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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三十六計)는 서른여섯 가지의 꾀, 곧 많은 계책을 이르는 말이다.[1] 흔히 “서른여섯 가지 계책 가운데 달아나는 것이 가장 좋다(三十六計,走爲上計)”는 옛말을 줄여, 급하게 도망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삼십육계(를) 놓다’,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다’를 “(매우) 급하게 도망을 치다”라는 관용구로 올려 두었다.[1]

한국어에서는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다(치다, 부르다)”처럼 ‘줄행랑’과 짝을 지어 쓰는 경우가 가장 많다. 위험하거나 곤란한 자리를 피해 재빨리 달아나는 모습을 가볍게,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이를 때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삼십육계 줄행랑이 제일[으뜸]”을 “위험이 닥쳐 몸을 피해야 할 때에는 싸우거나 다른 계책을 세우기보다 우선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로 풀이한다.[1]

이와 별도로 ‘삼십육계’는 명나라 말~청나라 초 이후에 정리된 것으로 보이는 병법서 《삼십육계》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 책은 ‘만천과해(瞞天過海)’부터 ‘주위상(走爲上)’까지 서른여섯 가지 계책을 여섯 묶음으로 나누어 담았다(아래 병법서 《삼십육계》). 그러나 ‘삼십육계’라는 말은 이 책보다 훨씬 먼저 있었고, 처음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계책’을 뜻하는 어림수였다.

중국어에서는 “三十六計,走為上計(上策)”라는 속담 형태로 쓰고,[2] 일본어에서는 “三十六計逃げるに如かず(さんじゅうろっけいにげるにしかず)”라고 하며 줄여서 ‘三十六計’만으로 도망을 뜻하기도 한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三 삼 셋 서른여섯의 ‘서른’
十 십 열 서른여섯의 ‘서른’
六 육(륙) 여섯 서른여섯의 ‘여섯’
計 계 셈하다, 꾀 꾀, 계책

‘삼십육’은 정확한 수가 아니라 ‘매우 많다’는 뜻의 어림수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도 “三十六은 본래 허수(虛數)로 계책이 매우 많음을 한껏 말한 것인데, 뒤에 호사가들이 억지로 끌어다 붙여 서른여섯이라는 실제 수를 채웠다”고 설명한다.[4]

왕경칙의 조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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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뿌리는 남조 제(齊)나라의 장수 왕경칙(王敬則)이 한 말이다. 《남제서(南齊書)》 권26 〈왕경칙전〉에 따르면, 명제(明帝) 말년인 498년에 회계(會稽)에 있던 노장 왕경칙이 반란을 일으켜 도성 건강으로 올라왔다. 명제의 병이 이미 깊어 조정이 크게 두려워하던 때에, 동궁에 있던 태자 소보권(蕭寶卷, 뒤의 동혼후)이 사람을 지붕에 올려 바라보게 했는데, 정로정(征虜亭)에 불이 난 것을 보고 왕경칙이 들이닥친 줄 알아 서둘러 달아날 채비를 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왕경칙은 이렇게 말했다.

敬則曰:「檀公三十六策,走是上計。汝父子唯應急走耳。」

[5]

“단공(檀公)의 서른여섯 가지 계책 가운데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었다. 너희 부자는 그저 서둘러 달아나기나 해야 할 것이다.”

단공은 남조 송(宋)나라의 명장 단도제(檀道濟)이다. 《남사(南史)》 권45는 같은 말을 적고 “대개 단도제가 위(魏)나라 군대를 피해 물러난 일을 비꼰 것이다(蓋譏檀道濟避魏事也)”라고 덧붙였다.[6] 곧 이 말은 병법의 가르침이 아니라, 싸우지도 않고 달아날 채비부터 하는 명제 부자를 “단도제처럼 도망이나 가라”고 조롱한 말이었다. 기세등등했던 왕경칙은 관군과 싸우다 패해 목이 베였는데, 《남제서》는 “며칠 만에 패했다(裁少日而敗)”고 적었다.[5]

원문은 ‘三十六計’가 아니라 ‘三十六策’이고, 뒤 구절도 ‘走爲上計’가 아니라 ‘走是上計’이다. 사마광의 《자치통감》 권141은 이를 “檀公三十六策,走為上策,計汝父子唯有走耳”로 옮겨 적었다.[7] 일본의 《일본대백과전서(日本大百科全書)》는 왕경칙이 조롱한 대상을 ‘제왕 소도성(蕭道成) 부자’로 적고 있으나,[8] 소도성은 이보다 앞선 제나라의 첫 황제 고제(高帝)이고, 《남제서》에 따르면 달아날 채비를 한 것은 명제의 태자 소보권이다.[5]

‘走爲上計’의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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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十六計,走爲上計’라는 지금의 형태는 북송 때 보인다. 1101년에 엮은 선종 등사(燈史) 《건중정국속등록(建中靖國續燈錄)》 권17에는 안복자승(安福子勝) 선사가 문답 중에 “서른여섯 가지 계책 가운데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다(三十六計,走為上計)”라고 말하고 바로 몽둥이를 휘둘렀다는 대목이 있다.[9]

