가 있다.

일본어에서도 ‘鉄面皮(てつめんぴ)’를 같은 뜻으로 쓴다.[2] 현대 중국어에서는 이 뜻으로 흔히 ‘厚顏無恥’나 ‘臉皮厚(낯가죽이 두껍다)’ 같은 말을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에는 ‘鐵面皮’가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다.

같은 ‘철면(鐵面)’이 들어가지만 철면무사(鐵面無私)는 뜻이 정반대이다. 철면무사의 ‘쇠 얼굴’은 인정이나 권세에 흔들리지 않는 엄정함을 칭찬하는 말이고, 철면피의 ‘쇠 낯가죽’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함을 비난하는 말이다. 북송의 조변(趙抃)이 권세가를 가리지 않고 탄핵해 ‘철면어사(鐵面御史)’라 불린 것은 앞의 뜻이다.[3]

‘열 겹 철갑처럼 두꺼운 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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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면피의 유래로 흔히 드는 것은 오대(五代)의 왕인유(王仁裕)가 당나라 개원(開元)·천보(天寶) 연간의 일화를 모은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 권1의 〈참안후여갑(慚顔厚如甲)〉이다.[4]

進士楊光遠,惟多矯飾,不識忌諱。遊謁王公之門,干索權豪之族,未嘗自足。稍有不從,便多誹謗,常遭有勢撻辱,略無改悔。時人多鄙之,皆曰:「楊光遠慚顏,厚如十重鐵甲也。」

진사 양광원(楊光遠)은 겉을 꾸미는 일이 많고 꺼릴 줄을 몰랐다. 왕공(王公)의 집을 찾아다니며 권세가에게 이것저것을 요구하면서도 만족한 적이 없었고, 조금이라도 들어주지 않으면 헐뜯기 일쑤였다. 세도가에게 매를 맞고 욕을 보는 일이 잦았지만 조금도 고치거나 뉘우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경멸하며 “양광원의 부끄러워하는 낯은 두껍기가 열 겹 철갑과 같다”고 했다.

이 이야기에는 ‘철면피’라는 세 글자가 직접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두꺼운 낯을 쇠에 빗대는’ 비유의 이른 예로 널리 인용되며, 송나라 때의 《유설(類說)》 권21에도 요약되어 실렸다.[5] 명나라 장대(張岱)의 《야항선(夜航船)》 권13은 이 일화를 “진사 왕광원(王光遠)”의 일로 적고 출처를 《쇄언(瑣言)》이라 했는데,[6] 오늘날 인터넷에서 주인공을 ‘왕광원’으로 소개하는 글이 보이는 것은 이런 후대 문헌의 착오를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鐵面皮’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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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面皮’ 세 글자는 송나라 문헌에 이미 보인다. 남송의 장자(張鎡)는 시에서 “이 늙은이는 타고나기를 철면피(老子生來鐵面皮)”라고 스스로를 일렀고,[7] 선종 어록 《오등회원(五燈會元)》 권11에는 “새로 풀무에서 나온 금 탄환이 스님의 쇠 낯가죽을 뚫는다(新出紅爐金彈子,簉破闍黎鐵面皮)”는 문답이 실려 있다.[8] 원나라 마치원(馬致遠)의 잡극 《진단고와(陳摶高臥)》에서는 유혹하러 온 여인이 꿈쩍도 하지 않는 도사 진단에게 “그 도사 철면피 좀 거두시오, 얼굴이 어쩌면 서리를 긁어 놓은 것 같소(先生休拿那道人鐵面皮,怎麼臉上和刮霜的一般)”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뻔뻔함보다 차갑게 굳은 표정에 가깝다.[9]

일본어에서는 《일본국어대사전》이 1781년의 조루리(浄瑠璃) 《가마쿠라 삼대기(鎌倉三代記)》의 “에잇, 끈질긴 계집의 잔꾀로다. 참으로 네 년은 철면피로구나(誠に儕は鉄面皮)”를 첫 용례로 든다.[2]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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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鐵面皮’가 한 건도 없다. 한국고전종합DB의 문집 원문에서는 조귀명(趙龜命)이 1726년에 쓴 〈서화진기언원중랑서후(書花陣綺言袁中郞序後)〉에서, 음란한 책에 자기 이름을 버젓이 서문으로 단 명나라 원굉도(袁宏道)를 두고 “하늘을 덮을 만큼 대담하고 온통 철면피(具包天膽渾鐵面皮)”라고 꾸짖은 예가 보인다.[10]

