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담상조
더 많은 작업
간담상조(肝膽相照)는 간과 쓸개를 서로 비춰 보인다는 뜻으로,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친하게 사귐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간담(肝膽)’은 간과 쓸개로, 몸 깊숙이 있는 장기라는 데서 사람의 속마음이나 참된 정성을 가리킨다. ‘간담이 서늘하다’, ‘간담을 비추다’ 같은 표현과 같은 계열이다. 간담상조는 숨기는 것 없이 진심을 다 내보이며 믿고 지내는 사이, 특히 어려울 때도 변하지 않을 깊은 신뢰를 말할 때 쓴다.
중국어에서도 같은 한자로 쓰며(간체 肝胆相照), 《성어전》은 비슷한 말로 ‘피간역담(披肝瀝膽)’, ‘추심치복(推心置腹)’을, 반대말로 ‘구심투각(鉤心鬥角)’, ‘이우아사(爾虞我詐)’를 든다. 《성어전》은 간담상조가 두 사람 사이의 솔직함에 무게가 있는 데 비해 피간역담은 개인이 조직이나 나라에 바치는 충성에 무게가 있다고 구분한다.[2] 일본어에서는 ‘肝胆相照らす(かんたんあいてらす)’라는 동사구로 써서 “肝胆相照らす仲(간담상조하는 사이)”처럼 말한다.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이 든 첫 용례는 우치다 로안(內田魯庵)의 1898년 글이고,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도 쓰였다.[3]
특정한 한 이야기에서 나왔다기보다,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인다는 오래된 비유가 네 글자로 굳은 말이다.
《성어전》은 이 말의 근원을 《사기》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서 찾는다. 초한 전쟁 때 제나라 출신 괴통(蒯通)은 한신에게 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서 독립해 천하를 셋으로 나누라고 설득하며 이렇게 말했다.[2]
臣願披腹心,輸肝膽,效愚計,恐足下不能用也。
“신은 배와 가슴을 열고 간과 쓸개를 쏟아 어리석은 계책을 바치고자 하나, 족하께서 쓰지 못하실까 두렵습니다.”[4] 《성어전》은 여기의 ‘披腹心,輸肝膽’이 변하여 ‘간담상조’가 되었다고 설명한다.[2]
일본의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은 다른 갈래로 《서경잡기(西京雜記)》 권3의 이야기를 든다.[3] 한 고조가 함양궁에 들어가 보니 진나라 보물 가운데 너비 4척, 높이 5척 9촌의 네모난 거울이 있었는데, 사람이 비추면 오장이 훤히 보였다. “여자가 사악한 마음을 품으면 쓸개가 부풀고 심장이 뛰었는데, 진시황은 늘 이것으로 궁인을 비추어 쓸개가 부풀고 심장이 뛰는 자를 죽였다(女子有邪心,則膽張心動。秦始皇常以照宮人,膽張心動者則殺之).”[5] 이 사전은 여기서 나온 ‘쓸개를 비춘다(照膽)’는 표현과 ‘간담을 연다’는 비유가 합쳐져 간담상조가 생긴 것으로 본다.
당나라 때에는 이미 ‘간담을 서로 보인다’는 짝말이 쓰였다. 당차(唐次)의 제문에는 “골육처럼 사귀고 간담을 서로 보였다(骨肉為交,肝膽相見)”는 구절이 있다.[2]
간담상조를 이야기할 때 흔히 함께 소개되는 글이 당나라 한유(韓愈)가 벗 유종원(柳宗元)을 위해 지은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이다. 유종원은 자신이 유주 자사로 다시 좌천될 때 함께 쫓겨난 유우석(劉禹錫)이 노모를 모시고 더 험한 파주(播州)로 가야 하자, 자기 임지와 바꿔 달라고 청했다. 한유는 이 일을 적은 뒤 세상의 얕은 사귐을 꾸짖었다.[6]
士窮乃見節義。今夫平居里巷相慕悅,酒食遊戲相征逐,詡詡強笑語以相取下,握手出肺肝相示,指天日涕泣,誓生死不相背負,真若可信;一旦臨小利害,僅如毛發比,反眼若不相識,落陷阱不一引手救,反擠之,又下石焉者,皆是也。
“선비는 곤궁해져야 절의가 드러난다. 지금 사람들은 평소 마을에 살면서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술과 음식과 놀이로 서로 불러 어울리고, 억지로 웃고 떠들며 서로 몸을 낮추고, 손을 잡고 폐와 간을 꺼내 서로 보이며 해를 가리켜 눈물을 흘리고 죽든 살든 저버리지 말자고 맹세하니 정말 믿을 만한 것 같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털끝만 한 이해가 걸리면 눈을 돌려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고, 함정에 빠져도 손 한 번 내밀어 구해 주지 않으며 도리어 밀어 넣고 돌을 던지는 자가 모두 이렇다.” 사귐의 진정성을 묻는 맥락이 간담상조와 통하고, 이 글에서 ‘낙정하석(落穽下石)’이라는 성어도 나왔다.
