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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야행(錦衣夜行)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다닌다는 뜻으로, 자랑삼아 하지 않으면 생색이 나지 않음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아무 보람이 없는 일을 함을 이르기도 한다.[2]

출세하거나 큰일을 이루고도 남이 알아주지 않는 처지, 또는 애써 한 일이 드러나지 않아 보람이 없는 경우에 쓴다. 본래는 ‘부귀해지고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반대로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가는 것은 ‘금의환향(錦衣還鄕)’이라고 한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사업에 성취가 있으면서도 고향에 돌아가 친지의 칭송을 받지 못함”으로 풀이한다.[3] 일본어에서는 “錦を衣て夜行くが如し(비단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라는 형태로 쓴다.[4]

《사기》의 항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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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권7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오는 항우(項羽)의 말에서 나왔다.[5] 기원전 206년, 항우는 함양(咸陽)에 들어가 항복한 진왕 자영(子嬰)을 죽이고 진나라 궁궐을 불태웠는데, 불이 석 달 동안 꺼지지 않았다. 그러고는 재물과 여자를 거두어 동쪽으로 돌아가려 했다.

人或說項王曰:「關中阻山河四塞,地肥饒,可都以霸。」項王見秦宮皆以燒殘破,又心懷思欲東歸,曰:「富貴不歸故鄉,如衣繡夜行,誰知之者!」說者曰:「人言楚人沐猴而冠耳,果然。」項王聞之,烹說者。

“어떤 사람이 항왕에게 ‘관중(關中)은 산과 강이 사방을 막고 땅이 기름지니 도읍으로 삼아 패업을 이룰 만합니다’라고 권했다. 항왕은 진나라 궁궐이 모두 불타 부서진 것을 보았고, 또 마음속으로 동쪽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으므로 ‘부귀해지고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수놓은 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누가 알아주겠는가’라고 했다. 그 사람이 ‘사람들이 초나라 사람은 원숭이가 갓을 쓴 꼴이라더니 과연 그렇구나’라고 하자, 항왕이 이를 듣고 그를 삶아 죽였다.”[5]

항우는 결국 관중을 버리고 초 땅의 팽성(彭城)을 도읍으로 삼았다. 여기서 ‘원숭이가 갓을 썼다’는 ‘목후이관(沐猴而冠)’도 나왔다.

《사기》와 《한서》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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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원문은 ‘비단옷(錦衣)’이 아니라 ‘수놓은 옷(衣繡)’이고, 항우에게 관중을 권한 사람의 이름도 적지 않았다. 오늘날 전하는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권31 〈항적전(項籍傳)〉은 같은 일을 “한생(韓生)이 항우에게 권했다”고 쓰고, 항우의 말도 “부귀해지고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富貴不歸故鄉,如衣錦夜行)”로 적었다. 한생이 원숭이 이야기를 하자 항우는 그를 베어 죽였다(斬韓生)고 되어 있다.[6] ‘한생’이라는 이름은 《한서》에만 나온다. 네 글자 ‘錦衣夜行’은 뒤에 굳은 형태로, 《성어전》은 아이들의 학습서 《유학경림(幼學瓊林)》의 “부귀해지고도 돌아가지 않으면 금의야행과 같다(富貴不歸,如錦衣夜行)”를 용례로 든다.[3]

나무위키 등에는 간의대부(諫議大夫) 벼슬의 한생이 삶겨 죽었다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으나, 《사기》에는 이름 없이 ‘권한 사람(說者)’으로만 나오며 그를 삶아 죽였다(烹)고 했고, ‘한생’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한서》에서는 베어 죽였다(斬)고 했다. 두 책 모두 그의 벼슬을 적지 않았다.[5]

다른 사람들의 같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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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항우만 한 것이 아니다. 《한서》 권64 〈주매신전(朱買臣傳)〉에서는 한 무제가 가난하던 주매신을 고향인 회계(會稽)의 태수로 임명하며 “부귀해지고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수놓은 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 했는데, 지금 그대는 어떠한가(富貴不歸故鄉,如衣繡夜行,今子何如)”라고 했다.[7] 동진 상거(常璩)의 《화양국지(華陽國志)》 〈파지(巴志)〉에는 한 고조가 파(巴)의 종민(賨民)을 모아 공을 세운 범목(范目)을 그의 고향 낭중(閬中)의 자향후(慈鄉侯)로 옮겨 봉하며 같은 말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8]

반대로 《삼국지(三國志)》 〈위서·장기전(張既傳)〉에서는 조조가 장기(張既)를 고향이 있는 옹주(雍州)의 자사로 내보내며 “그대를 본주로 돌려보내니 수놓은 옷을 입고 낮에 다니는 격이라 하겠다(還君本州,可謂衣繡晝行矣)”고 했다.[9] 금의야행을 뒤집어 금의환향의 영광을 칭찬한 말이다.

