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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맨 제도(Cayman Islands)는 카리브해 서부에 있는 영국의 해외 영토다. 그랜드케이맨, 케이맨브랙, 리틀케이맨의 세 섬으로 이루어지며, 수도는 그랜드케이맨섬의 조지타운이다. 전체 면적은 약 264km²로, 자메이카에서 북서쪽으로 약 290km 떨어져 있다.[1]

소득세, 법인세, 양도소득세 같은 직접세가 없어 세계에서 손꼽히는 조세 피난처이자 역외 금융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금융업과 관광업이 경제의 두 기둥이며, 카리브해 지역에서 1인당 소득이 가장 높다.[1][2]

1503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섬과 주변 바다에 거북이 가득한 것을 보고 이 섬들을 '라스 토르투가스'(Las Tortugas, 거북들)라 불렀다. 1523년 지도에는 큰 도마뱀이나 악어를 뜻하는 '라가르토스'(Lagartos)로 적혔고, 1530년 무렵부터는 '카이마나스'(Caymanas)라는 이름이 쓰였다. 이 이름은 이 섬에 살던 바다악어를 가리키는 카리브 원주민 말에서 왔다.[3]

한국어로는 '케이맨 제도'와 '케이먼 제도'가 함께 쓰인다.

케이맨 제도의 문장(紋章)은 영국을 뜻하는 금색 사자, 세 섬을 뜻하는 초록 별 세 개, 바다를 뜻하는 물결 무늬로 이루어진 방패 위에 밧줄 위의 초록 바다거북과 금색 파인애플을 올린 모양이다. 거북은 뱃사람의 역사를, 밧줄은 전통 초가 밧줄 산업을, 파인애플은 자메이카와의 관계를 나타낸다. 방패 아래의 표어 "그가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셨도다"(He hath founded it upon the seas)는 시편 24편에서 따왔다. 입법의회가 1957년 문장 제정을 승인했고, 1958년 5월 14일 국왕 칙허로 확정되었다. 깃발은 문장 직후인 1959년 채택되었으며, 육상용 파란 기와 해상용 빨간 기 두 가지가 있다.[4]

상징 내용
국가(國歌) 영국 해외 영토로서 「신이여 국왕을 지켜 주소서」(God Save the King)
공식 노래 「사랑하는 케이맨 섬」(Beloved Isle Cayman). 1930년 레일라 로스 시어가 지었고, 1993년 문장·깃발·국가 노래법으로 공식 노래가 됨
국조 케이맨 앵무새(쿠바앵무의 아종). 그랜드케이맨에 약 2000마리, 케이맨브랙에 약 400마리가 산다
국화 바나나 난초
국목 실버 대치(은빛 야자)

[4] 국조, 국화, 국목은 주민 투표를 거쳐 1996년 국가 상징법으로 정해졌다.[3]

세 섬은 벨리즈에서 쿠바 쪽으로 북동쪽으로 뻗은 해저 산맥이 바다 위로 드러난 봉우리다. 대체로 낮고 평평하며, 해안은 화석이 많은 석회암 지대(아이언쇼어)와 모래 해변이 섞여 있고 산호초로 둘러싸여 있다. 강은 없다.[1]

섬 면적 특징
그랜드케이맨 약 197km² 가장 크고 인구가 가장 많은 섬. 길이 약 35km, 가장 넓은 곳의 폭 약 13km
케이맨브랙 약 36km² 그랜드케이맨에서 북동쪽으로 약 143km. 섬 동쪽의 절벽(블러프)이 해발 약 42m로 제도에서 가장 높다
리틀케이맨 약 26km² 케이맨브랙 서쪽 약 8km. 가장 작은 섬

[1]

기후는 열대성으로 연평균 기온이 약 27°C이고, 5월 중순부터 10월까지가 우기다. 6월부터 11월까지는 허리케인이 올 수 있으며, 육지 면적의 3분의 1 가까이를 맹그로브 습지가 덮고 있다.[1]

그랜드케이맨에만 사는 블루 이구아나(Cyclura lewisi)는 2002년 야생 개체가 10~25마리밖에 남지 않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 목록에서 위급(CR) 등급이었다. 이후 복원 사업으로 야생 개체가 약 750마리로 늘어 2012년 위기(EN) 등급으로 한 단계 내려갔다.[5]

