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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우제공(兄友弟恭)은 형은 아우를 사랑하고 아우는 형을 공경한다는 뜻으로, 형제 사이에 서로 우애 깊게 지냄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형제간의 도리를 형과 아우 양쪽에서 함께 말한 표현이다. 형에게는 아우를 아끼는 ‘우(友)’를, 아우에게는 형을 받드는 ‘공(恭)’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한쪽의 복종만을 말하지 않는다. 흔히 ‘부자자효(父慈子孝)’와 짝을 이루어 “부자자효 형우제공”처럼 화목한 집안을 묘사할 때 쓴다.

중국어에서도 같은 형태(xiōng yǒu dì gōng)로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형제 사이의 감정이 화목하여 서로 아끼고 존중할 수 있음(兄弟間感情和睦,能相互友愛尊敬)”으로 풀이한다.[2]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兄 형 형, 맏이 형
友 우 벗, 우애하다 (아우를) 아끼고 사랑하다
弟 제 아우 아우
恭 공 공손하다 (형을) 공경하다

‘형은 우애하고(兄友) 아우는 공경한다(弟恭)’는 두 주술 구조가 나란히 놓인 짜임이다. 友는 여기서 ‘벗’이 아니라 ‘형제끼리 사랑한다’는 동사로 쓰였다. 《춘추좌씨전》에서는 恭 대신 같은 뜻의 共을 썼다.

순임금의 ‘다섯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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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공(文公) 18년 조에 나오는 말이다. 노나라 계문자(季文子)가 태사 극(克)을 시켜 문공에게 아뢰게 한 말 가운데, 순(舜)이 요(堯)의 신하가 되어 고신씨의 뛰어난 아들 여덟, 곧 ‘팔원(八元)’을 등용해 사방에 다섯 가르침(五教)을 펴게 했다는 대목이다.[3]

舜臣堯,舉八愷,使主后土,以揆百事,莫不時序,地平天成。舉八元,使布五教于四方,父義,母慈,兄友,弟共,子孝,內平,外成。

[3]

“순이 요의 신하가 되어 팔개(八愷)를 등용해 땅의 일을 맡겨 온갖 일을 헤아리게 하니 때에 맞지 않는 일이 없어 땅이 다스려지고 하늘이 이루어졌다. 팔원을 등용해 사방에 다섯 가르침을 펴게 하니, 아버지는 의롭고 어머니는 자애로우며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하며 자식은 효성스러워, 안이 평안하고 밖이 이루어졌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권1 〈오제본기(五帝本紀)〉는 같은 이야기를 옮기면서 共을 恭으로 바꾸어 “父義,母慈,兄友,弟恭,子孝,內平外成”이라고 적었다.[4] 오늘날의 ‘兄友弟恭’은 이 글자를 따른 것이다. 《성어전》도 〈오제본기〉의 이 구절을 첫 용례로 든다.[2]

《서경(書經)》 〈순전(舜典)〉에는 순이 설(契)에게 사도(司徒)를 맡기며 “다섯 가르침을 공경히 펴라(敬敷五教)”고 하는 말이 있다.[5] 이 ‘오교’를 무엇으로 볼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전통이 있었다. 《좌전》을 따르는 쪽은 아버지·어머니·형·아우·자식의 다섯 도리(父義·母慈·兄友·弟恭·子孝)로 보았고, 《서경》 주석 계통에서도 오전(五典)·오교를 이렇게 풀이했다.[6] 반면 《맹자》 〈등문공 상〉은 설이 가르친 인륜을 부자유친·군신유의·부부유별·장유유서·붕우유신의 다섯으로 들었고, 주희(朱熹)가 이것을 ‘오교의 조목’으로 내건 뒤로는 이쪽이 널리 퍼졌다.[7] 형우제공은 앞의 전통에서 나온 말로, 집안 안의 다섯 관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오륜과 다르다.

