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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런던 폭탄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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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런던 폭탄 테러(7 July 2005 London bombings)는 2005년 7월 7일 아침 출근 시간에 영국 런던의 지하철 열차 세 대와 2층 버스 한 대에서 자살 폭탄이 잇따라 터진 테러 사건이다. 날짜를 따서 7·7 테러(7/7)라고도 부른다.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진 영국 청년 네 명이 배낭에 넣은 사제 폭탄을 터뜨려, 범인을 뺀 52명이 숨지고 700명 넘게 다쳤다. 1988년 로커비 상공의 팬암 103편 폭파 이후 영국에서 일어난 가장 큰 테러였고, 영국 최초의 이슬람주의 자살 폭탄 공격이었다. 2주 뒤인 7월 21일에는 같은 방식의 두 번째 테러가 시도됐으나 폭탄이 터지지 않았고, 그 이튿날 경찰이 무고한 브라질인을 용의자로 오인해 사살하는 사건까지 이어졌다.

전날인 2005년 7월 6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는 파리를 누르고 런던을 2012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뽑았다.[1] 테러 당일에는 스코틀랜드 글렌이글스에서 G8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었다.[2] 영국은 미국과 함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고 있었고, 범인들이 남긴 영상도 이 점을 공격 이유로 들었다.

네 범인은 새벽에 리즈와 에일즈버리에서 차를 몰고 루턴역에 모였고, 루턴에서 기차를 타고 킹스 크로스역에 내린 뒤 흩어져 각자 다른 노선에 올랐다.[2] 지하철 세 곳은 오전 8시 50분 무렵 거의 동시에 터졌고, 버스는 약 한 시간 뒤인 9시 47분에 터졌다.[2]

시각 장소 노선·차량 범인 사망(범인 포함) 부상
08:50경 리버풀 스트리트역~올드게이트역 사이 터널 서클선 동쪽 방향 열차 셰흐자드 탄위르 8 171
08:50경 에지웨어 로드역 근처 서클선 서쪽 방향 열차 모하마드 시디크 칸 7 163
08:50경 킹스 크로스역~러셀 스퀘어역 사이 터널 피카딜리선 남쪽 방향 열차 저메인 린지 27 340 이상
09:47 태비스톡 광장 30번 2층 버스 위층 하시브 후사인 14 110 이상

표의 사망·부상 수는 영국 정부 공식 보고서 기준이다.[2]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은 피카딜리선이었다. 깊은 곳을 지나는 좁은 단선 터널이라 폭발 압력이 빠져나가지 못했고, 첫 칸에만 127명이 타고 있을 만큼 붐볐다.[2] 처음에 런던 지하철 운영사는 전력 이상으로 인한 폭발로 판단했고, 열차가 역과 역 사이에서 터지면서 양쪽 역으로 부상자가 나오는 바람에 폭발이 여섯 곳에서 일어났다는 잘못된 보도도 나왔다.[3] 오전 9시 19분 지하철 전 노선에 경보가 내려져 열차 운행이 멈췄다.[3]

버스 범인 후사인은 킹스 크로스역을 빠져나와 다른 범인들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되지 않았고, 이후 지하철 운행 중단으로 승객이 몰린 30번 버스에 올랐다. 공식 보고서는 그의 폭탄이 왜 8시 50분에 함께 터지지 않았는지 끝내 밝히지 못했다.[2] 버스는 영국의사협회 본부 앞에서 지붕이 날아갔고, 건물 안에 있던 의사와 의료진이 곧바로 응급 처치에 나섰다.[4][5]

폭탄은 진한 과산화수소와 후추를 섞은 사제 폭약을 배낭에 넣은 것이었고, 검시 조사에서 리즈의 한 셋집이 폭탄 공장으로 쓰였다는 사실이 공개됐다.[6] 정부는 범행 전체 비용을 8,000파운드가 안 되는 것으로 추산했고, 외부 자금의 증거는 없었다.[2]

범인을 뺀 희생자는 52명이다. 모두 영국에 살던 사람이었지만 국적과 출신은 다양해, 영국 태생 32명 외에 폴란드인 3명과 아프가니스탄, 프랑스, 가나, 인도, 이란, 이스라엘, 이탈리아, 케냐, 나이지리아, 루마니아, 스리랑카, 튀르키예 등 여러 나라 출신이 있었다. 나이는 20~60세였다.[7][8]

이름 나이 거주지 공격 장소
모하마드 시디크 칸 30 웨스트요크셔 듀즈버리 에지웨어 로드
셰흐자드 탄위르 22 리즈 비스턴 올드게이트
하시브 후사인 18 리즈 비스턴 태비스톡 광장 버스
저메인 린지 19 버킹엄셔 에일즈버리 러셀 스퀘어

칸, 탄위르, 후사인은 파키스탄계 이민자 2세로 영국에서 태어나 리즈의 비스턴 일대에서 자랐다. 린지는 1985년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건너온 이슬람 개종자였다. 우두머리는 초등학교 보조교사이자 청소년 지도사로 일하던 칸이었다.[2][9]

동기와 알카에다 연관

편집 원본 편집

2005년 9월 1일 아랍 방송 알자지라가 칸의 영상을 내보냈다. 칸은 서방 정부가 무슬림에게 잔학 행위를 저지르고 있고 이를 지지하는 시민도 책임이 있다며 "우리는 전쟁 중이고 나는 군인"이라고 말했고,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과 아이만 알자와히리를 영웅으로 불렀다.[10] 1주기 하루 전인 2006년 7월 6일에는 탄위르의 영상이 공개됐는데, 알카에다 2인자 알자와히리의 성명이 함께 담겨 있어 알카에다 배후설의 근거로 거론됐다. 다만 두 영상이 나중에 편집해 붙인 것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11]