나무위키 등 일부 매체에서는 이 대목을 “握手出肝膽相示”로 옮기고 간담상조의 출전으로 소개하기도 하지만, 원문은 ‘肝膽’이 아니라 ‘肺肝(폐와 간)’이며 ‘肝膽相照’ 네 글자는 이 글에 나오지 않는다.[6] 오히려 한유는 손잡고 속을 보이는 맹세가 쉽게 깨지는 세태를 비판한 것이다.
‘肝膽相照’ 네 글자는 북송 때부터 보인다. 진사도(陳師道)는 남을 대신해 조(曹) 현령을 제사하는 글에서 “예전에 그대와 동료로 지내며 … 형식을 잊고 속된 것을 벗어나 간담을 서로 비추었다(忘形脫俗,肝膽相照)”고 썼고,[7] 조열지(晁說之)는 편지에서 “간담을 서로 비춘다면 빈말은 필요 없다(茍肝膽相照,無事空言可也)”고 했다.[8] 《성어전》이 서증으로 드는 남송 호태초(胡太初)의 《주렴서론(晝簾緒論)》, 문천상(文天祥)의 편지 “알아주는 벗이니 간담을 서로 비추어 글을 쓰며 속을 다 털어놓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所恃知己,肝膽相照,臨書不憚傾倒)”보다 앞선다.[2] 명대의 아동 교재 《유학경림(幼學瓊林)》은 “간담을 서로 비추면 이를 마음을 나누는 벗이라 하고, 뜻과 기개가 미덥지 않으면 이를 입으로만 사귀는 벗이라 한다(肝膽相照,斯為腹心之友;意氣不孚,謂之口頭之交)”고 대구로 가르쳤다.[9]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도 [그 밖의 문헌]으로 명대 교재 《고사성어고(故事成語考)》 〈붕우빈주〉를 든다.[3]
- 두 사람은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함께 넘긴 간담상조의 사이이다.
- 보안 사고가 났을 때 협력사와 간담상조하는 관계가 아니면 로그 하나 받기도 어렵다.
- 간담상조하던 벗도 이해관계 앞에서는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 한유의 경고였다.
- 중국 정치에서 간담상조는 공식 용어로도 쓰인다. 1982년 중국공산당 제12차 전국대표대회는 기존의 “장기공존, 상호감독(長期共存、互相監督)”에 “간담상조, 영욕여공(肝膽相照、榮辱與共)”을 더해, 공산당과 이른바 민주당파의 관계를 규정하는 열여섯 글자 방침으로 정리했다.[12]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간담상조”,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0%84%EB%8B%B4%EC%83%81%EC%A1%B0, 확인날짜=2026-10-03.
- ↑ 2.0 2.1 2.2 2.3 2.4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肝膽相照”,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03, 확인날짜=2026-10-03.
- ↑ 3.0 3.1 3.2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속담을 아는 사전(ことわざを知る辞典)》, “肝胆相照らす”,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82%9D%E8%83%86%E7%9B%B8%E7%85%A7%E3%82%89%E3%81%99, 확인날짜=2026-10-03.
- ↑ 사마천, 《사기》 권92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 ↑ 《서경잡기(西京雜記)》 권3 〈함양궁이물(咸陽宮異物)〉.
- ↑ 6.0 6.1 한유(韓愈),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 《창려선생집(昌黎先生集)》 권32.
- ↑ 진사도(陳師道), 〈대제조령문(代祭曹令文)〉, 《후산집(後山集)》 권15.
- ↑ 조열지(晁說之), 〈답가주조통판(答嘉州趙通判)〉, 《숭산집(嵩山集)》 권31.
- ↑ 《유학경림(幼學瓊林)》 권2 〈붕우빈주(朋友賓主)〉.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83권, 중종 32년 1월 22일 임인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3201022_001,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42권, 선조 26년 9월 1일 임자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2609001_002, 확인날짜=2026-10-03.
- ↑ 참고: “‘长期共存、互相监督、肝胆相照、荣辱与共’方针的由来”, 중국공산당신문망(中国共产党新闻网), http://cpc.people.com.cn/n/2014/0303/c182256-24510577.html,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