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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무쌍(國士無雙)은 나라 안에서 견줄 사람이 없을 만큼 빼어난 인물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중국 한(漢)나라 초기에 소하(蕭何)가 한왕 유방(劉邦)에게 한신(韓信)을 천거하며 한 말에서 나왔다.

‘국사(國士)’는 나라에서 손꼽히는 인물을 말하고, ‘무쌍(無雙)’은 짝이 될 만한 이가 없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으로 쉽게 대신할 수 없는 핵심 인재를 높일 때 쓴다. 오늘날 한국어에서는 일상어보다는 글말이나 비유로 쓰는 경우가 많다.

중국어에서도 ‘國士無雙(guó shì wú shuāng)’이라 하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나라 안에서 둘도 없는 뛰어난 인재”로 풀이하고 《사기》 〈회음후열전〉을 든다.[2] 일본어에서는 ‘国士無双(こくしむそう)’라고 하며, 같은 뜻 외에 마작 역(役)의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아래 여담).[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國 국 나라 나라
士 사 선비, 사내 (國士) 나라에서 손꼽히는 인물
無 무 없다 없다
雙 쌍 둘, 짝 견줄 짝

소하가 한신을 쫓아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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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권92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온다.[4] 한신은 처음 항량(項梁)과 항우(項羽) 밑에 있었으나 낭중(郎中)에 머물렀고, 여러 번 계책을 올려도 쓰이지 않자 한왕 유방에게로 갔다. 그러나 한나라에서도 군량을 맡는 치속도위(治粟都尉)가 되었을 뿐 크게 쓰이지 못했다. 한신과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눈 승상 소하는 그를 비범하게 여겼다.

유방의 군대가 남정(南鄭)에 이를 무렵 도중에 달아난 장수가 수십 명이었다. 한신도 소하가 여러 번 자기를 천거했는데도 쓰이지 않는다고 여겨 달아났다. 소하는 이 말을 듣자 왕에게 아뢸 겨를도 없이 직접 뒤쫓아 갔다. 누군가 “승상 소하가 달아났다”고 아뢰자 유방은 좌우의 손을 잃은 듯 크게 노했다. 하루이틀 뒤 소하가 돌아오자 유방은 성내면서도 반가워하며 왜 달아났느냐고 꾸짖었다.

何曰:「臣不敢亡也,臣追亡者。」上曰:「若所追者誰?」何曰:「韓信也。」上復罵曰:「諸將亡者以十數,公無所追;追信,詐也。」何曰:「諸將易得耳。至如信者,國士無雙。王必欲長王漢中,無所事信;必欲爭天下,非信無所與計事者。顧王策安所決耳。」

[4]

소하는 “신은 감히 달아난 것이 아니라 달아난 사람을 쫓아갔습니다”라고 했다. 누구를 쫓았느냐고 묻자 “한신입니다”라고 답했다. 유방이 “달아난 장수가 열 명을 헤아리는데 공은 아무도 쫓지 않더니 한신을 쫓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라고 다시 꾸짖자, 소하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장수들은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한신 같은 사람은 나라 안의 인물 가운데 둘도 없습니다. 왕께서 오래도록 한중(漢中)의 왕으로만 지내시려면 한신을 쓸 일이 없겠지만, 천하를 다투려 하신다면 한신 말고는 함께 일을 꾀할 사람이 없습니다. 다만 왕께서 어느 쪽으로 정하시느냐에 달렸습니다.”

유방이 동쪽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하자 소하는 한신을 쓰면 머물 것이고 쓰지 않으면 끝내 달아날 것이라고 했다. 유방이 장수로 삼겠다고 하자 소하는 그래도 떠날 것이라 했고, 대장(大將)으로 삼겠다고 하자 그제야 “다행입니다”라고 했다. 소하는 또 왕이 평소 오만하고 예의가 없어 대장을 임명하는 것도 어린아이 부르듯 하니 한신이 떠나는 것이라며, 좋은 날을 골라 재계하고 단을 쌓아 예를 갖추라고 했다. 장수들은 저마다 자기가 대장이 되리라 여겼다가, 대장이 한신인 것을 보고 온 군대가 놀랐다.[4]

《한서(漢書)》 권34 〈한신전〉에도 같은 대목이 있는데, 소하의 말이 “諸將易得,至如信,國士無雙”으로 조금 짧다.[5] 이 이야기는 뒤에 ‘달밤에 한신을 쫓다(月下追韓信)’라는 장면으로 희곡과 소설에서 널리 다루어졌다. 명나라 희곡 《천금기(千金記)》에도 “임금을 위해 어진 이를 구하여 달밤에 한신을 쫓았다(爲主求賢。月下追韓信)”는 대사가 나온다.[6] 다만 《사기》 원문에는 달밤이라는 말이 없다.