양광원 일화의 ‘열 겹 철갑(十重鐵甲)’은 《승정원일기》의 조선 관료들 글에 겸양의 말로 여러 번 보인다. 사직을 청하다가 끝내 명을 받들어 나아갈 때 “열 겹 철갑 같은 낯을 무릅쓰고(抗十重鐵甲之厚) 나왔다”고 스스로를 낮추는 식이다.[11]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鐵 철 쇠 쇠처럼 단단함
面 면 얼굴 낯
皮 피 가죽 낯가죽
  • 남의 오픈소스 코드를 그대로 가져다 쓰고 라이선스 표기까지 지운 채 자기 작품이라고 발표하다니, 철면피가 따로 없다.
  • 약속을 몇 번이나 어기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또 돈을 빌려 달라니 참 철면피다.
  • 뻔뻔한 낯가죽을 두고 한 옛날의 독설로, 오나라 마지막 황제 손호(孫皓)의 말이 전한다. 진(晉)에 항복한 뒤 가충(賈充)이 “어째서 사람의 낯가죽 벗기기를 좋아했소?”라고 묻자 손호는 “그 낯이 두꺼운 것이 미워서요(憎其顔之厚)”라고 답했다고 《어림(語林)》은 적는다.[12] 《진서(晉書)》 〈왕제전(王濟傳)〉에는 같은 문답이 무제(武帝)와 바둑을 두던 왕제가 곁에 있던 손호에게 물은 일로, 답은 “임금에게 무례한 자를 보면 벗겼다(見無禮於君者則剝之)”로 실려 있다. 마침 왕제가 바둑판 밑으로 다리를 뻗고 있어서, 손호가 이 말로 그를 비꼰 것이라고 한다.[13]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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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안무치(厚顔無恥): 뻔뻔스러워 부끄러움이 없음.[14]
  • 면장우피(面張牛皮): 얼굴에 쇠가죽을 발랐다는 뜻으로, 몹시 뻔뻔스러움을 이르는 말.[15]
  • 적반하장(賊反荷杖):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 잘못하고도 뻔뻔하게 군다는 점에서 통한다.
  • 반대 의미: 철면무사(鐵面無私): 같은 ‘쇠 얼굴’이지만 사사로움 없이 엄정함을 칭찬하는 말.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철면피”,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B2%A0%EB%A9%B4%ED%94%BC, 확인날짜=2026-09-26.
  2. ↑ 2.0 2.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鉄面皮”,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89%84%E9%9D%A2%E7%9A%AE, 확인날짜=2026-09-26.
  3. ↑ 《송사(宋史)》 권316 〈조변전(趙抃傳)〉.
  4. ↑ 왕인유,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 권1 〈참안후여갑(慚顔厚如甲)〉.
  5. ↑ 증조(曾慥), 《유설(類說)》 권21.
  6. ↑ 장대, 《야항선(夜航船)》 권13.
  7. ↑ 장자(張鎡), 《남호집(南湖集)》 권7.
  8. ↑ 보제(普濟), 《오등회원(五燈會元)》 권11.
  9. ↑ 마치원(馬致遠), 《서화산진단고와(西華山陳摶高臥)》.
  10.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조귀명, 《동계집(東谿集)》 권7 〈서화진기언원중랑서후〉,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510A_0070_010_0110, 확인날짜=2026-09-26.
  11. ↑ 《승정원일기》 영조 3년 4월.
  12. ↑ 《태평어람(太平御覽)》 권364 인용 《어림(語林)》.
  13. ↑ 《진서》 권42 〈왕제전(王濟傳)〉.
  14.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후안무치”,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B%84%EC%95%88%EB%AC%B4%EC%B9%98, 확인날짜=2026-09-26.
  15.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면장우피”,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9%B4%EC%9E%A5%EC%9A%B0%ED%94%BC,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