네 글자를 붙여 쓴 예는 송나라 이후 흔하다. 북송의 소옹(邵雍)은 〈군자음주음(君子飮酒吟)〉에서 “아버지는 자애롭고 아들은 효성스러우며,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하며, 집집이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하며, 때가 고르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父慈子孝,兄友弟恭,家給人足,時和歲豐)”고 읊었다.[8]

한국에서의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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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이색(李穡)은 청성군 한공의(韓公義)의 묘지명에서 그가 형제 가운데 둘째로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하여 당시 사람들이 그를 흠모했다(兄友弟恭。時人慕之)”고 적었다.[9]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兄友弟恭이 2건 보인다.[10] 1419년(세종 1) 변계량(卞季良)이 지은 〈낙천정기(樂天亭記)〉는 상왕 태종이 낙천정에서 술자리를 베풀 때 세종이 곁에서 모시는 모습을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하며, 아버지는 자애롭고 아들은 효성스러워 화락하다(兄友弟恭,父慈子孝,愉愉如也)”고 그렸다.[11] 1526년(중종 21) 권균(權鈞)은 경연에서 예악이 조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며 “부자자효·형우제공으로 한 집안이 화목한 것은 예악이 집안에서 행해지는 것”이라고 아뢰었다.[12]

아동 교재 《동몽선습(童蒙先習)》도 첫머리에서 오륜을 든 뒤 “아버지는 자애롭고 자식은 효도하며, 임금은 의롭고 신하는 충성하며, 남편은 화합하고 아내는 순종하며,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경하며, 벗은 서로 인을 돕고 난 뒤에야 사람이라 할 수 있다(父慈子孝。君義臣忠。夫和婦順。兄友弟恭。朋友輔仁。然後方可謂之人矣)”고 했다.[13] 오륜의 장유유서 자리에 형제 관계를 넣어 말한 것이다.

  • 두 형제는 어려서부터 형우제공하여 동네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 형우제공이라 했으니, 형이 먼저 아우를 아끼면 아우도 형을 존중하게 된다.
  • 공동 창업한 형제는 지분 문제로 다투는 대신 역할을 나누어 형우제공의 본을 보였다.
  • 명나라와 청나라의 향음주례(鄕飮酒禮)에서는 사정(司正)이 술잔을 들고 “어른과 아이에게 차례가 있고,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하라(長幼有序,兄友弟恭)”는 권계문을 읽게 되어 있었다.[14]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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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자자효(父慈子孝): 어버이는 자애롭고 자식은 효성스러움.
  • 장유유서(長幼有序):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음. 오륜의 하나.
  • 반대: 골육상쟁(骨肉相爭): 뼈와 살이 서로 다툰다는 뜻으로, 형제나 같은 민족끼리 서로 해치며 싸움.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형우제공”,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8%95%EC%9A%B0%EC%A0%9C%EA%B3%B5, 확인날짜=2026-10-03.
  2. ↑ 2.0 2.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兄友弟恭”,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8310, 확인날짜=2026-10-03.
  3. ↑ 3.0 3.1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공(文公) 18년.
  4. ↑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권1 〈오제본기(五帝本紀)〉.
  5. ↑ 《서경(書經)》 〈순전(舜典)〉; 사마천, 《사기》 권1 〈오제본기〉.
  6. ↑ 위료옹(魏了翁), 《상서요의(尙書要義)》(사고전서본) 권4; 사마광(司馬光), 《계고록(稽古錄)》 권3 주.
  7. ↑ 《맹자(孟子)》 〈등문공 상(滕文公上)〉; 주희(朱熹), 〈백록동서원게시(白鹿洞書院揭示)〉.
  8. ↑ 소옹(邵雍), 〈군자음주음(君子飮酒吟)〉, 《격양집(擊壤集)》(사고전서본) 권16.
  9. ↑ 이색(李穡), 〈중대광청성군한시평간공묘지명(重大匡淸城君韓諡平簡公墓誌銘)〉, 《목은고(牧隱藁)》,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03.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兄友弟恭”,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3.
  1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5권, 세종 1년 9월 4일 병오 10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0109004_010, 확인날짜=2026-10-03.
  1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57권, 중종 21년 5월 12일 갑오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2105012_001, 확인날짜=2026-10-03.
  13. ↑ 박세무(朴世茂), 《동몽선습(童蒙先習)》.
  14. ↑ 《명회전(明會典)》(사고전서본) 권78; 《흠정대청회전(欽定大淸會典)》(사고전서본) 권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