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경천사지 십층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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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경천사지 십층 석탑(開城 敬天寺址 十層石塔)은 1348년(충목왕 4) 개풍군 부소산 경천사에 세운 고려 후기의 대리석 탑으로, 원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모습이며 일제 강점기 일본에 무단 반출되었다가 돌아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안에 서 있다.

우리나라 석탑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나 이 탑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1층 몸돌에 새긴 글에 따르면 1348년 3월 세웠고, 진녕부원군 강융과 원에서 출세한 환관 고용봉(고용보) 등이 시주가 되어 원 황제와 황태자·황후의 만수무강을 빌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원의 승상 탈탈이 경천사를 원찰로 삼고 강융이 원에서 장인을 데려와 탑을 만들었다는 말을 전하고, 조선 성종 때 채수는 기황후의 원찰이라 적어, 탑을 세운 주체에 대해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1]
- 반출(1907) - 1907년 순종의 가례에 특사로 온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아키가 탑을 탐냈고, 고종이 거절했는데도 며칠 뒤 일본인들이 무기를 들고 와 탑을 해체해 가져갔다.
- 반환(1918) - 대한매일신보 등이 거듭 보도하고 헐버트와 베델이 영자 신문으로 부당함을 알렸으며, 헐버트는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 때 현지 신문에 이를 폭로했다. 1918년 11월 15일 돌려받았으나 훼손이 심해 경복궁 회랑에 쌓아 두었다.
- 복원 - 1959~1960년 복원해 경복궁에 세웠고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산성비와 시멘트 풍화로 상하자 1995년 다시 해체해 보존 처리했고,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실내에 다시 세웠다.[1][2]
| 탑 | 시기 | 특징 |
|---|---|---|
| 개성 경천사지 십층 석탑 | 고려 후기(1348) | 대리석, 원의 영향, 아(亞) 자형 기단 |
|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 석탑 | 고려 전기 | 다각 다층탑, 송의 영향 |
| 서울 원각사지 십층 석탑 | 조선 세조(1467) | 경천사지 탑을 본뜬 대리석 탑 |
| 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 | 백제 | 목탑 양식을 따른 석탑 |
다른 탑은 한국의 석탑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