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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조의 정변(康兆의 政變, 1009)은 고려 목종 12년 서북면 도순검사 강조가 군사를 이끌고 개경에 들어와 김치양 일파를 없애고 목종을 폐위한 뒤 대량원군을 왕(현종)으로 세운 사건으로, 거란이 2차 침입을 하는 구실이 되었다.

목종이 18세로 즉위하자 어머니 헌애왕후가 천추태후라 일컬으며 섭정했고, 그와 가까운 외척 김치양이 벼슬을 쥐고 흔들었다. 1003년 천추태후와 김치양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자 두 사람은 아들이 없는 목종의 뒤를 이 아이에게 잇게 하려 했다. 태조의 손자인 대량원군 왕순은 이들의 견제를 받아 강제로 승려가 되어 신혈사에 머물며 여러 번 목숨을 위협받았다.[1]

  • 목종의 대응 - 1009년 궁궐에 불이 나 목종이 병석에 눕자, 목종은 채충순 등과 의논해 대량원군을 신혈사에서 맞아 오게 하고 서북면의 강조에게 올라와 호위하라고 명했다.
  • 강조의 거병 - 강조는 오던 길에 왕이 죽었다는 헛소문을 듣고 돌아갔다가, 군사 5,000명을 이끌고 다시 개경으로 향했다. 왕이 살아 있음을 알았으나 목종이 있는 한 김치양 일파를 없앨 수 없다고 보고 왕을 바꾸기로 했다.
  • 폐립 - 강조의 군대가 궁궐에 들어오자 목종은 법왕사로 물러났고, 대량원군이 즉위해 현종이 되었다. 김치양 부자와 유행간 등 7명이 처형되고, 그 일당과 천추태후의 친속 30여 명이 섬으로 유배되었다.[2]
  • 목종 시해 - 폐위된 목종은 천추태후와 함께 충주로 쫓겨 가던 중 적성에서 강조가 보낸 사람에게 살해되었다. 천추태후는 황주로 가서 여생을 마쳤다.[1]

거란은 자신들이 책봉한 목종을 신하가 죽였다는 것을 구실로 1010년 고려에 2차 침입을 했다. 강조는 통주에서 거란군에 패해 붙잡혀 죽었고, 현종은 나주까지 피난했다(→ 고려 거란 전쟁). 이 정변은 왕실의 기강을 바로잡았다는 평가가 있는 한편, 김치양의 반란 기록이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들어 이를 강조가 아닌 현종 세력이 주도한 정변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1]

  1. ↑ 1.0 1.1 1.2 강조의 정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김치양이 모반을 도모하다가 강조에 의해 처형당하다, 『고려사』 권127 열전 반역 김치양,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