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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환향(錦衣還鄕)은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오늘날에는 과거 급제나 벼슬보다는 해외에서 활약하던 운동선수가 우승하고 돌아오거나, 객지에서 성공한 사람이 고향을 찾는 경우에 흔히 쓴다.

한국어에서는 ‘錦衣還鄕’이라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의금환향(衣錦還鄉)’이 표준 형태이다. ‘衣錦’은 ‘비단을 입다’라는 동사 구조로, 여기서 ‘衣’는 ‘입다’라는 뜻의 동사이다.[2] 한국의 옛 문헌도 대부분 ‘衣錦還鄕’으로 적었다. 일본어에서는 사자성어보다 ‘고향에 비단을 두르다(故郷へ錦を飾る)’라는 관용 표현을 주로 쓴다.[3]

항우의 “비단옷 입고 밤길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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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옷’과 ‘고향’을 묶은 비유는 《사기》 〈항우본기〉에서 비롯한다. 항우가 진나라 도읍 함양(咸陽)을 불태우고 동쪽으로 돌아가려 하자, 어떤 사람이 관중(關中)에 도읍하라고 권했다. 항우는 이렇게 답했다.[4]

富貴不歸故鄉,如衣繡夜行,誰知之者!

“부귀해지고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수놓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으니, 누가 알아주겠는가.” 이 말을 들은 사람이 “초나라 사람은 원숭이에게 관을 씌운 꼴이라더니 과연 그렇다(人言楚人沐猴而冠耳,果然)”고 비웃었다.[4] 《한서》 〈진승·항적전〉에는 같은 말이 ‘衣錦夜行’으로 실려 있다.[2] 여기서 ‘금의야행(錦衣夜行)’이라는 말이 나왔다.

《양서》의 “衣錦還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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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어전》은 네 글자 형태의 출전으로 남조 양(梁)나라의 역사를 적은 《양서(梁書)》 권9 〈유경원전(柳慶遠傳)〉을 든다.[2] 유경원은 남제(南齊) 때 위흥태수(魏興太守)와 양양령(襄陽令) 등을 지냈고, 소연(蕭衍)이 군사를 일으키자 그를 도와 신임을 얻었다. 소연이 양나라를 세워 무제(武帝)가 된 뒤, 천감(天監) 4년(505) 유경원은 옹주자사(雍州刺史)가 되어 떠나게 되었다.

四年,出爲使持節、都督雍梁南北秦四州諸軍事、征虜將軍、寧蠻校尉、雍州刺史。高祖餞於新亭,謂曰:「卿衣錦還鄉,朕無西顧之憂矣。」

[5]

무제는 신정(新亭)에서 송별연을 열고 “경이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가니, 짐은 서쪽을 돌아볼 걱정이 없겠다”고 했다. 유경원이 고향 쪽 지방의 장관으로 부임하게 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다.[3]

나무위키 등에는 이때 유경원이 “영주(永州) 태수”로 승진했다고 소개된 경우가 있으나, 《양서》 원문에 따르면 그가 받은 벼슬은 옹주자사(雍州刺史)이고, 남제 때 지낸 벼슬도 양양태수가 아니라 양양령이다.[6]

