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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强首, ?~692)는 신라 중대의 학자이자 문장가로,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 때 당과 주고받는 외교 문서를 맡아 삼국 통일에 공을 세웠다.

중원경(지금의 충주) 사량 사람으로, 아버지는 나마 석체이다. 머리 뒤에 뼈가 튀어나와 있어 '강수'라 불렸다고 한다. 가야계 출신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1]

  • 외교 문서 - 태종 무열왕이 즉위했을 때 당의 사신이 가져온 국서에 어려운 대목이 있었는데, 강수가 막힘없이 풀이했다. 왕이 크게 기뻐하며 그의 고향을 묻고 "임생"이라 부르며 높였다. 이후 당·고구려·백제와 주고받는 외교 문서를 도맡았다. 당에 갇힌 김인문을 풀어 달라고 청한 「청방인문표」가 대표 작품이다.
  • 통일의 공 - 문무왕은 "강수가 문장으로 통일에 이바지한 공이 크다"며 사찬 벼슬과 녹봉을 더했다.
  • 유학 - 불교 중심이던 신라에서 "불교는 세상을 벗어난 가르침"이라며 유학을 택해 『효경』·『곡례』·『이아』·『문선』 등을 공부했다.

신라의 학자·승려와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활동 인물
청방인문표 등 외교 문서 작성 강수
이두 정리, 화왕계를 지어 신문왕에게 조언 설총
인도를 순례하고 『왕오천축국전』을 씀 혜초
향가 모음집 『삼대목』 편찬 위홍·대구화상 (→ 삼대목)
『화랑세기』·『고승전』 저술 김대문
시무 10여 조 건의, 『계원필경』 최치원
  1. ↑ 강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