한국 문헌의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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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조 3년(1457) 2월 5일, 세조는 모화관에서 무과 시험을 본 뒤 돌아오는 길에 잠저(潛邸, 즉위 전에 살던 집)에 들러 종친과 재상들에게 술을 내리며 “여기가 나의 풍패(豐沛)이다. 옛날 한 고조가 ‘부귀해지고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수놓은 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 하고 패(沛)의 부로들을 불러 술을 내리고 〈대풍가(大風歌)〉를 불렀다”고 했다.[10] 《사기》에서 이 말을 한 사람은 항우지만, 《화양국지》에는 한 고조도 같은 말을 한 것으로 나온다.
  • 세조 7년(1461)에는 조선에 머물며 벼슬을 받은 일본 하카타의 도안길(藤安吉)에게 “높은 벼슬을 받고 하사한 옷을 입고서 너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으면 수놓은 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不還汝國,如衣繡夜行)”고 했다.[11]
  • 중종 25년(1530) 5월 11일 기사에서는 사치를 경계하며 “항우는 관중에 도읍하라는 한생의 말을 살피지 않고 금의야행의 말을 하다가 끝내 망했다(項羽聞韓生都關中之言而不省,發錦衣夜行之言,卒至於亡)”는 말이 나왔다.[12]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錦 금 비단 비단
衣 의 옷 옷(입다)
夜 야 밤 밤
行 행 가다, 다니다 다니다
  • 밤새 장애를 막아 냈지만 아무도 모르게 지나갔으니, 운영팀으로서는 금의야행이 따로 없다.
  • 좋은 기능을 만들어 놓고 알리지 않으면 금의야행이 되고 만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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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수야행(衣繡夜行): 수놓은 옷을 입고 밤길을 감. 《사기》의 원래 형태.
  • 의수주행(衣繡晝行): 수놓은 옷을 입고 낮에 다님.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감.
  • 목후이관(沐猴而冠): 원숭이가 갓을 씀. 겉모습만 그럴듯하고 속은 사람답지 못함.
  • 반대 의미: 금의환향(錦衣還鄕):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옴.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감.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금의야행”,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8%88%EC%9D%98%EC%95%BC%ED%96%89, 확인날짜=2026-09-26.
  2.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금의야행”,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focus_name=query&query=%EA%B8%88%EC%9D%98%EC%95%BC%ED%96%89, 확인날짜=2026-09-26.
  3. ↑ 3.0 3.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錦衣夜行”,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7990, 확인날짜=2026-09-26.
  4. ↑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 “錦を衣て夜行くが如し”,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8C%A6%E3%82%92%E8%A1%A3%E3%81%A6%E5%A4%9C%E8%A1%8C%E3%81%8F%E3%81%8C%E5%A6%82%E3%81%97, 확인날짜=2026-09-26.
  5. ↑ 5.0 5.1 5.2 사마천, 《사기》 권7 〈항우본기(項羽本紀)〉.
  6. ↑ 반고(班固), 《한서》 권31 〈항적전(項籍傳)〉.
  7. ↑ 반고, 《한서》 권64 상 〈주매신전(朱買臣傳)〉.
  8. ↑ 상거(常璩), 《화양국지(華陽國志)》 권1 〈파지(巴志)〉.
  9. ↑ 진수(陳壽), 《삼국지》 권15 〈위서·장기전(張既傳)〉.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 6권, 세조 3년 2월 5일 기해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ga_10302005_002, 확인날짜=2026-09-26.
  1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 24권, 세조 7년 6월 2일 신미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ga_10706002_001, 확인날짜=2026-09-26.
  1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68권, 중종 25년 5월 11일 경자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2505011_001,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