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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필벌(信賞必罰)은 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을 준다는 뜻으로, 상과 벌을 공정하고 엄중하게 하는 일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 상과 벌의 기준을 미리 분명히 하고, 친하거나 귀한 사람이라도 예외 없이 그대로 집행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인사 평가, 군 기강, 공직 감찰 등에서 자주 쓰며, 상을 약속해 놓고 주지 않거나 가까운 사람의 잘못을 덮어 주는 일을 비판할 때도 인용된다.

중국어와 일본어에서도 같은 한자로 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은 “공이 있으면 반드시 상 주고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벌하여 상벌이 엄정함”으로 풀이한다.[2] 일본어로는 ‘신쇼히쓰바쓰(信賞必罰)’라고 읽으며,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은 1783년 에무라 홋카이(江村北海)의 《수업편(授業編)》을 첫 용례로 든다.[3] 대만의 〈공무인원고적법(公務人員考績法)〉 제2조는 공무원 평정의 원칙을 “명분과 실제를 살피고 신상필벌한다(綜覈名實、信賞必罰)”로 규정하고 있다.[4]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信 신 믿다, 미덥다 약속대로 틀림없이
賞 상 상, 상을 주다 상을 주다
必 필 반드시 반드시
罰 벌 벌, 벌하다 벌을 주다

‘信’은 ‘믿다’보다 ‘약속한 대로 틀림없이’라는 뜻으로 쓰여 뒤의 ‘必(반드시)’과 짝을 이룬다.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도 ‘信賞’을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약속대로 상을 주는 것으로 풀이한다.[3]

《한비자》 〈외저설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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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韓非子)》 〈외저설 우상(外儲說右上)〉에 실린 진(晉) 문공(文公)과 호언(狐偃)의 문답에서 나온 말이다.[2][5] 문공은 백성을 전쟁에 나서게 하려고 잔치에서 고기와 술을 나누고, 세금과 형벌을 가볍게 하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방법을 차례로 물었으나 호언은 모두 “부족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런 것은 백성의 살림을 지켜 주는 일일 뿐인데 전쟁은 그들을 죽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曰:「然則何如足以戰民乎?」狐子對曰:「令無得不戰。」公曰:「無得不戰奈何?」狐子對曰:「信賞必罰,其足以戰。」公曰:「刑罰之極安至?」對曰:「不辟親貴,法行所愛。」文公曰:「善。」明日令田於圃陸,期以日中爲期,後期者行軍法焉。於是公有所愛者曰顛頡後期,吏請其罪,文公隕涕而憂。吏曰:「請用事焉。」遂斬顛頡之脊,以徇百姓,以明法之信也。

[5]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백성을 싸우게 할 수 있겠소?” 호언이 대답했다. “싸우지 않을 수 없게 하십시오.” “싸우지 않을 수 없게 하려면 어찌해야 하오?” “상을 약속대로 주고 벌을 반드시 내리면 싸우게 할 수 있습니다.” “형벌은 어디까지 미쳐야 하오?” “친하고 귀한 사람도 피하지 않고, 아끼는 사람에게도 법을 행해야 합니다.” 문공이 “좋다”고 했다. 이튿날 포륙(圃陸)에서 사냥을 하기로 하고 정오를 기한으로 정해 늦는 사람은 군법으로 다스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문공이 아끼던 전힐(顛頡)이 늦었다. 관리가 죄를 청하자 문공은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관리가 “집행하겠습니다” 하고는 전힐의 등을 베어 백성에게 돌려 보여 법이 미덥다는 것을 밝혔다.