《성어전》은 이 밖에 《주서(周書)》 〈사녕전(史寧傳)〉의 “내가 경을 비단옷 입고 고향에 돌아가게 해 주겠다(我當使卿衣錦還鄉)”, 원나라 왕실보(王實甫)의 《서상기(西廂記)》, 명나라 고명(高明)의 《비파기(琵琶記)》 등을 용례로 든다. 비슷한 형태로 ‘의금고향(衣錦故鄉)’(《신당서》), ‘의금과향(衣錦過鄉)’(《신당서》), ‘의금영귀(衣錦榮歸)’도 있다.[2]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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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치원: 신라의 최치원(崔致遠)은 당나라에서 귀국을 앞두고 지은 시 〈수양섬수재송별(酬楊贍秀才送別)〉에서 “바닷길 배는 이미 해를 넘겨 돌아가기로 정했건만, 비단옷 입고 고향에 돌아가기엔 재주 없음이 부끄럽다(海槎雖定隔年廻,衣錦還鄕愧不才)”고 읊었다.[7]
  • 이색: 고려 말의 이색(李穡)은 〈망삼각산(望三角山)〉에서 “비단옷 입고 고향에 돌아감을 세상은 영화로 여기니, 어버이를 영화롭게 하는 성대한 일은 과거 급제에 있다(衣錦還鄕世所榮,榮親盛事在科名)”고 읊었다.[8] 과거에 급제해 고향에 돌아가는 일이 금의환향의 대표적인 장면이었다.
  • 명나라 사신의 말: 중종 33년(1538) 성절사로 연경에 다녀온 허관(許寬)의 보고에 따르면, 명나라 사신 공(龔)·오(吳) 두 사람이 조선 문신 정사룡(鄭士龍)의 안부를 물었다. 통역관이 정사룡이 지금 남쪽 경상도에 명나라 순안사(巡按使) 같은 직임으로 나가 있다고 잘못 답하자, 두 사신은 “참으로 이른바 금의환향이로군(眞所謂衣錦還鄕矣)”이라고 했다.[9]

‘錦衣還鄕’이라는 순서는 원나라 왕실보의 잡극 〈여춘당(麗春堂)〉 등 중국 문헌에도 드물게 보이지만, 중국에서는 ‘衣錦還鄉’이 훨씬 널리 쓰였다. 한국에서도 옛 문헌은 대부분 ‘衣錦還鄕’으로 적었고, ‘錦衣還鄕’은 조선 후기 문집의 행장 등에 보인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錦衣還鄕’이 나오지 않는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錦 금 비단 비단
衣 의 옷, 입다 옷 (중국식 ‘衣錦’에서는 ‘입다’)
還 환 돌아오다 돌아가다
鄕 향 시골, 고향 고향
  • 해외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금의환향하자 공항에 팬들이 몰려들었다.
  •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에 성공한 그는 금의환향해 고향에 연구소를 세웠다.
  • 일본에서는 원래 “비단을 입고 돌아간다(錦を着て帰る)”고 했고, “비단을 두른다(錦を飾る)”는 형태는 에도 시대 중기 이후에 굳은 것으로 보인다.[3]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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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금환향(衣錦還鄕): 중국에서 쓰는 형태.
  • 금귀(錦歸), 금의주행(錦衣晝行), 금환(錦還), 의금귀향(衣錦歸鄕), 의금지영(衣錦之榮): 표준국어대사전이 같은 뜻으로 드는 말이다.[1]
  • 반대 의미: 금의야행(錦衣夜行):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다님. 자랑삼아 하지 않으면 생색이 나지 않음.[10] 《성어전》은 ‘衣錦夜行’을 ‘衣錦還鄉’의 반대말로 든다.[2]
  1.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금의환향”,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8%88%EC%9D%98%ED%99%98%ED%96%A5, 확인날짜=2026-09-26.
  2. ↑ 2.0 2.1 2.2 2.3 2.4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衣錦還鄉”,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005, 확인날짜=2026-09-26.
  3. ↑ 3.0 3.1 3.2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속담을 아는 사전(ことわざを知る辞典)》, “故郷へ錦を飾る”,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95%85%E9%83%B7%E3%81%B8%E9%8C%A6%E3%82%92%E9%A3%BE%E3%82%8B, 확인날짜=2026-09-26.
  4. ↑ 4.0 4.1 사마천, 《사기》 권7 〈항우본기(項羽本紀)〉.
  5. ↑ 《양서(梁書)》 권9 〈유경원전(柳慶遠傳)〉.
  6. ↑ 《양서(梁書)》 권9 〈유경원전(柳慶遠傳)〉.
  7.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최치원,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 권20 〈수양섬수재송별(酬楊贍秀才送別)〉,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01A_0210_040_0040, 확인날짜=2026-09-26.
  8.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색, 《목은시고(牧隱詩藁)》 권3 〈망삼각산(望三角山)〉,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20A_0100_010_0200, 확인날짜=2026-09-26.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89권, 중종 33년 11월 25일 을미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3311025_001, 확인날짜=2026-09-26.
  10.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금의야행”,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8%88%EC%9D%98%EC%95%BC%ED%96%89,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