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성동격서(聲東擊西)는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뜻으로, 적을 유인하여 이쪽을 공격하는 체하다가 그 반대쪽을 치는 전술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한쪽에서 요란하게 움직여 상대의 주의와 병력을 그쪽으로 끌어 놓고, 실제로는 비어 있는 다른 곳을 치는 계책이다. 군사 용어의 양동(陽動) 작전과 비슷하며, 전쟁뿐 아니라 운동 경기, 협상, 정치에서 상대의 시선을 돌려 놓고 진짜 목표를 노리는 행동을 가리킬 때도 쓴다. 병법서 《삼십육계(三十六計)》에서는 첫째 묶음인 승전계(勝戰計)의 제6계이다.[2]

중국어에서도 같은 한자로 쓰며(shēng dōng jí xī),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은 뜻을 “동쪽을 칠 것 같은 기세를 보이고 실제로는 주력을 모아 상대가 대비하지 않은 서쪽을 친다”로 풀고, 뒤에는 허세를 부려 상대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을 비유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3] 순서를 바꾼 ‘성서격동(聲西擊東)’도 같은 뜻으로 쓰인 예가 있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聲 성 소리 소리를 내다, 떠벌리다
東 동 동녘 동쪽
擊 격 치다 공격하다
西 서 서녘 서쪽

‘聲’은 여기서 명사가 아니라 ‘소리를 내다’, 곧 ‘공격하겠다고 떠벌리다’라는 동사로 쓰였다.

《회남자》 〈병략훈〉

편집 원본 편집

《성어전》은 이 말의 근원(語本)을 전한 《회남자(淮南子)》 〈병략훈(兵略訓)〉으로 본다.[3] 날짐승이 덮칠 때 머리를 숙이고 맹수가 움킬 때 발톱을 감추듯, 군사를 쓰는 것도 속셈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대목이다.

故用兵之道,示之以柔而迎之以剛,示之以弱而乘之以強,為之以歙而應之以張,將欲西而示之以東,先忤而後合,前冥而後明,若鬼之無跡,若水之無創。

[4]

“그러므로 군사를 쓰는 길은, 부드러움을 보이고는 굳셈으로 맞서고, 약함을 보이고는 강함으로 올라타며, 거두어들이는 척하다가 펼쳐 응하고, 서쪽으로 가려 하면서 동쪽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며, 처음에는 어긋나다가 뒤에 맞아떨어지고, 앞에서는 어둡다가 뒤에 밝아져, 귀신이 자취가 없고 물에 상처가 남지 않는 것과 같아야 한다.”

《통전》의 ‘성언격동 기실격서’

편집 원본 편집

당나라 두우(杜佑)의 《통전(通典)》 권153 〈병(兵) 6〉에는 ‘동쪽을 친다고 말하고 실제로는 서쪽을 친다(聲言擊東其實擊西)’라는 항목이 있고, 후한 초 잠팽(岑彭)의 일이 실려 있다.[5]

後漢初,岑彭將兵三萬餘人南擊秦豐,拔黃郵,豐與其大將蔡宏拒彭等於鄧,數月不得進。彭夜勒兵馬,申令軍中,使明早西擊山都。乃緩所獲虜,令得逃亡,歸以告豐,豐即悉其軍西邀彭。彭乃潛兵渡沔水,擊其將張楊於阿頭山,大破之。

[5]

잠팽은 3만여 군사로 진풍(秦豐)을 쳤으나 등(鄧) 땅에서 몇 달 동안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자 밤에 “내일 아침 서쪽 산도(山都)를 친다”는 명을 내리고는 사로잡은 포로를 일부러 느슨하게 지켜 달아나게 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진풍이 군사를 모두 서쪽으로 보내자, 잠팽은 몰래 면수(沔水)를 건너 진풍의 장수를 쳐부수고 근거지 여구(黎丘)까지 곧장 들이쳤다.[5] 《성어전》은 이 이야기를 성동격서의 대표적인 예로 소개한다.[3]

네 글자 형태

편집 원본 편집

‘聲東擊西’ 네 글자는 북송 허동(許洞)이 경덕(景德) 연간(1004년 무렵)에 지은 병법서 《호검경(虎鈐經)》 권4 〈원근(遠近)〉에 이미 보인다. 이 편은 “군사는 속임수의 길이다(兵者詭道也)”라고 한 뒤, “적을 잘 치는 사람은 앞을 놀라게 하고 뒤를 덮치며,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친다(善攻敵者警前掩後,聲東擊西)”고 했다.[6] 《성어전》은 서증으로 《송사(宋史)》 〈고민전(高敏傳)〉, 《명사(明史)》 〈예악전(倪岳傳)〉, 《삼국지연의》 제111회 등을 든다.[3]

《삼십육계》 제6계의 해설(按語)은 두 가지 예를 든다. 하나는 오초칠국의 난 때 오나라 군사가 주아부(周亞夫)의 진영 동남쪽 모퉁이로 몰려들자 주아부가 오히려 서북쪽을 대비했고, 과연 오왕의 정예병이 서북쪽을 쳤다가 들어가지 못한 일로, 적장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 계책이 통하지 않은 예이다. 다른 하나는 후한 말 주준(朱雋)이 완성(宛城)의 황건적을 포위하고 서남쪽에서 북을 울려 적을 모두 그쪽으로 모은 뒤 몸소 정예병 5천으로 동북쪽을 쳐 성에 들어간 일이다. 해설은 이어서 “적의 마음이 어지러우면 이기고 어지럽지 않으면 스스로 패망을 부르니 위험한 계책이다”라고 덧붙였다.[2] 《삼십육계》는 지은이와 연대가 분명하지 않으며, 1941년에 찍은 소책자가 가장 이른 판본으로 알려져 있다.[7]