비슷한 무렵 승려 혜홍(惠洪)은 《냉재야화(冷齋夜話)》 권9 〈삼십육계주위상계(三十六計走爲上計)〉에 숙부 연재(淵材)의 일화를 남겼다. 소성(紹聖) 초에 병법을 즐겨 논하던 연재가 혜홍과 함께 흥국사 강가의 찻집에서 소찬과 차를 맛있게 먹고 났는데, 하인이 돈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했다. 혜홍이 “병법의 계책은 어디서 나오느냐”고 놀리자 연재는 한참 수염을 쓰다듬다가 볼일을 보러 가는 척 뒷문으로 나가더니 모자를 쥐고 옷자락을 걷어 올린 채 나는 듯이 달아났다. 이상공묘(二相公廟)까지 쫓아가서야 겨우 돌아본 연재는 헐떡이며 “호랑이 머리를 엮고 호랑이 수염을 건드렸으니, 하마터면 범의 아가리를 벗어나지 못할 뻔했다”고 했다.

予又戲曰:「在兵法何如?」淵材曰:「三十六計,走爲上計。」

[10]

“내가 또 ‘병법으로는 어떠한가’ 하고 놀리자, 연재는 ‘서른여섯 가지 계책 가운데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지’라고 했다.”

원나라 이후에는 잡극과 소설에서 “常言道(속담에 이르기를)”처럼 속담으로 널리 쓰였다. 관한경(關漢卿)의 잡극 《두아원(竇娥冤)》 제2절에서 돌팔이 의사 새노의(賽盧醫)는 살인 미수가 드러날까 두려워 “속담에 잘 일렀지, ‘서른여섯 가지 계책 가운데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라고”라며 짐을 싸서 달아난다.[11] 《수호전》 제18회에서도 관군이 잡으러 온다는 소식에 “三十六計,走為上計”라며 달아날 것을 권한다.[12]

왕경칙의 말에서 ‘달아나는 것이 상책’은 적을 비웃는 반어였다. 《일본대백과전서》도 이 말이 본래 적 앞에서 달아나는 자를 비겁하다고 꾸짖는 뜻이었는데 일본에서는 달아나는 것을 좋은 계책으로 여기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설명한다.[8] 《일본국어대사전》도 이 말을 “겁이 많거나 비겁해서 달아나라는 것이 아니라, 몸을 안전하게 지켜 뒷날 다시 일어설 것을 꾀하라는 가르침”으로 풀이한다. 일본어의 첫 용례로는 17세기 전반의 《벽암초(碧巖鈔)》를 든다.[13]

또 본래는 ‘삼십육계’가 ‘많은 계책’이었고 ‘달아남’은 뒤에 붙은 말이었는데, 한국어와 일본어에서는 앞부분만 남아 ‘삼십육계’만으로 도망을 뜻하게 되었다.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은 이를 ‘携帯(휴대)’로 휴대전화를 가리키는 것 같은 줄임말에 빗대어, 원래 형태를 모르면 뜻이 통하지 않는 말이 되었다고 설명한다.[3]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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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三十六計’라는 네 글자는 보이지 않지만, 뒤 구절인 ‘走爲上’은 보인다.[14]

  •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초기의 기사는 바닷가 고을들이 왜선을 보자마자 무너져 흩어진 일을 두고 “장수들은 달아나는 것을 상책으로 삼았다(將帥以走爲上策)”고 적었다.[15]
  • 인조 5년(1627) 평안 병사 신경원(申景瑗)은 충군된 죄인들이 의주에 이르러 서른세 명이나 도망친 일을 아뢰며 “법 적용이 엄하지 않아 사람들이 모두 목숨을 훔쳐 사는 데 익숙해져서, 달아나는 것을 상책으로 삼는다(以走爲上計)”고 했다.[16]
  • 19세기 우성규(禹成圭)는 벗에게 보낸 편지에서 벗의 시가 너무 뛰어나 화답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붓을 놓는 것이 서른여섯 계책 가운데 상책(閣筆爲三十六計中上策)”이라고 농담처럼 썼다.[17]

근대 소설에서도 “삼십육계의 상책”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홍명희의 《임꺽정》에서 “참말로 삼십육계의 상책을 생각했소?”를, 한용운의 《흑풍》에서 “삼십육계 중의 상책을 쓰는 것”을 용례로 든다.[1]

병법서 《삼십육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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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널리 읽히는 병법서 《삼십육계》는 첫머리 〈총설(總說)〉에서 “여섯 곱하기 여섯은 서른여섯이니, 수 가운데 술(術)이 있고 술 가운데 수가 있다(六六三十六,數中有術,術中有數)”고 하고, 승전계·적전계·공전계·혼전계·병전계·패전계의 여섯 묶음에 각각 여섯 계책을 두었다. 마지막 제36계가 ‘주위상(走爲上)’이다.[18] 《성어전》도 “뒤에 호사가들이 억지로 끌어다 붙여 서른여섯이라는 실제 수를 채웠다”며 서른여섯 계책의 이름을 모두 든다.[4]