이 일이 있은 뒤 백성들은 “임금께서 전힐을 그토록 아끼셨는데도 법을 행하셨으니 우리야 말할 것도 없다”며 두려워했고, 문공은 이들을 이끌고 원(原)·위(衛)·조(曹) 등을 치고 성복(城濮)에서 초나라를 크게 이겼다고 이야기는 이어진다.[5]

《한비자》의 상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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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 〈내저설 상(內儲說上)〉은 임금이 신하를 다스리는 일곱 가지 방법(七術) 가운데 둘째를 “반드시 벌하여 위엄을 밝힘(必罰明威)”, 셋째를 “약속대로 상 주어 능력을 다하게 함(信賞盡能)”으로 꼽는다.[6] 《한비자》 〈이병(二柄)〉은 현명한 임금이 신하를 다스리는 수단은 형벌과 포상이라는 ‘두 자루(二柄)’뿐이라고 했는데,[7] 신상필벌은 이러한 법가의 상벌론을 네 글자로 줄인 말이라 할 수 있다.

《한서》의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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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班固)는 《한서(漢書)》 〈선제기(宣帝紀)〉의 찬(贊)에서 전한 선제(宣帝)의 다스림을 “상을 약속대로 주고 벌을 반드시 내리며 명분과 실제를 따져 살폈다(孝宣之治,信賞必罰,綜核名實)”고 평했다.[8]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도 이 대목을 참고 문헌으로 든다.[3]

한국에서의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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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信賞必罰이 69건 보일 만큼 자주 쓰였다.[9] 가장 이른 것은 조선이 세워진 1392년(태조 1) 9월 11일 각 도 안렴사에게 내린 교서이다. 태조는 적을 막아 내고 백성을 편안히 한 관원은 이름을 올려 차례를 따지지 않고 발탁하고, 싸움에서 군율을 어기거나 탐욕스럽고 직무를 버린 관원은 엄히 처결하겠다며 “나의 신상필벌의 뜻을 밝히라(以明予信賞必罰之意)”고 했다.[10] 1400년(정종 2)에는 사헌부와 문하부가 권희달(權希達)의 횡포를 탄핵하며 즉위 초일수록 신상필벌로 민심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아뢰었다.[11]

  • 보안 사고를 숨긴 담당자보다 먼저 보고한 담당자가 불이익을 받는다면 신상필벌이 거꾸로 된 것이다. 신고한 사람은 보호하고 은폐한 사람은 책임을 묻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 새 사장은 신상필벌을 내세워 성과급 기준과 징계 기준을 모두 공개했다.
  • 신상필벌이 지켜지지 않는 조직에서는 아무도 앞장서서 일하려 하지 않는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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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벌(賞罰): 상과 벌.
  • 일벌백계(一罰百戒): 한 사람을 벌주어 여러 사람에게 경각심을 줌.
  • 읍참마속(泣斬馬謖): 큰 목적을 위하여 아끼는 사람을 버림. 전힐을 벤 진 문공의 이야기와 흔히 함께 거론된다.
  • 논공행상(論功行賞): 공로를 따져 상을 줌.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신상필벌”,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B%A0%EC%83%81%ED%95%84%EB%B2%8C, 확인날짜=2026-10-01.
  2. ↑ 2.0 2.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信賞必罰”,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7824, 확인날짜=2026-10-01.
  3. ↑ 3.0 3.1 3.2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信賞必罰”,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F%A1%E8%B3%9E%E5%BF%85%E7%BD%B0, 확인날짜=2026-10-01.
  4. ↑ 대만 〈공무인원고적법(公務人員考績法)〉 제2조, 전국법규자료고(全國法規資料庫), https://law.moj.gov.tw/LawClass/LawAll.aspx?PCode=S0040001, 확인날짜=2026-10-01.
  5. ↑ 5.0 5.1 5.2 《한비자(韓非子)》 〈외저설 우상(外儲說右上)〉.
  6. ↑ 《한비자(韓非子)》 〈내저설 상 칠술(內儲說上七術)〉.
  7. ↑ 《한비자(韓非子)》 〈이병(二柄)〉.
  8. ↑ 반고(班固), 《한서(漢書)》 권8 〈선제기(宣帝紀)〉 찬(贊).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信賞必罰”,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1.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2권, 태조 1년 9월 11일 기축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aa_10109011_002, 확인날짜=2026-10-01.
  1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종실록》 6권, 정종 2년 12월 1일 신묘 6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ba_10212001_006, 확인날짜=202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