출전에 대한 오해

편집 원본 편집

성동격서가 《한비자(韓非子)》 〈설림 상(說林上)〉에 나온다고 소개하는 글이 있다(나무위키 등). 〈설림 상〉에는 초나라가 제나라를 친다고 군사를 일으키자 임망(任妄)이 진(秦) 강공(康公)에게 “제나라를 치는 것은 소리일 뿐이고 실제로는 진나라를 습격하려는 것”이라고 경계한 이야기가 있어 생각은 통하지만, ‘聲東擊西’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8] 《성어전》도 이 말의 근원을 《회남자》와 《통전》에서 찾는다.[3]

역사 속의 예

편집 원본 편집
  • 한신의 안읍 기습: 초한전쟁 때 위왕(魏王) 표(豹)가 한나라를 배반하자 한신(韓信)이 토벌에 나섰다. 위왕이 포판(蒲阪)에 군사를 모으고 임진(臨晉)을 막자, 한신은 군사가 많은 것처럼 꾸미고 배를 벌여 임진을 건널 듯이 보이게 한 뒤, 몰래 하양(夏陽)에서 나무 항아리(木罌缻)를 엮어 군사를 건너보내 안읍(安邑)을 습격했다. 놀란 위왕은 군사를 돌렸으나 사로잡혔다.[9]
  • 장사 상륙 작전: 6·25 전쟁 때인 1950년 9월 14일부터 학도병 중심의 독립 제1유격대대가 문산호를 타고 경북 영덕 장사리에 상륙했다. 인천 상륙 작전을 앞두고 북한군의 눈을 동해안으로 돌리려는 양동 작전이었다.[10]

한국에서의 쓰임

편집 원본 편집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聲東擊西가 7건 보인다.[11] 가장 이른 것은 1464년(세조 10) 함길도 도절제사 강순(康純)의 치계로, 올량합(兀良哈) 사람들이 전한 여진의 움직임을 두고 “그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치니 적의 꾀를 헤아리기 어렵다(然聲東擊西,賊謀難測)”며 여러 진보에 경계를 명했다고 아뢰었다.[12] 실록의 용례는 대부분 북방 여진이나 왜구의 기습을 경계하는 말이다. 《승정원일기》 영조 연간에는 조정의 논쟁에서 겉으로 내세운 일과 다른 데를 노려 흔드는 행태를 비꼬는 말로도 쓰였다.[13]

  • 공격자는 대규모 디도스(DDoS) 공격으로 관제 인력을 묶어 둔 사이 다른 서버에서 데이터를 빼내는 성동격서 수법을 썼다. 큰 경보가 울릴 때일수록 다른 구간의 이상 징후도 함께 살펴야 한다.
  • 그 팀은 오른쪽 측면으로 공을 몰다가 왼쪽으로 크게 전환하는 성동격서식 공격으로 결승골을 넣었다.
  • 협상 상대가 가격을 문제 삼는 것은 성동격서일 뿐, 실제 노리는 것은 납기 조건이었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편집 원본 편집
  • 출기제승(出奇制勝): 기묘한 계책으로 적을 이김. 《성어전》이 드는 비슷한 말.
  • 지동타서(指東打西): 동쪽을 가리키고 서쪽을 침. 《성어전》이 드는 비슷한 말.
  • 양동작전(陽動作戰): 적의 주의를 엉뚱한 곳으로 돌리기 위해 일부러 드러내는 작전.
  • 위위구조(圍魏救趙), 타초경사(打草驚蛇): 《삼십육계》의 다른 계책.
  • 직도황룡(直搗黃龍): 적의 근거지로 곧장 쳐들어감. 《성어전》이 드는 반대말.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성동격서”,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4%B1%EB%8F%99%EA%B2%A9%EC%84%9C, 확인날짜=2026-10-01.
  2. ↑ 2.0 2.1 《삼십육계(三十六計)》 〈승전계(勝戰計)〉 제6계 “聲東擊西”.
  3. ↑ 3.0 3.1 3.2 3.3 3.4 3.5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聲東擊西”,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95, 확인날짜=2026-10-01.
  4. ↑ 유안(劉安) 편, 《회남자(淮南子)》 권15 〈병략훈(兵略訓)〉.
  5. ↑ 5.0 5.1 5.2 두우(杜佑), 《통전(通典)》 권153 〈병(兵) 6〉 “聲言擊東其實擊西”.
  6. ↑ 허동(許洞), 《호검경(虎鈐經)》 권4 〈원근(遠近)〉.
  7. ↑ 참고: 쑤이린(隋林), “短史记|把《三十六计》当做传统经典,真是太搞笑了”, 텅쉰뉴스(腾讯新闻), 2021-10-15, https://news.qq.com/rain/a/20211015A0AKSK00, 확인날짜=2026-10-01.
  8. ↑ 《한비자(韓非子)》 〈설림 상(說林上)〉.
  9. ↑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권92 〈회음후 열전(淮陰侯列傳)〉.
  10.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영덕문화대전, “장사상륙작전”, https://www.grandculture.net/yeongdeok/toc/GC08500377, 확인날짜=2026-10-01.
  1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聲東擊西”,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1.
  1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 34권, 세조 10년 11월 11일 경신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ga_11011011_003, 확인날짜=2026-10-01.
  13.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영조 20년 2월 29일 정축, https://sjw.history.go.kr/id/SJW-F20020290-02300, 확인날짜=202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