연도 사건
1503 콜럼버스가 네 번째 항해 중 케이맨브랙과 리틀케이맨을 처음 발견(5월 10일)
1586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함대 23척이 그랜드케이맨에 이틀간 머묾. 당시 섬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음
1661~1671 리틀케이맨과 케이맨브랙에 처음 정착촌이 기록됨. 스페인 사략선의 약탈 때문에 자메이카 총독이 정착민을 불러들임
1670 마드리드 조약으로 스페인이 자메이카와 케이맨 제도 등에 대한 잉글랜드의 주권을 인정
1734~1742 자메이카 총독이 그랜드케이맨에 다섯 차례 토지를 하사하며 노예를 쓰는 정착이 본격화
1794 '열 척의 난파'(Wreck of the Ten Sail). 자메이카에서 영국으로 가던 상선단 가운데 호위함 HMS 컨버트를 포함한 10척이 그랜드케이맨 동쪽 산호초에 좌초했고, 주민들이 구조에 나서 대부분 살아남음(2월 8일)
1802 첫 인구 조사. 그랜드케이맨 인구 933명 가운데 545명이 노예
1831 페드로 성에서 선출 의회를 만들기로 결정(12월 5일). 케이맨 의회 정치의 시작
1835 1833년 노예제 폐지법에 따라 자메이카 총독이 케이맨의 모든 노예 해방을 선포
1863 영국 의회 법률로 자메이카의 속령이 됨
1953 그랜드케이맨에 비행장 개장. 첫 상업 은행 바클레이스 개점
1959 첫 성문 헌법 제정. 여성 참정권 부여
1962 자메이카가 독립하자 영국 직할 식민지로 남기로 선택
1966 은행업 육성을 위한 법률 도입
1972 새 헌법 시행. 자체 통화 도입
1997 케이맨 제도 통화청(CIMA) 업무 시작, 케이맨 증권거래소 개장
2004 허리케인 이반이 그랜드케이맨을 강타(9월). 2명이 숨지고 약 28억 케이맨 달러의 피해
2009 현행 헌법 시행. 첫 총리(Premier) 임명
2020 헌법 개정으로 입법의회(Legislative Assembly)를 의회(Parliament)로 개칭

[3]

열 척의 난파 때 주민들의 구조에 감동한 조지 3세가 케이맨 사람들에게 영원히 세금과 징병을 면제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그런 칙령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20세기 중반까지 주민 대부분이 자급 농업과 어업, 외국 상선 선원 일로 살아가 세금을 걷을 거리가 별로 없었다는 설명이 더 현실적이다.[6] 1950년대까지도 정부 연례 보고서가 주요 수출품을 '선원'으로 적었을 만큼, 해외에서 일하는 선원들이 보내는 돈이 경제를 떠받쳤다.[6]

케이맨 제도는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로 하는 영국의 해외 영토로, 국왕이 임명한 총독이 국왕을 대리한다. 현행 헌법은 총독, 의회, 내각을 두며, 총독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내각의 조언을 따른다. 내각은 총리와 장관 7명, 표결권 없는 당연직 위원 2명으로 구성된다. 경찰, 공무원, 국방, 외교는 총독 소관이다.[3] 2023년 4월부터 제인 오언이 총독을 맡고 있다.[7]

의회는 단원제로, 19개 선거구에서 뽑는 의원 19명과 총독이 임명하는 당연직 의원 2명(법무장관, 부총독)으로 구성된다. 의회는 1831년 12월 처음 세워졌다.[8]

인구는 금융업과 관광업 성장과 함께 빠르게 늘었다. 외국인 노동자가 많아, 일하려면 고용주가 신청하는 취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연도 인구
1802 933명(그랜드케이맨)[3]
1970 10,249명[3]
1972 16,677명[3]
1989 25,355명[3]
1999 39,410명[3]
2026(추계) 91,362명[9]

주민의 약 5분의 1은 주로 영국계인 유럽계, 5분의 1은 아프리카 노예의 후손인 흑인, 5분의 2는 아프리카계와 유럽계 혼혈이다. 공용어는 영어다.[1]

조세 피난처와 역외 금융

편집 원본 편집

1985년 성인 남성에게 걷던 연 10케이맨 달러의 인두세를 없앤 뒤로 케이맨 제도에는 직접세가 없다. 소득세, 법인세, 상속세, 양도소득세, 증여세, 재산세가 없고, 정부 수입은 주로 수입 관세, 부동산 거래에 붙는 인지세(대부분 7.5%), 각종 수수료에서 나온다.[2]

