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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矛盾)은 어떤 사실의 앞뒤, 또는 두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중국 초나라의 상인이 어떤 방패로도 막지 못하는 창과 어떤 창으로도 뚫지 못하는 방패를 함께 팔다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1] 철학·논리학에서는 두 판단이 중간을 허용하지 않고 서로 배척하여 함께 성립할 수 없는 관계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쓴다.[2]

글자 그대로는 ‘창(矛)과 방패(盾)’일 뿐이지만, 《한비자》의 이야기 때문에 ‘앞뒤가 맞지 않음’이라는 뜻으로 굳었다. 두 글자짜리 말이어서 성어라기보다 일반 명사처럼 쓰이며, “모순되다”, “모순이 있다”, “모순을 드러내다”, “모순적이다”처럼 활용 폭이 넓다.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어긋날 때, 한 제도 안의 두 규정이 서로 부딪칠 때, 한 이론 안의 두 주장이 함께 참일 수 없을 때 두루 쓴다.

같은 한자어가 중국어(máodùn)와 일본어(むじゅん)에서도 쓰인다. 중국어에서는 이야기에서 바로 나온 성어로 ‘자상모순(自相矛盾)’을 표제어로 올리며,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호응하지 못하고 서로 어긋나는 것을 뜻한다고 풀이한다.[3] 일본어에서는 ‘무기’, ‘창을 들고 서로 맞섬’이라는 옛 뜻과 ‘앞뒤가 맞지 않음’이라는 뜻, 논리학 용어로서의 뜻이 함께 사전에 실려 있다.[4]

《한비자》 〈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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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韓非子)》 〈난일(難一)〉에 나온다. 〈난일〉은 옛 이야기와 그에 대한 통념을 먼저 소개하고, “어떤 이는 말한다(或曰)”로 시작하는 반론을 붙이는 형식의 편이다. 모순 이야기는 순(舜)임금의 덕화 고사를 반박하는 대목에 들어 있다.

먼저 소개되는 이야기는 이렇다. 역산(歷山)의 농부들이 밭두둑을 두고 다투자 순이 가서 농사를 지었더니 한 해 만에 경계가 바로잡혔고, 황하 가의 어부들이 고기잡이 터를 다투자 순이 가서 고기를 잡았더니 한 해 만에 나이 많은 이에게 양보하게 되었으며, 동이(東夷)의 도공들이 그릇을 조악하게 만들자 순이 가서 그릇을 구웠더니 한 해 만에 그릇이 튼튼해졌다. 공자는 이를 두고 “성인의 덕이 사람을 감화시키는구나”라고 감탄했다고 한다.[5]

한비자는 유학자에게 “그때 요(堯)임금은 어디 있었는가?”라고 묻는 형식으로 이 이야기를 반박한다. 요가 천자였다면, 성인이 윗자리에서 밝게 살피고 있었는데 어째서 백성이 다투고 그릇이 조악했는가. 순이 잘못을 바로잡았다면 그것은 곧 요에게 잘못이 있었다는 뜻이다. 순을 어질다고 하면 요의 밝은 다스림을 부정하게 되고, 요를 성인이라 하면 순의 덕화를 부정하게 되니 둘을 함께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서 창과 방패 이야기를 든다.

楚人有鬻楯與矛者,譽之曰:「吾楯之堅,物莫能陷也。」又譽其矛曰:「吾矛之利,於物無不陷也。」或曰:「以子之矛陷子之楯,何如?」其人弗能應也。夫不可陷之楯與無不陷之矛,不可同世而立。今堯、舜之不可兩譽,矛楯之說也。

“초나라 사람 가운데 방패와 창을 파는 이가 있었다. 방패를 자랑하며 ‘내 방패는 단단해서 어떤 물건도 뚫지 못한다’고 하고, 또 창을 자랑하며 ‘내 창은 날카로워서 어떤 물건이든 뚫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의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오?’라고 묻자 그 사람은 대답하지 못했다. 뚫을 수 없는 방패와 뚫지 못하는 것이 없는 창은 같은 세상에 함께 설 수 없다. 이제 요와 순을 함께 칭송할 수 없는 것도 창과 방패의 이야기와 같다.”[5]

한비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순이 한 해에 잘못 하나씩 바로잡는 식으로는 사람의 수명이 다해도 천하의 잘못이 끝나지 않지만, 상벌을 법으로 정해 명령하면 열흘이면 온 나라가 따른다고 주장한다. 곧 이 이야기는 성인의 덕에 기대는 유가의 정치론을 비판하고 법에 의한 통치를 내세우기 위한 비유였다.[5]