영국 정부 공식 보고서는 칸과 탄위르가 2004~2005년 파키스탄에 다녀오면서 알카에다 관계자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지만, 알카에다가 어디까지 관여했는지는 분명하지 않고 범행은 스스로 자금을 마련한 소규모 조직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2][12]

7월 21일 테러 미수와 오인 사살

편집 원본 편집

2주 뒤인 7월 21일 낮, 셰퍼즈 부시역, 워런 스트리트역, 오벌역의 지하철과 해거스턴의 26번 버스에서 다시 폭탄 테러가 시도됐다. 이번에는 기폭 장치만 터지고 본 폭약은 터지지 않아 사망자가 없었고, 범인들은 현장에서 달아났다.[13] 무크타르 사이드 이브라힘 등 네 명은 2007년 7월 살인 공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최소 40년을 복역해야 하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14][15]

용의자를 쫓던 7월 22일, 런던 경찰청 무장 경찰이 스톡웰역 지하철 안에서 브라질인 전기 기술자 장 샤를 드 메네지스를 용의자로 잘못 알고 머리에 일곱 발, 어깨에 한 발을 쏴 숨지게 했다.[16] 경찰관 개인은 기소되지 않았고, 2008년 12월 검시 배심원단은 불법 살해로 판단하지 않는 '판단 유보(open verdict)' 평결을 내렸다.[17]

  • 교통: 사건 당일 런던 중심부의 지하철과 1구역 버스가 멈췄다. 버스는 오후 4시에 다시 다니기 시작했고, 피해 구간의 지하철은 8월 4일에야 모두 복구됐다.[18]
  • 금융 시장: FTSE 100 지수는 첫 폭발 뒤 두 시간 동안 약 200포인트 떨어졌다가 1.36% 하락으로 장을 마쳤고, 이튿날 회복했다.[19]
  • 검시 조사: 정부는 공개 조사(public inquiry)를 거부했고, 대신 2010년 10월부터 헤더 핼릿 판사가 맡은 독립 검시 조사가 열렸다. 2011년 5월 6일 핼릿 판사는 52명이 불법 살해됐으며 구조가 더 빨랐어도 목숨을 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정보기관 MI5가 칸을 더 주목했어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아울러 9개 개선 권고를 냈다.[20][21]

2009년 7월 7일 하이드 파크에 희생자 52명을 하나씩 기리는 높이 3.5m의 스테인리스강 기둥 52개로 된 추모비가 세워졌고,[22] 2018년에는 버스 폭발 현장인 태비스톡 광장에도 추모비가 생겼다.[23]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도 희생자를 기렸다. 2025년 7월 7일에는 20주기 추모 예배가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열렸다.[24]

  • 네 얼간이: 셰필드의 어설픈 지하드 지망생들이 런던 마라톤을 노리는 풍자 코미디다. 감독 크리스 모리스는 조사가 이 테러 이전부터 시작됐지만, 테러 뒤 영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문제의 중심이 되면서 탐구가 두 겹이 됐다고 말했다.
  1. ↑ London beats Paris to 2012 Games, BBC Sport, 2005-07-06.
  2. ↑ 2.0 2.1 2.2 2.3 2.4 2.5 2.6 2.7 2.8 Report of the Official Account of the Bombings in London on 7th July 2005 (HC 1087), 영국 하원, 2006-05-11.
  3. ↑ 3.0 3.1 Tube log shows initial confusion, BBC News, 2005-07-12.
  4. ↑ In a day of awfulness, we were lucky to do some good, BBC News, 2015-07-07.
  5. ↑ Bus 'ripped apart' in explosion, BBC News, 2005-07-07.
  6. ↑ July 7 bomb factory revealed at inquest, 가디언, 2011-02-01.
  7. ↑ 7/7 attacks: The victims of the London bombings, BBC News, 2011-01-25.
  8. ↑ The 52 victims of the 7/7 bombings remembered, 인디펜던트, 2015-07-06.
  9. ↑ Image of bombers' deadly journey, BBC News, 2005-07-17.
  10. ↑ London bomber: Text in full, BBC News, 2005-09-01.
  11. ↑ Video of London bomber released, 가디언, 2006-07-06.
  12. ↑ Leak reveals official story of London bombings, 옵서버(가디언), 2006-04-09.
  13. ↑ 21 July: Attacks, escapes and arrests, BBC News, 2007-07-11.
  14. ↑ Four guilty over 21/7 bomb plot, BBC News, 2007-07-10.
  15. ↑ Patient wait for life behind bars, BBC News, 2007-07-11.
  16. ↑ Police shot Brazilian eight times, BBC News, 2005-07-25.
  17. ↑ Open verdict at Menezes inquest, BBC News, 2008-12-12.
  18. ↑ London bombings of 2005, 영국 교통경찰, 2026-10-11 확인.
  19. ↑ U.S. Stocks Rise, Erasing Losses on London Bombings, 블룸버그, 2005-07-07.
  20. ↑ 7/7 inquests: Emergency delays 'did not cause deaths', BBC News, 2011-05-06.
  21. ↑ 7/7 bombs acts of 'merciless savagery', inquests told, BBC News, 2010-10-11.
  22. ↑ Tributes paid at 7 July memorial, BBC News, 2009-07-07.
  23. ↑ 7/7 London bombings: Memorial for bus explosion victims unveiled, BBC News, 2018-09-12.
  24. ↑ Thousands of petals fall in St Paul's to remember 52 victims of July 7 bombings, ITV News, 2025-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