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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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삼간(草家三間)은 세 칸밖에 안 되는 초가라는 뜻으로, 아주 작은 집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앞뒤를 바꾼 ‘삼간초가(三間草家)’가 표준국어대사전의 기본 표제어이며, ‘삼간초옥(三間草屋)’이라고도 한다.[1][2]
‘초가(草家)’는 짚이나 갈대로 지붕을 인 집이고, ‘칸(間)’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단위로 집의 크기를 세는 말이다. 가장 작은 살림집을 가리키며, 가난하지만 소박한 살림의 상징으로 쓰인다.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한국에서 굳은 말이다. 무엇보다 속담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초가삼간’은 처음에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 집의 규모를 적는 말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2건이 있다. 1488년(성종 19) 성종은 경상도 여러 고을을 다니며 폐단을 일으킨 승려 육청(六淸)을 국문하게 하면서, 그가 경산에 “기와집 33칸과 초가 3칸을 지었다(瓦家三十三間、草家三間造排)”는 점을 들었다.[3] 1776년(영조 52) 3월, 영조의 국상 중에 세손(정조)은 “여묘(廬墓) 살 곳에는 초가 3칸을 세우는 것이 옳다(居廬所,立草家三間可也)”고 영을 내렸다.[4] 정구(鄭逑)의 편지에도 향교의 “명륜당 초가 3칸(明倫堂草家三間)”이라는 말이 보인다.[5] 《승정원일기》에는 장마에 무너진 민가를 보고하면서 “누구의 초가 3칸이 모두 무너졌다(草家三間全壓)”고 적은 기록이 수없이 나온다.
한문 문헌에서 ‘草家三間’이라는 형태는 조선 기록에서만 확인된다. 같은 뜻으로 시에서는 ‘삼간모옥(三間茅屋)’, ‘삼간초옥(三間草屋)’을 많이 썼다. 서거정(徐居正)은 고향 대구를 그리며 “세 칸 띠집은 예전에 이미 허물어졌다(三間茅屋昔曾破)”고 읊었다.[6] 1494년(성종 25) 성종은 왕자에게 내려 준 밭에 백성이 지은 집을 헐자는 말에 “가난한 백성은 세 칸 띠집이라도 짓기가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小民雖茅屋三間作成,豈不難乎)”라며 함부로 철거하지 못하게 했다.[7]
칸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았지만 신분에 따라 집의 칸수와 한 칸의 치수를 나라에서 정했다. 1449년(세종 31) 의정부가 고쳐 정한 규정에 따르면 대군의 집은 60칸, 2품 이상은 40칸, 3품 이하는 30칸까지였고, 서인(庶人)은 10칸까지에 한 칸의 길이는 8척, 너비는 7척 5촌으로 했다.[8] 초가삼간은 서인에게 허락된 규모에서도 아주 작은 편이었던 셈이다.
- 그는 평생 초가삼간에 살면서도 이웃 돕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 오류 하나 잡겠다고 운영 서버 설정을 통째로 갈아엎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초가삼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B4%88%EA%B0%80%EC%82%BC%EA%B0%84, 확인날짜=2026-10-03.
- ↑ 2.0 2.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삼간초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2%BC%EA%B0%84%EC%B4%88%EA%B0%80,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221권, 성종 19년 10월 20일 경술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1910020_004,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127권, 영조 52년 3월 6일 정축 10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ua_15203006_010, 확인날짜=2026-10-03.
- ↑ 정구(鄭逑), 〈답지례유생(答知禮儒生)〉, 《한강집(寒岡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27A_0070_010_0170, 확인날짜=2026-10-03.
- ↑ 서거정(徐居正), 〈송한참의이안태사귀대구(送韓參議以安胎使歸大丘)〉, 《사가집(四佳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61A_0230_010_0400,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287권, 성종 25년 2월 28일 정해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2502028_003,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23권, 세종 31년 1월 26일 정미 5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3101026_005, 확인날짜=2026-10-03.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빈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9%88%EB%8C%80, 확인날짜=2026-10-03.
- ↑ 박성서, “[박성서 평론] ‘초가삼간’, ‘처녀 농군’의 민요가수 최정자 인터뷰[1]”, 뉴스메이커, 2023-11-15, http://m.newsmaker.or.kr/news/articleView.html?idxno=146030,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5권, 정조 2년 5월 2일 신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va_10205002_001,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