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환향
더 많은 작업
금의환향(錦衣還鄕)은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비단옷’과 ‘고향’을 묶은 비유는 《사기》 〈항우본기〉에서 비롯한다. 항우가 진나라 도읍 함양(咸陽)을 불태우고 동쪽으로 돌아가려 하자, 어떤 사람이 관중(關中)에 도읍하라고 권했다. 항우는 이렇게 답했다.[4]
富貴不歸故鄉,如衣繡夜行,誰知之者!
“부귀해지고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수놓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으니, 누가 알아주겠는가.” 이 말을 들은 사람이 “초나라 사람은 원숭이에게 관을 씌운 꼴이라더니 과연 그렇다(人言楚人沐猴而冠耳,果然)”고 비웃었다.[4] 《한서》 〈진승·항적전〉에는 같은 말이 ‘衣錦夜行’으로 실려 있다.[2] 여기서 ‘금의야행(錦衣夜行)’이라는 말이 나왔다.
《성어전》은 네 글자 형태의 출전으로 남조 양(梁)나라의 역사를 적은 《양서(梁書)》 권9 〈유경원전(柳慶遠傳)〉을 든다.[2] 유경원은 남제(南齊) 때 위흥태수(魏興太守)와 양양령(襄陽令) 등을 지냈고, 소연(蕭衍)이 군사를 일으키자 그를 도와 신임을 얻었다. 소연이 양나라를 세워 무제(武帝)가 된 뒤, 천감(天監) 4년(505) 유경원은 옹주자사(雍州刺史)가 되어 떠나게 되었다.
四年,出爲使持節、都督雍梁南北秦四州諸軍事、征虜將軍、寧蠻校尉、雍州刺史。高祖餞於新亭,謂曰:「卿衣錦還鄉,朕無西顧之憂矣。」
무제는 신정(新亭)에서 송별연을 열고 “경이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가니, 짐은 서쪽을 돌아볼 걱정이 없겠다”고 했다. 유경원이 고향 쪽 지방의 장관으로 부임하게 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다.[3]
나무위키 등에는 이때 유경원이 “영주(永州) 태수”로 승진했다고 소개된 경우가 있으나, 《양서》 원문에 따르면 그가 받은 벼슬은 옹주자사(雍州刺史)이고, 남제 때 지낸 벼슬도 양양태수가 아니라 양양령이다.[6]
《성어전》은 이 밖에 《주서(周書)》 〈사녕전(史寧傳)〉의 “내가 경을 비단옷 입고 고향에 돌아가게 해 주겠다(我當使卿衣錦還鄉)”, 원나라 왕실보(王實甫)의 《서상기(西廂記)》, 명나라 고명(高明)의 《비파기(琵琶記)》 등을 용례로 든다. 비슷한 형태로 ‘의금고향(衣錦故鄉)’(《신당서》), ‘의금과향(衣錦過鄉)’(《신당서》), ‘의금영귀(衣錦榮歸)’도 있다.[2]
- 최치원: 신라의 최치원(崔致遠)은 당나라에서 귀국을 앞두고 지은 시 〈수양섬수재송별(酬楊贍秀才送別)〉에서 “바닷길 배는 이미 해를 넘겨 돌아가기로 정했건만, 비단옷 입고 고향에 돌아가기엔 재주 없음이 부끄럽다(海槎雖定隔年廻,衣錦還鄕愧不才)”고 읊었다.[7]
- 이색: 고려 말의 이색(李穡)은 〈망삼각산(望三角山)〉에서 “비단옷 입고 고향에 돌아감을 세상은 영화로 여기니, 어버이를 영화롭게 하는 성대한 일은 과거 급제에 있다(衣錦還鄕世所榮,榮親盛事在科名)”고 읊었다.[8] 과거에 급제해 고향에 돌아가는 일이 금의환향의 대표적인 장면이었다.
- 명나라 사신의 말: 중종 33년(1538) 성절사로 연경에 다녀온 허관(許寬)의 보고에 따르면, 명나라 사신 공(龔)·오(吳) 두 사람이 조선 문신 정사룡(鄭士龍)의 안부를 물었다. 통역관이 정사룡이 지금 남쪽 경상도에 명나라 순안사(巡按使) 같은 직임으로 나가 있다고 잘못 답하자, 두 사신은 “참으로 이른바 금의환향이로군(眞所謂衣錦還鄕矣)”이라고 했다.[9]
‘錦衣還鄕’이라는 순서는 원나라 왕실보의 잡극 〈여춘당(麗春堂)〉 등 중국 문헌에도 드물게 보이지만, 중국에서는 ‘衣錦還鄉’이 훨씬 널리 쓰였다. 한국에서도 옛 문헌은 대부분 ‘衣錦還鄕’으로 적었고, ‘錦衣還鄕’은 조선 후기 문집의 행장 등에 보인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錦衣還鄕’이 나오지 않는다.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錦 | 금 | 비단 | 비단 |
| 衣 | 의 | 옷, 입다 | 옷 (중국식 ‘衣錦’에서는 ‘입다’) |
| 還 | 환 | 돌아오다 | 돌아가다 |
| 鄕 | 향 | 시골, 고향 | 고향 |
- 해외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금의환향하자 공항에 팬들이 몰려들었다.
-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에 성공한 그는 금의환향해 고향에 연구소를 세웠다.
- 일본에서는 원래 “비단을 입고 돌아간다(錦を着て帰る)”고 했고, “비단을 두른다(錦を飾る)”는 형태는 에도 시대 중기 이후에 굳은 것으로 보인다.[3]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금의환향”,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8%88%EC%9D%98%ED%99%98%ED%96%A5, 확인날짜=2026-09-26.
- ↑ 2.0 2.1 2.2 2.3 2.4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衣錦還鄉”,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005, 확인날짜=2026-09-26.
- ↑ 3.0 3.1 3.2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속담을 아는 사전(ことわざを知る辞典)》, “故郷へ錦を飾る”,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95%85%E9%83%B7%E3%81%B8%E9%8C%A6%E3%82%92%E9%A3%BE%E3%82%8B, 확인날짜=2026-09-26.
- ↑ 4.0 4.1 사마천, 《사기》 권7 〈항우본기(項羽本紀)〉.
- ↑ 《양서(梁書)》 권9 〈유경원전(柳慶遠傳)〉.
- ↑ 《양서(梁書)》 권9 〈유경원전(柳慶遠傳)〉.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최치원,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 권20 〈수양섬수재송별(酬楊贍秀才送別)〉,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01A_0210_040_0040, 확인날짜=2026-09-26.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색, 《목은시고(牧隱詩藁)》 권3 〈망삼각산(望三角山)〉,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20A_0100_010_0200, 확인날짜=2026-09-26.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89권, 중종 33년 11월 25일 을미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3311025_001, 확인날짜=2026-09-26.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금의야행”,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8%88%EC%9D%98%EC%95%BC%ED%96%89,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