국사(國士)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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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는 나라에서 첫손꼽히는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기》 〈자객열전〉에서 예양(豫讓)은 지백(智伯)을 위해 끝까지 원수를 갚으려 한 까닭을 묻는 조양자(趙襄子)에게 “범씨와 중항씨는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우했으니 나도 보통 사람으로서 갚았고, 지백은 나를 국사로 대우했으니 나도 국사로서 갚는다(至於智伯,國士遇我,我故國士報之)”고 답했다.[7] 소하는 이 말에 ‘무쌍’을 붙여, 국사 가운데서도 견줄 이가 없다고 한껏 높였다.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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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의 이규보(李奎報)는 〈한신전박(韓信傳駮)〉에서 한신이 역모를 꾀했다는 기록을 반박하며, 초와 한이 맞서던 때 “국사무쌍의 재주(國士無雙之才)”를 지닌 한신이 초에 붙으면 한이 위태롭고 한에 붙으면 초가 위태로웠는데도 끝내 한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했다.[8]
  • 서거정(徐居正)이 지은 한명회(韓明澮)의 신도비명에는, 권람(權擥)이 수양대군(뒷날의 세조)에게 한명회를 천거하며 “한생(韓生)은 일을 맡아 해낼 그릇이 있어 국사무쌍이니 지금의 관중·악의입니다(韓生有幹局。國士無雙。今之管樂)”라고 했다는 대목이 있다.[9] 소하가 한신을 천거한 고사를 그대로 빌린 말이다.
  •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1건이 있다. 세조 14년(1468) 3월 세조는 일본과 여진의 사신을 맞는 잔치에서 호조 판서 노사신(盧思愼)의 손을 잡고 밀성군(密城君) 이침(李琛)에게 “사신(思愼)의 사람됨을 아느냐? 국사무쌍이라 할 만하다(可謂國士無雙者也)”고 했다.[10]
  • 그 엔지니어는 레거시 시스템의 구조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유일한 사람이라, 팀에서는 국사무쌍으로 통한다.
  • 감독은 그를 두고 “다른 선수는 구할 수 있어도 이런 선수는 국사무쌍”이라며 이적을 끝까지 막았다.
  • 일본 마작(리치 마작)에서 ‘国士無双’은 만관 역(役満)의 하나로, 1과 9의 수패(數牌)와 자패(字牌) 13종을 한 장씩 모으고 그중 하나를 두 장으로 갖춘 패를 말한다. 《일본국어대사전》은 이를 중국어 이름 ‘십삼요구(十三么九, シーサンヤオチュー)’의 속칭(俗称)이라고 설명한다.[3][11] 《일본국어대사전》은 성어로서의 첫 용례로 1477년의 《사기초(史記抄)》를 든다.[3]
  • 이타미 만사쿠(伊丹万作) 감독의 1932년 일본 무성 영화 《국사무쌍(國士無双)》은 가짜 검술 명인이 진짜를 이기는 풍자 희극으로, 필름이 전하지 않는 ‘환상의 명작’으로 꼽힌다. 1986년에 리메이크되었다.[12]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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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하무쌍(天下無雙): 세상에 그에 비길 만한 것이 없음.
  •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 뛰어난 사람은 저절로 드러남.
  • 다다익선(多多益善): 많을수록 좋음. 같은 〈회음후열전〉에서 한신이 한 말.
  • 배수지진(背水之陣): 한신이 정형(井陘)에서 강을 등지고 친 진. 같은 〈회음후열전〉.
  • 토사구팽(兎死狗烹): 쓸모가 다하면 버려짐. 한신이 붙잡혀 한 말로 유명하다.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국사무쌍”,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5%AD%EC%82%AC%EB%AC%B4%EC%8C%8D, 확인날짜=2026-10-03.
  2.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國士無雙”,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9284, 확인날짜=2026-10-03.
  3. ↑ 3.0 3.1 3.2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国士無双”,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9B%BD%E5%A3%AB%E7%84%A1%E5%8F%8C, 확인날짜=2026-10-03.
  4. ↑ 4.0 4.1 4.2 사마천, 《사기》 권92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5. ↑ 반고(班固), 《한서(漢書)》 권34 〈한팽영노오전(韓彭英盧吳傳)〉 한신(韓信).
  6. ↑ 심채(沈采), 《천금기(千金記)》 제25척.
  7. ↑ 사마천, 《사기》 권86 〈자객열전(刺客列傳)〉.
  8. ↑ 이규보(李奎報), 〈한신전박(韓信傳駮)〉, 《동국이상국전집(東國李相國全集)》 권22,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ITKC_MO_0004A_0240_010_0070,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03.
  9. ↑ 서거정(徐居正), 〈의정부영의정상당부원군한공신도비명(議政府領議政上黨府院君韓公神道碑銘)〉, 《사가집(四佳集)》 문집보유 권1,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ITKC_MO_0061A_0360_010_0050,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03.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 45권, 세조 14년 3월 15일 을해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ga_11403015_001, 확인날짜=2026-10-03.
  11. ↑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 “十三么九”,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8D%81%E4%B8%89%E4%B9%88%E4%B9%9D, 확인날짜=2026-10-03.
  12. ↑ 《개정신판 세계대백과사전(改訂新版 世界大百科事典)》·《디지털 다이지센》, “国士無双”,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9B%BD%E5%A3%AB%E7%84%A1%E5%8F%8C,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