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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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무례(傲慢無禮)는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하여 예의를 지키지 아니함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글자 뜻 그대로 굳은 말이다. 확인되는 이른 예는 당나라 도교 문헌이다. 서울 태청관(太淸觀)의 도사 장만복(張萬福)이 엮은 계율집 《삼동중계문(三洞眾戒文)》은 제자가 스승을 섬기는 법도를 늘어놓으며 이렇게 적었다.[4]
弟子事師, 皆當恭敬, 不得傲慢無禮.
“제자는 스승을 섬길 때 모두 공경해야 하며, 오만무례해서는 안 된다.”
송나라 때는 금나라 사신의 태도를 두고 “앞서 금나라 사신이 오만무례하였다(前此虜使傲慢無禮)”라고 한 상소가 《삼조북맹회편》에 실렸고,[5] 《명사》 〈일본전〉은 명 태조가 보낸 승려 사신을 일본의 ‘왕’ 양회(良懷, 가네요시 친왕)가 “오만무례하게 대하여 2년 동안 붙잡아 두었다(而王則傲慢無禮,拘之二年)”고 적었다.[6] 이 《명사》 구절은 뒤에 일본의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가 《어융개언(馭戎慨言)》에서 그대로 인용하기도 했다.[7] 명대 소설 《동주열국지》에도 “宋公傲慢無禮(송공이 오만무례하다)” 같은 표현이 나온다.[8]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네 차례 나온다. 가장 이른 것은 1511년(중종 6) 병조가 향화인 명부에 오르지 못한 데 불만을 품은 북도(北道) 사람 양번석(楊番碩) 형제를 “오만무례하다(傲慢無禮)”며 벌줄 것을 청한 기사이고,[9] 1712년(숙종 38)에는 일본에서 받아 온 국서의 겉봉 형식이 옛 예를 따르지 않은 것을 두고 “그 오만무례함이 참으로 해괴하다(其傲慢無禮, 誠極駭惋)”는 탄핵이 올라왔다.[10] 실록에는 같은 뜻으로 ‘倨傲無禮’, ‘侮慢無禮’, ‘驕傲無禮’도 보인다.[11]
- 고객 문의에 오만무례한 자동 응답이 나가지 않도록 챗봇의 답변 문구를 검수한다.
- 회의에서 남의 말을 끊고 비웃는 것은 오만무례한 행동이다.
- 그는 은사에게 오만무례하게 굴었다가 동료들의 눈총을 받았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오만무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8%A4%EB%A7%8C%EB%AC%B4%EB%A1%80, 확인날짜=2026-10-11.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무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C%B4%EB%A1%80, 확인날짜=2026-10-11.
- ↑ 3.0 3.1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傲慢無礼”,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82%B2%E6%85%A2%E7%84%A1%E7%A4%BC, 확인날짜=2026-10-11.
- ↑ 장만복(張萬福) 편, 《삼동중계문(三洞眾戒文)》, 《정통도장(正統道藏)》 동진부 계율류.
- ↑ 서몽신(徐夢莘), 《삼조북맹회편(三朝北盟會編)》 권186.
- ↑ 《명사(明史)》 권322 〈외국열전 3 일본(日本)〉.
- ↑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馭戎慨言》, 1796 간본,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컬렉션, https://dl.ndl.go.jp/pid/2578259, 확인날짜=2026-10-11.
- ↑ 풍몽룡(馮夢龍) 개편,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 제34회.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13권, 중종 6년 4월 18일 정유 5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0604018_005, 확인날짜=2026-10-1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51권, 숙종 38년 2월 7일 경신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sa_13802007_002, 확인날짜=2026-10-1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傲慢無禮”·“倨傲無禮”·“侮慢無禮”·“驕傲無禮”,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1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0권, 세종 2년 11월 1일 을축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kda_10211001_002, 확인날짜=2026-10-11.
-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동아일보》 1926년 5월 14일 4면, “堤川靑年會에서 牧師에 警告, 理由는 傲慢無禮”, https://db.history.go.kr/id/npda_1926_05_14_v0004_0640, 확인날짜=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