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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계남(洪季男, 1563?~1597)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 홍언수(홍자수)와 형들과 함께 경기도 안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경기·충청 일대에서 일본군을 막은 의병장으로, 뒤에 수원 판관과 영천 군수를 지냈다. 본관은 남양이다.

태어난 해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563년, 국가유산청은 1564년으로 적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와 형 넷과 함께 안성에서 의병을 모아 여러 고을을 오가며 공을 세웠고, 첨지로 승진했다. 다른 진에 연락하러 간 사이 아버지가 일본군을 치다 전사하자, 돌아와 의병의 선두에 서서 높은 곳에 성을 쌓고 적을 살피며 유격전을 벌였다.[1]

  • 안성 일대 방어 - 안성 남쪽 목촌 마을 옆 산에 진을 치고 성루를 쌓았다고 전하며, 죽산·양지·용인 등에 머무는 일본군을 기습했다. 이 공으로 수원 판관에 올라 경기·충청 두 도의 조방장을 겸했다.[2]
  • 남부 전선 - 1593년에는 군사를 이끌고 전라·경상도로 나아가 이빈·선거이 등과 함께 운봉·남원·진주·구례·경주 등지에서 싸웠다.
  • 이몽학의 난 - 1596년 충청도에서 일어난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했다.[1]
  • 오희문의 『쇄미록』은 그가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을 쳐 '홍 장군'이라 불리며, 호서(충청도)가 평안할 수 있었던 것이 모두 그의 공이라고 적었다.

1745년(영조 21) 그의 군대가 머물던 옛 성루 터에 '홍계남 장군 고루비'를 세웠다(경기도 안성).

임진왜란 의병장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인물 근거지 주요 활동
홍계남 경기도 안성 아버지·형들과 의병, 경기·충청 방어, 수원 판관
조헌 충청도 옥천 청주성 수복, 금산에서 700의사와 전사
고경명 전라도 담양 6천 의병, 금산에서 전사
곽재우 경상도 의령 홍의 장군, 정암진 전투
  1. ↑ 1.0 1.1 홍계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8 확인.
  2. ↑ 홍계남장군고루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10-2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