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근목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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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근목피(草根木皮)는 풀뿌리와 나무껍질이라는 뜻으로, 맛이나 영양 가치가 없는 거친 음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한약의 재료를 이르는 말로도 쓴다.[1]
곡식이 떨어진 흉년에 사람들이 산과 들에서 풀뿌리를 캐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으며 목숨을 이은 데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한국어에서는 “초근목피로 연명하다”, “초근목피로 끼니를 때우다”처럼 극심한 가난과 굶주림을 나타내는 데 주로 쓴다.[1] 보릿고개 같은 옛 춘궁기를 회고하는 글에 자주 나온다.
또 하나의 뜻은 ‘한약재’이다. 한약은 대부분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만들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한약방에는 갖가지 초근목피 봉지가 천장에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를 예문으로 든다.[1] 일본어에서는 오히려 이쪽이 중심 뜻이다(아래 다른 언어의 표현 참고).
특정한 고사에서 나온 말은 아니며, 기근의 참상을 적는 글에서 굳은 표현이다. 확인한 가장 이른 용례는 북송의 이복(李復)이 지은 시 〈기주한(夔州旱)〉이다. 기주(夔州) 사람들이 산을 불태워 밭을 일구는데 가뭄이 들자 “높은 곳 낮은 곳이 다 거칠어졌으니, 풀뿌리 나무껍질이 쓴들 단들 어떠하랴(髙下荒,草根木皮何甘苦)”라고 읊었다.[2]
남송의 진조(陳造)는 구휼을 청하는 편지 〈여봉사원대저론구황서(與奉使袁大著論救荒書)〉에서 회수(淮水) 지방의 기근을 이렇게 적었다.[3]
淮鄉土曠人稀,雖荒歲窮窘,其民食草根木皮,猶無餓死者。今草根木皮亦復無餘。
“회수 지방은 땅이 넓고 사람이 적어, 흉년에 궁핍해도 백성이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으며 굶어 죽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풀뿌리와 나무껍질마저 남은 것이 없다.”
《금사(金史)》 〈식화지(食貨志)〉에는 금 선종 정우(貞祐) 4년(1216) 산동행성의 복산안정(僕散安貞)이 올린 말로 “사주(泗州)가 재해를 입어 굶어 죽은 사람이 길에 잇닿았는데, 먹는 것은 풀뿌리와 나무껍질뿐이다(所食者草根木皮而已)”라는 대목이 있다.[4] 《일본국어대사전》도 이 《금사》 〈식화지〉를 중국 문헌의 예로 든다.[5] 명청 시대의 지방지와 문집에는 “사람들이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었다(人食草根木皮)”는 기근 기록이 매우 많다.
조선에서도 흉년의 참상을 아뢰는 글에 쓰였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草根木皮’가 2건 있다.[6]
- 중종 8년(1513) 함경도 관찰사 정광필(鄭光弼)은 품계를 올려 준 것을 사양하는 장계에서 “홍원 이북은 더욱 흉년이 들어 재산이 있는 사람도 모두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으며 어렵게 살아간다(有産業者,皆茹草根木皮,艱難生活)”고 했다.[7]
- 영조 32년(1756)의 상소는 “풀뿌리와 나무껍질로도 굶주림을 채우지 못하는데(草根木皮不足充饑) 농사철은 이미 다하여 봄 농사를 바랄 수 없다”며 세금 독촉을 멈추어 달라고 했다.[8]
《승정원일기》에도 현종 3년(1662) 곽제화(郭齊華)의 상소에 “풀뿌리와 나무껍질도 모자라(草根木皮,亦且不贍) 겨울부터 봄까지 굶어 죽은 사람이 잇따른다”는 대목이 있다.[9]
실록 국역문에는 ‘초근목피’가 원문보다 많이 나오는데, 원문의 다른 표현을 번역자가 이 말로 옮긴 경우가 섞여 있다. 예를 들어 선조 36년(1603) 제주의 흉년을 아뢴 비변사 계사는 원문이 “풀과 나무의 뿌리와 껍질(草木根皮)”이고,[10] 정조 12년(1788) 함경도 구휼 전교는 원문이 “나물을 씹고 뿌리를 먹는(咬菜喫根)”인데, 국역문은 둘 다 ‘초근목피’로 옮겼다.[11]
- 중국어: ‘草根木皮’도 옛 문헌에 쓰였지만, 명청 소설 이후로는 ‘초근수피(草根樹皮)’가 더 흔하다. 《비파기(琵琶記)》, 《경화연(鏡花緣)》 등에서 기근 때 먹는 것이라는 뜻과, 《구미귀(九尾龜)》 등에서 ‘한약’을 낮추어 이르는 뜻이 모두 보인다.[12]
- 일본어: ‘草根木皮(そうこんもくひ, そうこんぼくひ)’는 주로 한약재, 나아가 한약 자체를 뜻한다. 《일본국어대사전》은 이 뜻의 첫 용례로 히라타 아쓰타네(平田篤胤)의 《시즈노이와야 강본(志都の岩屋講本)》(1811)을 든다.[5]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의 예문도 “아버지는 초근목피(한약)밖에 믿지 않는다”는 이시카와 다쓰조(石川達三)의 소설 구절이다.[13] 한국어처럼 ‘굶주림’을 나타내는 뜻은 일본 사전에 없다.
- 할머니는 보릿고개 시절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 그 나라는 내전과 가뭄이 겹쳐 많은 주민이 초근목피로 버티고 있다.
- 한약방 서랍마다 이름 모를 초근목피가 가득했다.
-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초근목피”,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B4%88%EA%B7%BC%EB%AA%A9%ED%94%BC, 확인날짜=2026-10-01.
- ↑ 이복(李復), 《휼수집(潏水集)》 권11 〈기주한(夔州旱)〉.
- ↑ 진조(陳造), 《강호장옹집(江湖長翁集)》 권24 〈여봉사원대저론구황서(與奉使袁大著論救荒書)〉.
- ↑ 《금사(金史)》 권47 〈식화지(食貨志)〉.
- ↑ 5.0 5.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草根木皮”,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8D%89%E6%A0%B9%E6%9C%A8%E7%9A%AE, 확인날짜=2026-10-0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草根木皮”, https://sillok.history.go.kr/search/searchResultList.do?topSearchWord=%E8%8D%89%E6%A0%B9%E6%9C%A8%E7%9A%AE&type=w&sillokType=S, 확인날짜=2026-10-0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18권, 중종 8년 3월 5일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0803005_004, 확인날짜=2026-10-0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87권, 영조 32년 4월 14일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ua_13204014_001, 확인날짜=2026-10-01.
-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현종 3년 6월 14일, https://sjw.history.go.kr/id/SJW-C03060140-02500, 확인날짜=2026-10-0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68권, 선조 36년 11월 8일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kna_13611008_002, 확인날짜=2026-10-0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26권, 정조 12년 12월 1일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kva_11212001_001, 확인날짜=2026-10-01.
- ↑ 고명(高明), 《비파기(琵琶記)》 제21척; 이여진(李汝珍), 《경화연(鏡花緣)》 제46회.
- ↑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草根木皮”,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8D%89%E6%A0%B9%E6%9C%A8%E7%9A%AE, 확인날짜=202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