《한비자》 〈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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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야기는 《한비자》 〈난세(難勢)〉에도 한 번 더 나온다. 신도(愼到)의 세(勢) 이론을 두고 벌이는 논쟁에서, 한비자 쪽 논자는 객(客)의 말을 빌려 창과 방패 이야기를 소개한 뒤 이렇게 말한다.[6]

以爲不可陷之楯,與無不陷之矛,爲名不可兩立也。夫賢之爲道不可禁,而勢之爲道也無不禁,以不可禁之賢與無不禁之勢,此矛楯之說也。

“뚫을 수 없는 방패와 뚫지 못하는 것이 없는 창은 이름부터가 함께 설 수 없다. 현명함이라는 도리는 금할 수 없는 것이고 권세라는 도리는 금하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금할 수 없는 현명함과 금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 권세를 함께 말하는 것이 바로 창과 방패의 이야기이다.”[6] 두 편 모두 원문에는 ‘방패’가 ‘楯’으로 적혀 있고, ‘矛楯之說(창과 방패의 이야기)’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모순’이라는 말의 굳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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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어전》은 이 이야기가 뒤에 ‘자상모순(自相矛盾)’으로 줄어 쓰였다고 설명하며, 《양서(梁書)》 권43 〈위찬전(韋粲傳)〉, 《위서(魏書)》 권84 〈유림전·이업흥(李業興)〉, 《구당서(舊唐書)》 〈여복지(輿服志)〉, 《주자어류(朱子語類)》 등을 용례로 든다.[3] 일본에서는 900년경의 《간케분소(菅家文草)》에 “論者東西,互相矛楯(논자들이 동서로 나뉘어 서로 창을 겨눈다)”처럼 ‘서로 맞서 다툼’이라는 뜻으로 쓴 예가 있고, ‘앞뒤가 맞지 않음’의 뜻으로는 1875년 지방관회의 일지의 용례가 첫 예로 실려 있다.[4]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태종 7년(1407) 사간원의 상소에 좌정승 하륜(河崙)과 우정승 조영무(趙英茂)가 의논할 때마다 의견이 엇갈린다며 두 사람을 번갈아 정승에 앉히면 “의논하는 일에 모순이 없을 것(無議事之矛盾)”이라고 한 대목이 이른 예이다.[7]

논리학 용어로서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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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모순’은 서양 논리학의 contradiction(라틴어 contradictio)을 옮긴 번역어로도 쓰인다. 《일본국어대사전》은 이 뜻의 근거로 1881년의 철학 용어집 《철학자휘(哲學字彙)》를 든다.[4] 《철학자휘》는 이노우에 데쓰지로(井上哲次郎) 등이 엮은 책으로, 메이지 초기의 철학 번역어를 모은 것이다.[8] 한국어·중국어·일본어 모두 같은 글자로 이 개념을 가리킨다.

  • 형식 논리의 모순: 한 명제와 그 부정이 함께 성립한다고 주장하는 것. “고양이는 동물이지만 동물이 아니다”가 예이다.[2] 대만 교육부 사전은 논리학의 모순을 “함께 참일 수도 없고 함께 거짓일 수도 없는 개념이나 명제”로 정의한다.[9]
  • 모순율(矛盾律): ‘어떤 것이 참이면서 동시에 참이 아닐 수는 없다’는 원리. 무모순율이라고도 하며, 논리적 사고의 기본 원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논리를 전개할 때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10]
  • 모순 개념·모순 관계: 한쪽이 다른 쪽의 직접적인 부정이어서 중간을 허용하지 않는 두 개념의 관계. ‘반대 개념’(상대적인 정도 차이를 나타내는 개념)과 구별한다.[11]
  • 변증법적 모순: 헤겔과 마르크스주의 철학에서 대립물이 공존하면서 맺는 관계를 가리키며, 운동과 변화·발전의 근원으로 본다. 논리적 모순이 사유 안에만 있는 것과 달리 사물과 체계의 객관적 실재에 속한다고 설명한다.[2]

