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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치상지(黑齒常之, ?~689)는 백제의 달솔이자 풍달군장으로, 660년 백제가 무너진 뒤 임존성을 근거로 부흥군을 일으켜 200여 성을 되찾았으나 663년 무렵 당에 항복했고, 이후 당의 장수로 이름을 떨치다 모함을 받아 죽었다.

백제 서부 사람으로 키가 7척이 넘고 날래며 꾀가 많았다. 백제의 제2관등인 달솔로 풍달군의 장수를 겸했다.[1]

백제 부흥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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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소정방이 백제를 평정하자 거느린 무리와 함께 항복했다. 그러나 소정방이 늙은 왕(의자왕)을 가두고 군사를 풀어 마구 약탈하자, 두려워 측근 우두머리 10여 명과 함께 달아나 흩어진 사람들을 모아 임존산(지금의 충남 예산 대흥)에 의지해 버텼다. 열흘이 안 되어 3만 명이 모였고, 소정방이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했다. 마침내 200여 성을 되찾았다.[1]

부흥 운동의 중심이던 주류성이 663년 9월 무렵 함락되고 지도부가 분열하자, 당 고종의 회유를 받아 유인궤에게 항복했다. 이후 당의 편에 서서 임존성 함락을 도왔다. 끝까지 임존성을 지키던 지수신은 고구려로 달아났다.[2]

부여융과 함께 당에 들어갔다가, 664년 부여융이 웅진도독이 되어 돌아올 때 함께 와서 웅진성을 지켰다. 웅진도독부가 신라에 밀려난 뒤 다시 당으로 가서 토번과 돌궐을 치는 데 공을 세워 연연도대총관·연국공에 이르렀다. 689년 측천무후 때 주흥 등의 모함으로 옥에 갇혔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하를 아끼고 상으로 받은 재물을 모두 나누어 주어, 사람들이 그의 억울한 죽음을 슬퍼했다. 698년 아들 흑치준의 노력으로 누명을 벗었다.[2]

중국 뤄양에서 그와 아들 흑치준의 묘지명이 나와 생애를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백제 부흥 운동의 인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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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활동
복신·도침 주류성을 중심으로 부흥 운동, 왕자 부여풍을 왕으로 맞음
흑치상지 임존성에서 부흥군을 이끌다 당에 항복
부여풍 왜에서 돌아와 왕이 됨, 백강 전투 패배 뒤 고구려로 달아남
지수신 마지막까지 임존성을 지킴

자세한 경과는 백제 부흥 운동 문서에 있다.

  1. ↑ 1.0 1.1 『삼국사기』 권44 열전 흑치상지 원문.
  2. ↑ 2.0 2.1 흑치상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