책 이름이 단도제에게서 따온 것이어서 흔히 단도제의 병법으로 소개되지만, 제36계의 해설(按語)에는 남송의 장수 필재우(畢再遇)가 양을 매달아 북을 치게 하고 몰래 진영을 옮긴 일이 “잘 달아난 예”로 실려 있는 등 단도제보다 훨씬 뒤 시대의 사례가 여럿 들어 있다.[18] 중국 언론의 정리에 따르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이른 인쇄본은 1941년 청두(成都)에서 찍은 ‘비본병법(秘本兵法)’이라는 작은 글씨가 붙은 소책자이며, 이 책을 얻은 숙화(叔和)가 1961년 9월 16일 《광명일보》에 소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또 1947년 중화서국에서 나온 《홍문지(洪門志)》에 실린 ‘홍문 삼십육착(洪門三十六着)’의 항목이 이 책의 계책 이름과 거의 같다는 지적도 있어, 이 책을 민국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19]

  • 경찰이 나타나자 소매치기는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았다.
  • 대형 장애가 터졌는데 담당자가 삼십육계를 놓아 버리면 복구는 더 늦어진다. 모르는 부분은 모른다고 밝히고 바로 보고하는 것이 오히려 상책이다.
  • 형세가 기울자 그는 삼십육계가 제일이라며 모임 자리를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삼십육계’의 첫째 뜻으로 “물주가 맞힌 사람에게 살돈의 서른여섯 배를 주는 노름”이 올라 있다. 계책과는 상관없는 노름 이름이다.[1]
  • ‘삼십육계 줄행랑’의 ‘줄행랑’은 본래 대문 좌우로 죽 늘어선 종들의 방(행랑)을 가리키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둘째 뜻으로 “‘도망’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올려 두었다.[20]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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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1.0 1.1 1.2 1.3 1.4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삼십육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2%BC%EC%8B%AD%EC%9C%A1%EA%B3%84, 확인날짜=2026-09-30.
  2.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三十六計,走為上計”,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7651, 확인날짜=2026-09-30.
  3. ↑ 3.0 3.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三十六計”,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8%89%E5%8D%81%E5%85%AD%E8%A8%88, 확인날짜=2026-09-30.
  4. ↑ 4.0 4.1 대만 교육부 《성어전》 2020, “三十六計”,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2357, 확인날짜=2026-09-30.
  5. ↑ 5.0 5.1 5.2 《남제서(南齊書)》 권26 〈왕경칙전(王敬則傳)〉.
  6. ↑ 《남사(南史)》 권45 〈왕경칙전(王敬則傳)〉.
  7. ↑ 사마광(司馬光), 《자치통감(資治通鑑)》 권141 〈제기(齊紀) 7〉 명제 영태(永泰) 원년.
  8. ↑ 8.0 8.1 《일본대백과전서(日本大百科全書, ニッポニカ)》, “三十六計逃げるに如かず”,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8%89%E5%8D%81%E5%85%AD%E8%A8%88%E9%80%83%E3%81%92%E3%82%8B%E3%81%AB%E5%A6%82%E3%81%8B%E3%81%9A, 확인날짜=2026-09-30.
  9. ↑ 유백(惟白), 《건중정국속등록(建中靖國續燈錄)》 권17, CBETA X1556, https://cbetaonline.dila.edu.tw/, 확인날짜=2026-09-30.
  10. ↑ 혜홍(惠洪), 《냉재야화(冷齋夜話)》 권9 〈삼십육계주위상계(三十六計走爲上計)〉.
  11. ↑ 관한경(關漢卿), 《두아원(竇娥冤)》 제2절.
  12. ↑ 시내암(施耐庵), 《수호전(水滸傳)》(120회본) 제18회.
  13.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속담을 아는 사전(ことわざを知る辞典)》, “三十六計逃げるに如かず”,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8%89%E5%8D%81%E5%85%AD%E8%A8%88%E9%80%83%E3%81%92%E3%82%8B%E3%81%AB%E5%A6%82%E3%81%8B%E3%81%9A, 확인날짜=2026-09-30.
  14.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三十六計”, “走爲上”,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30.
  15.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27권, 선조 25년 6월 28일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2506028_004, 확인날짜=2026-09-30.
  16.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17권, 인조 5년 12월 6일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pa_10512006_002, 확인날짜=2026-09-30.
  17. ↑ 우성규(禹成圭), 〈여이사욱(與李士郁)〉, 《경재집(景齋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ITKC_MO_1243A_0040_010_0180,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30.
  18. ↑ 18.0 18.1 《삼십육계(三十六計)》 〈총설(總說)〉·〈패전계(敗戰計)〉.
  19. ↑ 참고: 쑤이린(隋林), “短史记|把《三十六计》当做传统经典,真是太搞笑了”, 텅쉰뉴스(腾讯新闻), 2021-10-15, https://news.qq.com/rain/a/20211015A0AKSK00, 확인날짜=2026-09-30.
  20.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줄행랑”,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4%84%ED%96%89%EB%9E%91, 확인날짜=20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