논리학의 엄밀한 정의에 비추어 보면, 고사 속 상인의 두 말은 “함께 참일 수는 없지만 함께 거짓일 수는 있다.” 이 창이 모든 방패를 뚫지 못하고 이 방패도 모든 창을 막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사 속 두 말은 ‘함께 참일 수도 함께 거짓일 수도 없는’ 논리학의 엄밀한 모순 관계와는 조금 다르다. 그래도 두 말을 함께 참으로 내세울 수 없다는 점은 같으므로, 일상어의 ‘모순’은 이 둘을 가리지 않고 쓴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矛 모 창 무엇이든 뚫는다는 창
盾 순 방패 (원문은 楯) 무엇이든 막는다는 방패
  • 요구 사항 문서에는 “모든 기록은 영구 보존한다”와 “개인정보는 1년 뒤 파기한다”가 함께 적혀 있어 모순이다. 개발에 들어가기 전에 어느 규정이 우선인지 정해야 한다.
  • 방화벽 정책에서 같은 트래픽을 허용하는 규칙과 차단하는 규칙이 함께 있으면, 어느 규칙이 먼저 적용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정책 점검 도구는 이런 모순된 규칙을 찾아 준다.
  • 절약하자고 말하면서 자기는 사치를 부리니 그의 말과 행동은 모순이다.
  • 한국에서는 ‘모순’이 부조리, 사회 구조의 문제를 가리키는 말로도 자주 쓰인다(“사회의 모순”, “구조적 모순”). 이는 모순을 대립물의 관계로 보는 변증법적 용법과 이어져 있다.[2] 마오쩌둥(毛澤東)의 〈모순론(矛盾論)〉(1937)은 이런 뜻의 모순을 다룬 대표적인 글로 꼽힌다.
  • 그리스 신화에도 비슷한 난제가 있다. 테베를 괴롭히던 ‘테우메소스의 여우’는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을 운명이었고, 암피트리온이 데려온 사냥개는 쫓는 것을 반드시 잡을 운명이었다. 사냥개가 여우를 쫓자 제우스는 둘 다 돌로 바꾸어 버렸다.[12]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제7권에도 같은 이야기가 있다.
  • 양귀자(梁貴子)의 장편 소설 《모순》(1998)이 같은 제목으로 널리 읽혔다.[2]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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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가당착(自家撞着): 같은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않음. ‘모순당착(矛盾撞着)’이라고도 한다.[13]
  • 이율배반(二律背反): 서로 모순되어 함께 성립할 수 없는 두 명제. 칸트에 의해 널리 쓰이게 된 철학 용어로, ‘안티노미’라고도 한다.[14]
  • 자상모순(自相矛盾): 스스로 앞뒤가 어긋남. 중국어에서 주로 쓰는 형태.[3]
  • 표리부동(表裏不同): 겉과 속이 다름. 말과 속마음의 어긋남에 무게가 있다.
  • 역설(逆說, paradox): 겉으로는 모순되어 보이지만 그 속에 진리를 담은 표현, 또는 논리적으로 풀기 어려운 명제.
  • 모순어법(oxymoron):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뜻이 반대되는 말을 일부러 붙여 쓰는 수사법.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모순”,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A%A8%EC%88%9C, 확인날짜=2026-09-27.
  2. ↑ 2.0 2.1 2.2 2.3 2.4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모순”,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focus_name=query&query=%EB%AA%A8%EC%88%9C, 확인날짜=2026-09-27.
  3. ↑ 3.0 3.1 3.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自相矛盾”,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89, 확인날짜=2026-09-27.
  4. ↑ 4.0 4.1 4.2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矛盾”,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9F%9B%E7%9B%BE, 확인날짜=2026-09-27.
  5. ↑ 5.0 5.1 5.2 《한비자(韓非子)》 〈난일(難一)〉.
  6. ↑ 6.0 6.1 《한비자》 〈난세(難勢)〉.
  7.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13권, 태종 7년 6월 1일 계미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ca_10706001_002, 확인날짜=2026-09-27.
  8.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哲学字彙”,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93%B2%E5%AD%A6%E5%AD%97%E5%BD%99, 확인날짜=2026-09-27.
  9. ↑ 대만 교육부 《중편국어사전 수정본(重編國語辭典修訂本)》, “矛盾”, https://dict.revised.moe.edu.tw/dictView.jsp?ID=29358&q=1&word=%E7%9F%9B%E7%9B%BE, 확인날짜=2026-09-27.
  10. ↑ 《개정신판 세계대백과사전(改訂新版 世界大百科事典)》, “矛盾”(執筆: 大出晁),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9F%9B%E7%9B%BE, 확인날짜=2026-09-27.
  11.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모순 관계”·“모순 개념”,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focus_name=query&query=%EB%AA%A8%EC%88%9C, 확인날짜=2026-09-27.
  12. ↑ 아폴로도로스(Apollodorus), 《비블리오테케(Bibliotheca)》 2.4.6~7, Perseus Digital Library, https://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text:1999.01.0022:text=Library:book=2:chapter=4:section=6, 확인날짜=2026-09-27.
  13.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자가당착”,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E%90%EA%B0%80%EB%8B%B9%EC%B0%A9, 확인날짜=2026-09-27.
  14.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이율배반”,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D%B4%EC%9C%A8%EB%B0%B0%EB%B0%98,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