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벌백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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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벌백계(一罰百戒)는 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본보기로 한 사람에게 엄한 처벌을 하는 일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새 법이나 규칙을 처음 적용할 때, 또는 느슨해진 기강을 다잡아야 할 때 “일벌백계로 엄히 다스리겠다”처럼 쓴다. 여기서 ‘하나(一)’와 ‘백(百)’은 정확한 숫자가 아니라 ‘소수’와 ‘다수’를 뜻하므로, 여러 명을 함께 처벌하는 경우에도 쓴다. 처벌의 목적을 죄지은 사람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두는 말이어서, 형평에 어긋난 본보기 처벌을 비판할 때도 자주 거론된다.
일본어에서도 一罰百戒(いちばつひゃっかい)라고 하여 “죄를 지은 한 사람을 벌함으로써 다른 많은 사람의 경계로 삼는 것”이라는 같은 뜻으로 쓴다.[2] 중국어에서는 이 네 글자를 쓰지 않고 ‘살일경백(殺一儆百)’, ‘징일계백(懲一戒百)’ 등을 쓴다. 《성어전(成語典)》은 殺一儆百을 “한 사람을 죽여 여러 사람을 경계함”으로 풀고 청나라 공자진(龔自珍)의 글을 용례로 든다.[3]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같은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一罰百戒’라는 네 글자는 중국 고전과 조선의 한문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 이일경백(以一警百): 《한서(漢書)》 권76 〈윤옹귀전(尹翁歸傳)〉은 동해 태수 윤옹귀가 교활한 아전과 호족을 잡을 때 반드시 가을·겨울 관리 고과 모임이나 순행 때를 골랐다며 “그가 잡아들이는 것은 하나로 백을 경계하는 것이어서 아전과 백성이 모두 복종하고 두려워하며 행실을 고쳤다(其有所取也,以一警百,吏民皆服,恐懼改行自新)”고 적었다.[4]
- 징일계백(懲一戒百): 《금사(金史)》 권89에는 뇌물죄로 처벌된 지방관들의 일을 조서로 널리 알릴지를 두고 자평(子平)이 “하나를 징계해 백을 경계한다고 들었으니 폐하께서 마땅히 그렇게 하셔야 한다(臣聞懲一戒百,陛下固宜行之)”고 답한 대목이 있다.[5]
- 벌일계백(罰一戒百): 송나라 장상영(張商英)의 《호법론(護法論)》은 승려의 죄를 엄히 다스린 관리가 “하나를 벌해 백을 경계하지 않으면 악한 자가 더욱 많아질 것(若不罰一戒百,則惡者滋多)”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一罰百戒와 글자 순서만 다른 형태이다.[6]
조선에서는 ‘징일여백(懲一勵百)’, ‘징일려백(懲一礪百)’을 주로 썼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 懲一勵百은 42건, 懲一礪百은 25건 검색되지만 一罰百戒는 0건이다.[7] 표준국어대사전도 징일여백을 “한 사람을 징계하여 여러 사람을 격려함”이라는 표제어로 싣는다.[8]
실록과 문집의 국역본에는 ‘일벌백계’가 자주 나오지만, 원문을 보면 다른 표현을 옮긴 것이다. 한국고전종합DB에서 문집 번역문의 ‘일벌백계’는 30건이 검색되지만 원문의 ‘一罰百戒’는 0건이다.[9] 예를 들어 유희춘(柳希春)의 《미암집》 번역문 “큰 죄인을 만나면 일벌백계(一罰百戒)하는 것이 상책”의 원문은 “遇大惡則懲一誡百。上也”이고,[10] 이상정(李象靖)의 번역문 “엄한 형벌로 일벌백계(一罰百戒)하는 것”의 원문은 “報使嚴刑。懲一勵百”이다.[11] 이색(李穡)의 시 번역에서 ‘일벌백계’로 옮긴 원문은 “罰一將勸千”이다.[12]
네 글자 형태는 1940년 무렵 일본에서 경제 통제 위반을 단속하는 표어로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컬렉션에서 이른 용례는 1940년 무렵의 경제 통제 법령 해설서들에 몰려 있으며, “형정(刑政)의 요체는 일벌백계에 있다”는 문구가 되풀이된다.[13] 1942년에 나온 《재판으로 본 통제 위반(裁判から見た統制違反)》은 “그 뒤로 누가 말했다 할 것 없이 ‘일벌백계’라는 표어가 쓰이게 되었고, 그것이 당국의 단속 방침이 되었다”고 적었다.[14] 한국 신문에서는 1960년대 초 부정 축재자 처리와 공무원 징계를 두고 ‘일벌백계주의’라는 말이 자주 쓰였다.[15]
《사기(史記)》 권65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의 손무(孫武) 일화가 일벌백계의 예로 자주 소개된다. 오왕 합려(闔廬)가 궁녀 180명으로 병법을 시험해 보라고 하자, 손무는 왕이 아끼는 두 궁녀를 대장으로 세웠다. 궁녀들이 명령을 듣고도 웃기만 하자 손무는 두 대장을 베었다.