직접세가 없고 금융 거래의 비밀을 보장하는 은행법 덕분에 세계 50대 은행 대부분을 포함한 수백 개의 은행과 신탁 회사가 이곳에 등록되어 있다.[1] 2016년 기준 케이맨 제도에 등록된 회사는 약 10만 개로 인구보다 많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조세 피난처를 비판하면서 조지타운의 어글랜드 하우스(Ugland House) 한 건물에 회사 1만 2000개가 등록되어 있다며 "가장 큰 건물이거나 가장 큰 세금 사기"라고 비판했는데, 실제로는 2만 개 가까운 회사가 그 건물을 주소로 두고 있었다.[10] 조세정의네트워크(Tax Justice Network)의 기업 조세 피난처 지수에서 케이맨 제도는 2025년 12월 기준 70개국 가운데 2위다.[11]

케이맨 정부는 스스로를 정치적 안정과 건전한 규제를 갖춘 국제 금융 중심지로 소개하며, 금융 서비스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밝힌다.[2]

관광업은 금융업과 함께 경제의 다른 축이다. 정부가 관광 진흥에 크게 투자해 관광객 수가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8배로 늘었다.[1] 그랜드케이맨 서해안의 세븐마일 비치, 가오리와 함께 헤엄칠 수 있는 스팅레이 시티, 난파선 다이빙 명소가 잘 알려져 있다.

통화는 케이맨 제도 달러로, 80케이맨 달러가 100미국 달러에 고정되어 있으며 미국 달러 지폐도 어디서나 받는다. 물품 대부분을 수입하므로 생활비가 미국이나 영국보다 비싸다.[2] 경제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3년 실질 GDP 성장률은 4.2%, 2023년 가을 실업률은 3.3%였다.[2]

케이맨 제도의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은 .ky로, 1995년 5월 3일 등록되었다.[12]

  • 이든 레이크: 영국과 케이맨 제도의 합작 영화로, 제작 국가에 케이맨 제도가 들어 있다.
  • 제5계급: 위키리크스의 첫 폭로 대상이 케이맨 제도 지점에서 불법 행위를 한 스위스 은행 율리우스 베어로 그려진다. 실제로 2008년 율리우스 베어는 위키리크스가 케이맨 제도 고객의 돈세탁과 탈세 정황이 담긴 문서를 공개하자 소송을 내 미국 법원에서 사이트 차단 명령을 받아 냈지만, 담당 판사는 2주 만에 이 명령을 거두어들였다.[13]
  1. ↑ 1.0 1.1 1.2 1.3 1.4 1.5 1.6 1.7 Cayman Islands, 브리태니커(웹 아카이브 보존본), 2026-10-11 확인.
  2. ↑ 2.0 2.1 2.2 2.3 2.4 Finance & Economy, 케이맨 제도 정부, 2026-10-11 확인.
  3. ↑ 3.0 3.1 3.2 3.3 3.4 3.5 3.6 3.7 3.8 History, 케이맨 제도 정부, 2026-10-11 확인.
  4. ↑ 4.0 4.1 National Symbols, 케이맨 제도 정부, 2026-10-11 확인.
  5. ↑ Grand Cayman Blue Iguana takes step back from extinction, 국제자연보전연맹, 2012-10-20.
  6. ↑ 6.0 6.1 History of the Cayman Islands, Explore Cayman, 2026-10-11 확인.
  7. ↑ Jane Owen, 영국 정부, 2026-10-11 확인.
  8. ↑ Parliament of the Cayman Islands, 케이맨 제도 의회, 2026-10-11 확인.
  9. ↑ The Economics and Statistics Office, 케이맨 제도 경제통계청, 2026-10-11 확인.
  10. ↑ The Cayman Islands - home to 100,000 companies and the £8.50 packet of fish fingers, 가디언, 2016-01-18.
  11. ↑ The Cayman Islands: Country Profile, Corporate Tax Haven Index, 2026-10-11 확인.
  12. ↑ .ky Domain Delegation Data, IANA, 2026-10-11 확인.
  13. ↑ Wikileaks back on the Web after judge ends injunction, InfoWorld, 2008-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