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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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진미(山海珍味)는 산과 바다에서 나는 온갖 진귀한 물건으로 차린, 맛이 좋은 음식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산짐승과 산나물, 바다의 물고기와 조개처럼 땅과 물에서 나는 귀한 재료를 다 모아 차린 호화로운 음식을 가리킨다. 잔칫상이나 연회의 풍성함을 나타낼 때 쓰고, 사치스러운 식생활을 꼬집는 문맥에서도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같은 뜻의 말로 산진해미(山珍海味), 산진해착(山珍海錯), 산진해찬(山珍海饌), 수륙진미(水陸珍味), 수륙진찬(水陸珍饌), 해륙진미(海陸珍味)를 들고, 비슷한 말로 고량진미(膏粱珍味), 용미봉탕(龍味鳳湯)을 든다.[1]
중국어에서는 ‘산(山)’과 ‘해(海)’를 각각 ‘진(珍)’, ‘미(味)’와 짝지은 ‘山珍海味(shān zhēn hǎi wèi)’가 표준 형태이고,[2] 일본어에서는 ‘山海の珍味(さんかいのちんみ)’라고 한다.[3]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 ‘산과 바다의 맛’이라는 표현은 중국 남조 시대부터 보인다. 양(梁)나라 간문제(簡文帝) 소강(蕭綱)은 〈칠려(七勵)〉에서 호화로운 요리를 늘어놓으며 “안주는 산과 바다의 맛을 다하였다(殽竭山海之味)”고 했다.[4]
중국에서는 그 뒤 ‘산진해미(山珍海味)’, ‘산진해착(山珍海錯)’이 굳었다. 《성어전》은 山珍海味의 용례로 《홍루몽(紅樓夢)》 제39회에서 유 노파가 “아가씨들은 날마다 산진해미를 먹어서 물렸을 테니”라고 하는 대목을 든다.[2]
지금 한국어와 같은 순서의 네 글자 ‘山海珍味’는 일본의 고대 문헌에서 이른 예가 보인다. 8세기 초에 편찬된 《히타치국 풍토기(常陸國風土記)》 구지군(久慈郡) 조는 미쓰키 마을(密筑里)의 샘가에 사람들이 술과 안주를 싸 들고 모여 노는 모습을 적은 뒤, 동남쪽 바닷가에는 전복과 조개가 많고 서북쪽 산에는 사슴과 멧돼지가 산다고 한 다음 이렇게 맺었다.
其東南臨海濱,石決明、棘甲蠃、魚貝等類甚多。西北帶山野,樵、檪、榧、栗生,鹿、猪住之。凡山海珍味,不可悉記。
“그 동남쪽은 바닷가에 닿아 전복과 소라, 물고기와 조개 따위가 매우 많다. 서북쪽은 산과 들을 끼고 있어 상수리나무, 비자나무, 밤나무 따위가 자라고 사슴과 멧돼지가 산다. 무릇 산과 바다의 진귀한 맛을 다 적을 수 없다.”
9세기 정사인 《속일본후기(續日本後紀)》 권19에도, 849년 닌묘(仁明) 천황의 마흔 살을 축하하여 사가(嵯峨) 태황태후가 보낸 예물을 늘어놓은 뒤 “무릇 산해진미가 수백 가지였다(凡厥山海珍味數百捧)”고 적은 대목이 있다.[6] 다만 《일본국어대사전》은 지금 일본어의 관용 표현 ‘山海の珍味’의 첫 용례로 교쿠테이 바킨(曲亭馬琴)의 《진세쓰 유미하리즈키(椿説弓張月)》(1807~1811)를 든다.[3]
고려 말 이색(李穡)의 시에 ‘산해진수(山海珍羞)’라는 비슷한 말이 보인다.[7] 그러나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한국고전종합DB 문집의 원문에서는 ‘山海珍味’ 네 글자가 검색되지 않는다.[8] 실록 국역문에는 산해진미가 세 번 나오지만, 원문은 각각 ‘수륙겸미(水陸兼味)’, ‘해착(海錯)’, ‘진미미찬(珍味美饌)’이다(아래 여담). 근대 문헌에서는 1907년 《대한자강회월보》 제10호에 실린 윤정원(尹貞媛)의 논설 〈헌신적 정신(獻身的精神)〉에 “金銀寶貝와 綾羅錦繡와 山海珍味가 俱備”라는 구절이 보이고,[9] 1920~1930년대 잡지와 신문에서는 흔히 쓰였다. 조선 시대에는 ‘수륙진미’나 ‘진수성찬’ 같은 말을 주로 쓰다가 근대 이후 산해진미가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인다.
| 언어 | 표현 | 비고 |
|---|---|---|
| 한국어 | 산해진미(山海珍味) | 산진해미, 수륙진미, 해륙진미도 같은 뜻 |
| 중국어 | 山珍海味(shān zhēn hǎi wèi) | 《성어전》 표제어. 山珍海錯이라고도 함 |
| 일본어 | 山海の珍味(さんかいのちんみ) | ‘の’를 넣어 말함 |
- 출시 기념 만찬에는 산해진미가 차려졌지만, 배포 장애 알림이 울리는 바람에 개발자들은 한 숟가락도 뜨지 못했다.
- 산해진미가 가득 놓인 식탁.[1]
- 《조선왕조실록》 국역문의 산해진미 세 건은 모두 번역자가 쓴 말이다. 1539년(중종 34) 기사의 “食前方丈,非水陸兼味,則不屑也(밥상이 한 길이나 되어도 물과 뭍의 맛을 다 갖추지 않으면 하찮게 여긴다)”를 국역문은 “산해 진미(山海珍味)가 아니면 대단찮게 여기고”로 옮겼다.[10] 1898년 최익현(崔益鉉)의 상소도 원문은 “외국에서 만든 음식은 비록 진미미찬이라도(夫外國所具之需,雖珍味美饌)”인데, 국역문은 이를 “비록 산해진미(山海珍味)라고 하더라도”로 옮겼다. 이 상소는 외국 음식은 “토산이 같지 않아 위의 기운이 상한다(土産不同,胃氣受損)”며 임금에게 조심하기를 청한 것이다.[11]
- ↑ 1.0 1.1 1.2 1.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산해진미”,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2%B0%ED%95%B4%EC%A7%84%EB%AF%B8, 확인날짜=2026-10-01.
- ↑ 2.0 2.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山珍海味”,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8195, 확인날짜=2026-10-01.
- ↑ 3.0 3.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 “山海の珍味”,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B1%B1%E6%B5%B7%E3%81%AE%E7%8F%8D%E5%91%B3, 확인날짜=2026-10-01.
- ↑ 양 간문제(簡文帝) 소강(蕭綱), 〈칠려(七勵)〉, 엄가균(嚴可均) 편 《전양문(全梁文)》 권11.
- ↑ 《히타치국 풍토기(常陸國風土記)》 구지군(久慈郡) 미쓰키 마을(密筑里) 조.
- ↑ 《속일본후기(續日本後紀)》 권19, 가쇼(嘉祥) 2년(849) 10월 계묘일 조.
- ↑ 이색(李穡), 《목은집(牧隱集)》 시고(詩藁) 권3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승정원일기 검색,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고전원문 검색 “山海珍味”, 확인날짜=2026-10-01.
- ↑ 윤정원(尹貞媛), 〈헌신적 정신(獻身的精神)〉, 《대한자강회월보》 제10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근현대잡지자료, ma_001_0100_0210, https://db.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90권, 중종 34년 5월 8일 을해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3405008_002, 확인날짜=2026-10-0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 38권, 고종 35년 12월 10일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za_13512010_002, 확인날짜=202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