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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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세월(太平歲月)은 근심이나 걱정이 없는 편안한 시절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나라가 안정되어 백성이 편히 사는 시대를 가리키기도 하고, 걱정 없이 한가롭게 지내는 개인의 처지를 가리키기도 한다.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太平’과 ‘歲月’을 이어 붙인 말이다.
조선 시대 문헌에서는 ‘太平歲月’이 거의 쓰이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 원문과 한국고전종합DB의 문집 원문에서 이 네 글자는 검색되지 않는다.[6] 대신 조선 선비들은 ‘태평연월(太平煙月)’을 즐겨 썼다. 문집 원문에서 太平煙月은 60여 건이 검색되며, 김인후(金麟厚)는 벗에게 답한 시에서 “속세에 섞여 사니 알아주는 이 드물지만, 태평연월에 맑은 참됨을 지키네(混迹同塵知者鮮,太平煙月保淸眞)”라고 했다.[7]
한글로 쓴 ‘태평세월’은 근대 이후의 글에서 보인다. 예를 들어 이윤재(李允宰)는 1930년대 잡지 《별건곤》에 실은 〈을지문덕묘 참배기〉에서 이 말을 썼다.[8]
- 오랜 전쟁이 끝나고 백성들은 모처럼 태평세월을 누렸다.
- 보안 사고가 한 번도 없었다고 태평세월인 줄 알다가는, 첫 사고에 회사가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
- 시험이 코앞인데 게임만 하고 있으니 참 태평세월이다.
- 《조선왕조실록》 국역문에는 ‘태평 세월’이 여러 번 나오지만 원문의 다른 표현을 풀어 옮긴 것이다. 예를 들어 정종 1년(1399) 경상도 함양의 화척(禾尺) 매읍금(每邑金)의 아내가 세쌍둥이 아들을 낳자 서운관이 옛 글을 상고해 “한꺼번에 세 아들을 낳는 것은 태평 세월을 주장한다”고 아뢰었다는 국역문의 원문은 “一生三子主太平”이다.[9] 서운관은 또 다른 책에는 “3년이 지나지 않아 외국이 조공하러 온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태평세월”,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83%9C%ED%8F%89%EC%84%B8%EC%9B%94, 확인날짜=2026-10-10.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태평연월”,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83%9C%ED%8F%89%EC%97%B0%EC%9B%94, 확인날짜=2026-10-10.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太平盛世”,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1237, 확인날짜=2026-10-10.
- ↑ 《만수성전초집(萬壽盛典初集)》 권100.
- ↑ 조익(趙翼), 《구북집(甌北集)》 권53 〈용퇴(勇退)〉.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 원문 검색,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문집 원문 검색 “太平歲月”, 확인날짜=2026-10-10.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김인후, 《하서전집(河西全集)》 권10 〈사우(謝友)〉,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151A_0100_010_0130, 확인날짜=2026-10-10.
- ↑ 이윤재, 〈을지문덕묘 참배기〉, 《별건곤》 제34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s://db.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10.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종실록》 2권, 정종 1년 7월 15일 계미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kba_10107015_003, 확인날짜=2026-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