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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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용문(登龍門)은 용문(龍門)에 오른다는 뜻으로,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크게 출세하게 되는 것, 또는 그 관문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잉어가 황허강 중류의 급류인 용문을 거슬러 오르면 용이 된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1]
용문은 황허강이 산시성(山西省) 허진(河津)과 산시성(陝西省) 한청(韓城) 사이의 좁은 협곡을 빠져나오는 곳의 급류이다.[3] 우(禹)임금이 산을 뚫어 물길을 냈다는 전설이 전한다. 북송 초에 엮은 《태평광기(太平廣記)》 권466은 《삼진기(三秦記)》를 인용해 이렇게 적는다.
龍門山在河東界,禹鑿山斷門,闊一里餘,黃河自中流下。兩岸不通車馬。每暮春之際,有黃鯉魚逆流而上,得者便化為龍。……一歲中,登龍門者,不過七十二。初登龍門,即有雲雨隨之,天火自後燒其尾,乃化為龍矣。
“용문산은 하동(河東) 경계에 있는데, 우임금이 산을 뚫어 끊어 놓은 문의 너비가 한 리 남짓이고 황허가 그 가운데로 흘러내려 양쪽 기슭으로는 수레와 말이 다니지 못한다. 해마다 늦봄이면 누런 잉어들이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데, 오른 놈은 곧 용이 된다. …… 한 해에 용문에 오르는 것은 72마리를 넘지 않는다. 처음 용문에 오르면 구름과 비가 따르고, 하늘의 불이 뒤에서 꼬리를 태워 용이 된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도 이 전설을 등용문의 전거로 든다.[2]
나무위키 등에는 이 용문을 뤄양(洛陽) 남쪽의 이궐(伊闕), 곧 룽먼 석굴이 있는 곳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으나, 룽먼 석굴의 용문은 황허의 지류인 이수(伊水)가 흐르는 곳으로 이름만 같은 다른 곳이다. 잉어 전설의 용문은 위의 기록대로 황허 본류가 흐르는 하동(오늘날의 산시성 허진 일대)에 있다. 이현도 용문이 강주 용문현에 있다고 주석했다.[4][5][3]
‘등용문’이라는 말은 《후한서(後漢書)》 권67 〈당고열전(黨錮列傳)〉의 이응(李膺) 전기에 나온다. 후한 말 환관이 권력을 휘두르던 때, 사예교위 이응은 환관 장양(張讓)의 동생으로 임신부까지 죽인 야왕 현령 장삭(張朔)을 장양의 집 기둥 속에서 끌어내 처형할 만큼 법을 엄하게 집행했다. 환관들은 휴가 때도 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이 교위가 두렵다”며 울 정도였다.
是時朝庭日亂,綱紀頹阤,膺獨持風裁,以聲名自高。士有被其容接者,名為登龍門。
“이때 조정은 나날이 어지러워지고 기강이 무너졌는데, 이응만이 홀로 풍도와 절조를 지켜 높은 명성을 누렸다. 선비 가운데 그의 접견을 받은 사람은 ‘용문에 올랐다’고 일컬어졌다.” 당나라 장회태자 이현(李賢)은 이 대목에 “물고기로 비유한 것이다. 용문은 황허가 쏟아져 내려오는 어귀로 지금의 강주(絳州) 용문현에 있다”고 주를 달고, 신씨(辛氏)의 《삼진기》를 인용해 “하진(河津)은 일명 용문이다. 물이 험해 통하지 않아 물고기 따위가 오르지 못하니, 강과 바다의 큰 물고기 수천 마리가 용문 아래 모여들어도 오르지 못하며, 오르면 용이 된다”고 풀이했다.[5] 곧 이응에게 인정받는 것을 잉어가 용문을 올라 용이 되는 데에 빗댄 것이다. 이응은 뒤에 환관들이 사대부를 탄압한 당고(黨錮)의 화 때 목숨을 잃었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두 번 나온다. 《선조수정실록》 선조 15년(1582) 기사는 요절한 젊은 관원 이영(李嶸)이 명절(名節)로 이름이 높아 “그와 사귐을 얻은 사람은 용문에 오른 것 같다고 여겼다(被接者如登龍門)”고 적었다. 이응전의 쓰임 그대로이다.[8] 《영조실록》 영조 10년(1734) 기사의 사관 논평에는 창루(娼樓)에 드나들던 조진희(趙鎭禧)가 과거에 급제하자 “청루의 남은 꿈이 용문에 올랐다(靑樓餘夢登龍門)”는 노래가 돌았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9]
조선 초 강희맹(姜希孟)은 이 대사헌에게 올린 편지에서 상대가 한번 돌아봐 준 것을 두고 “용문에 올랐다고 할 만하다(謂登龍門)”고 썼다.[10]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登 | 등 | 오르다 | 거슬러 오르다 |
| 龍 | 룡(용) | 용 | 용 |
| 門 | 문 | 문 | 용문, 황허의 급류 |
‘등용(登龍)’을 인재를 뽑아 쓴다는 ‘등용(登用·登庸)’과 혼동하기 쉽지만 한자가 다르다.