約束不明,申令不熟,將之罪也;既已明而不如法者,吏士之罪也。乃欲斬左右隊長。……遂斬隊長二人以徇。用其次為隊長,於是復鼓之。婦人左右前後跪起皆中規矩繩墨,無敢出聲。
“약속이 분명하지 않고 명령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장수의 죄이지만, 이미 분명한데도 따르지 않는 것은 대장의 죄이다.” 두 대장을 베어 본보기로 삼고 다음 사람을 대장으로 세워 다시 북을 치자, 궁녀들은 모두 법도대로 움직이며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이 일로 합려는 손무를 장수로 삼았다. 다만 이 대목에 ‘일벌백계’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는다.
나무위키 등에는 이 이야기의 오왕이 부차(夫差)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으나, 《사기》 원문의 오왕은 부차의 아버지 합려이다.
- 사내 보안 규정을 어기고 고객 정보를 외부 메일로 보낸 직원을 일벌백계 차원에서 징계했다.
- 음주 운전을 일벌백계로 엄히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 일벌백계도 좋지만, 한 사람만 본보기로 삼는 처벌이 공정한지는 따져 봐야 한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일벌백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D%BC%EB%B2%8C%EB%B0%B1%EA%B3%84, 확인날짜=2026-09-30.
- ↑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 “一罰百戒”,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8%80%E7%BD%B0%E7%99%BE%E6%88%92, 확인날짜=2026-09-30.
- ↑ 3.0 3.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殺一儆百”,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1172, 확인날짜=2026-09-30.
- ↑ 반고(班固), 《한서(漢書)》 권76 〈윤옹귀전(尹翁歸傳)〉.
- ↑ 《금사(金史)》 권89.
- ↑ 장상영(張商英), 《호법론(護法論)》.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懲一勵百”, “懲一礪百”, “一罰百戒”,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30.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징일여백”,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7%95%EC%9D%BC%EC%97%AC%EB%B0%B1, 확인날짜=2026-09-30.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고전번역서 검색 “일벌백계” 및 고전원문 검색 “一罰百戒”,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30.
- ↑ 유희춘(柳希春), 〈정훈외편 하 치현수지(庭訓外篇下 治縣須知)〉, 《미암집(眉巖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157A_0060_010_0040, 확인날짜=2026-09-30.
- ↑ 이상정(李象靖), 〈하일향민인첩(下一鄕民人帖)〉, 《대산집(大山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0531A_0420_010_0060, 확인날짜=2026-09-30.
- ↑ 이색(李穡), 〈군자(君子)〉, 《목은집(牧隱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0020A_0280_010_0810, 확인날짜=2026-09-30.
- ↑ 《統制違反に関する判例集 : 附・重要物資の配給統制》, 1940,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컬렉션, https://dl.ndl.go.jp/pid/1441625, 확인날짜=2026-09-30.
- ↑ 《裁判から見た統制違反 : 附:経済統制法令判決要旨並法令集》, 1942,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컬렉션, https://dl.ndl.go.jp/pid/1439133, 확인날짜=2026-09-30.
- ↑ 〈一罰百戒主義로 金永善財務部長官, 不正蓄財者處理運營에 言明〉, 《동아일보》 1961년 3월 4일 자 조간 1면,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s://db.history.go.kr/id/npda_1961_03_04_w0001_0070, 확인날짜=2026-09-30.
- ↑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권65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