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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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지간(左右之間)은 ‘이렇든 저렇든 어떻든 간’이라는 뜻으로, 앞의 사정이야 어떻든 결론은 이렇다고 말을 돌릴 때 쓰는 한자어이다. ‘좌우간(左右間)’과 같은 말이다.[1][2]
“좌우지간 해 보자”, “좌우지간 이번에는 끝을 내야 한다”처럼 문장 앞에 놓여 ‘어쨌든’, ‘아무튼’, ‘하여간’과 같은 구실을 한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곧 이쪽이든 저쪽이든 가리지 않는다는 데서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라는 뜻이 나왔다. 줄여서 ‘좌우간’이라고도 하며, 입말에서는 ‘좌우지간에’, ‘좌우간에’처럼 ‘-에’를 붙이기도 한다.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한문의 ‘左右之間’은 본래 글자 그대로 ‘왼쪽과 오른쪽 사이’나 ‘곁(측근)’을 뜻했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의 ‘左右之間’ 3건도 “빈첩과 측근 사이(嬪妾左右之間)”(1542), “전하께서 아침저녁 곁에 계시는 사이(昕夕左右之間)”(1796)처럼 모두 이런 뜻이다.[5] ‘左右間’도 실록에서는 건물의 좌우 칸(1563, 1795)을 가리킨다.[6]
조선 후기 문집에서는 ‘두 갈래 가운데 어느 쪽이든’이라는 뜻으로 쓴 예가 보인다. 1661년(현종 2) 남구만(南九萬)은 상소에서 어떤 인물에 대한 비방과 칭찬이 엇갈리니 “그 참과 거짓은 잠시 어느 한쪽으로 정하지 않고 두고서(今姑置其虛實於左右之間) 사람됨을 대강 논하겠다”고 했다.[7]
19세기 후반의 편지에서는 ‘左右間’이 거의 지금의 ‘좌우간’처럼 쓰였다. 이승희(李承熙)는 1885년 아버지 이진상에게 올린 편지에서 벼슬 제수가 특별 승진이면 사양을 신중히 하고 관례에 따른 것이면 나아가지 않으면 될 것이라고 두 경우를 든 뒤 “어느 쪽이든 일찍 아뢰지 않을 수 없다(左右間不得不早白)”고 했다.[8] 송병선(宋秉璿)이 1884년 숙부에게 보낸 편지의 “몇 달을 기다려 어느 쪽으로든 처분이 없으면(左右間若無處分)”,[9] 유중교(柳重敎)가 두 길을 든 뒤 “어느 쪽이든 모두 손댈 곳이 없다(左右間。俱沒着手處)”고 한 것도 같은 쓰임이다.[10] 두 가지 가능성을 늘어놓은 뒤 ‘어느 쪽이 되든’이라고 묶는 쓰임이 굳어, 앞말과 상관없이 결론으로 넘어가는 ‘어쨌든’의 뜻이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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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학자 안경환이 2013년에 펴낸 책의 제목이 《좌우지간 인권이다》이다.[13]
- 좌우간(左右間): 이렇든 저렇든 어떻든 간. 좌우지간과 같은 말.
- 하여간(何如間), 여하간(如何間): 어찌하든지 간에.
- 어쨌든, 아무튼, 하여튼: 의견이나 형편이 어떻게 되어 있든.
- 고하간(高下間): 나이가 많든 적든 따지지 아니함. ‘-간(間)’이 ‘~든 간에’의 뜻으로 쓰인 비슷한 짜임.[14]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좌우지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2%8C%EC%9A%B0%EC%A7%80%EA%B0%84, 확인날짜=2026-10-12.
- ↑ 2.0 2.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좌우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2%8C%EC%9A%B0%EA%B0%84, 확인날짜=2026-10-12.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하여간”·“여하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5%98%EC%97%AC%EA%B0%84, 확인날짜=2026-10-12.
-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좌우지간”,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query=%EC%A2%8C%EC%9A%B0%EC%A7%80%EA%B0%84, 확인날짜=2026-10-12.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44권, 정조 20년 3월 6일 임자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va_12003006_004, 확인날짜=2026-10-12.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명종실록》 29권, 명종 18년 10월 24일 기사(己巳)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ma_11810024_002, 확인날짜=2026-10-12.
- ↑ 남구만(南九萬), 〈인성변진소회소(因星變陳所懷疏)〉, 《약천집(藥泉集)》 권3,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MO_0396A_0030_010_0070, 확인날짜=2026-10-12.
- ↑ 이승희(李承熙), 〈상가군(上家君) 을유〉, 《대계집(大溪集)》 권27,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MO_1256A_0270_010_0070, 확인날짜=2026-10-12.
- ↑ 송병선(宋秉璿), 〈상숙부(上叔父) 갑신팔월사일〉, 《연재집(淵齋集)》 권5,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MO_0651A_0050_010_0270, 확인날짜=2026-10-12.
- ↑ 유중교(柳重敎), 〈답양경칠(答梁景七)〉, 《성재집(省齋集)》 권20,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MO_0646A_0200_010_0270, 확인날짜=2026-10-12.
- ↑ 정정옥(鄭廷玉), 《간전노매원가채주(看錢奴買冤家債主)》.
- ↑ 시내암(施耐庵), 《수호전(水滸傳)》 120회본 제62회.
-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좌우지간 인권이다”,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query=%EC%A2%8C%EC%9A%B0%EC%A7%80%EA%B0%84, 확인날짜=2026-10-12.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고하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3%A0%ED%95%98%EA%B0%84, 확인날짜=202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