- 이 해킹 대회는 젊은 보안 연구자들의 등용문으로 통한다.
- 신춘문예는 오랫동안 신인 작가의 등용문이었다.
- 오픈 소스 프로젝트에 기여한 이력이 개발자 채용의 새로운 등용문이 되고 있다.
- 어변성룡(魚變成龍):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됨. 보잘것없던 사람이 크게 됨.
- 입신양명(立身揚名): 출세하여 이름을 떨침.
- 속담 ‘개천에서 용 난다’: 변변하지 못한 집안에서 훌륭한 인물이 남.
- 반대 의미: 점액(點額): 용문을 오르지 못하고 이마에 상처를 입고 돌아온 물고기라는 뜻으로, 과거에 떨어짐을 이르는 말. 백거이(白居易)는 〈점액어(點額魚)〉에서 “용문에서 이마에 상처 입은 마음이 어떠한가, 붉은 꼬리 푸른 지느러미로 도로 처음으로 돌아왔네. 듣자니 하늘에서 비를 내리는 일이 괴롭다 하니, 용이 된다고 꼭 물고기보다 나으랴(龍門點額意何如,紅尾青鬐卻返初。見說在天行雨苦,為龍未必勝為魚)”라고 읊었다.[11]
- 일본의 단오 풍습인 고이노보리(鯉幟, 잉어 깃발)는 잉어가 용문을 올라 용이 된다는 중국 전설에서 잉어를 입신출세의 상징으로 삼은 것이다.[12]
- 당나라에서는 황실의 성 ‘李(리)’와 ‘鯉(잉어)’의 소리가 같아 잉어를 함부로 먹지 못하게 했다.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酉陽雜俎)》에 따르면 당시 법에 잉어를 잡으면 곧 놓아주고 먹지 못하게 했으며, 잉어를 ‘적혼공(赤鯶公)’이라 부르고 파는 자는 곤장 60대에 처했는데, “잉어(鯉)가 곧 이(李)이기 때문”이라고 했다.[13]
-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의 정문 이름이 ‘등용문’이다.[14]
- 《경재집(敬齋集)》에는 조선 초 전라도 관찰사 하연(河演)이 남원에서 묵던 밤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내 손자 다섯이 그대의 반찬거리로 잡혔으니 죽이지 말아 달라”며 “아홉 번 용문산에 올랐으나(九登龍門山) 아직 용이 되지 못했다”는 내용의 시를 주었고, 깨어 보니 과연 잉어 다섯 마리가 잡혀 있어 놓아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15]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등용문”,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93%B1%EC%9A%A9%EB%AC%B8, 확인날짜=2026-09-27.
- ↑ 2.0 2.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登龍門”,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0847, 확인날짜=2026-09-27.
- ↑ 3.0 3.1 3.2 3.3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일본대백과전서(日本大百科全書)》, “登竜門”,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99%BB%E7%AB%9C%E9%96%80, 확인날짜=2026-09-27.
- ↑ 4.0 4.1 《태평광기(太平廣記)》 권466 〈용문(龍門)〉(《삼진기(三秦記)》 인용).
- ↑ 5.0 5.1 5.2 범엽(范曄), 《후한서(後漢書)》 권67 〈당고열전(黨錮列傳)〉 이응(李膺).
- ↑ 원진(元稹), 〈부득어등용문(賦得魚登龍門)〉, 《원씨장경집(元氏長慶集)》 권4.
- ↑ 이백(李白), 〈여한형주서(與韓荊州書)〉, 《전당문(全唐文)》 권34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실록》 16권, 선조 15년 6월 1일 정해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b_11506001_002,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38권, 영조 10년 4월 9일 갑인 6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ua_11004009_006, 확인날짜=2026-09-27.
- ↑ 강희맹(姜希孟), 〈상이대사헌서(上李大司憲書)〉, 《사숙재집(私淑齋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
- ↑ 백거이(白居易), 〈점액어(點額魚)〉, 《전당시(全唐詩)》 권440.
- ↑ 《개정신판 세계대백과사전(改訂新版 世界大百科事典)》·《일본대백과전서》, “鯉幟”,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AF%89%E5%B9%9F, 확인날짜=2026-09-27.
- ↑ 단성식(段成式), 《유양잡조(酉陽雜俎)》 권17 〈광동식(廣動植) 2〉 인개편(鱗介篇).
- ↑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캠퍼스맵”, https://www.khu.ac.kr/kor/user/contents/view.do?menuNo=200083, 확인날짜=2026-09-27.
- ↑ 〈남원산동비각서(南原山洞碑閣序)〉, 하연(河演), 《경재집(敬齋集)》 수록,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