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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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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扶餘 定林寺址 五層石塔)은 충청남도 부여 정림사 터에 남아 있는 백제 사비 시기의 석탑으로,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지금까지 전하는 단 두 기의 백제 석탑 가운데 하나이다.

538년 성왕이 도읍을 사비(지금의 부여)로 옮긴 뒤 도성 한가운데에 세운 정림사의 탑이다. 높이는 8.33m이고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정림사는 중문·탑·금당·강당이 남북 일직선에 놓인 1탑 1금당식 가람이었으며, 탑은 금당 앞마당 중앙에 선다.[1]

  • 목탑을 돌로 옮긴 모습 - 나무로 짓던 탑의 짜임을 돌로 재현했다. 기둥에 배흘림을 주고, 기둥 위에 받침돌을 얹었다.
  • 얇고 넓은 지붕돌 - 지붕돌(옥개석)이 얇고 넓게 뻗었으며 처마 끝이 살짝 들려 경쾌하다.
  • 낮은 단층 기단 - 기단이 낮고 단순해 신라 석탑의 이중 기단과 다르다.
  • 정제된 비례 - 각 층이 위로 갈수록 알맞게 줄어들어 안정감과 세련미를 함께 갖췄다. 미륵사지 석탑이 목탑의 부재를 그대로 옮긴 초기 모습이라면, 정림사지 탑은 그것을 석탑의 형식으로 다듬은 완성된 모습으로 본다.

평제탑과 정림사라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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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나당 연합군이 사비성을 함락한 뒤, 당의 장수 소정방은 이 탑 1층 탑신 네 면에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을 새겨 백제를 평정한 공을 기렸다. 이 때문에 한때 평제탑(平濟塔)이라고 잘못 불렸다. 1942년 절터를 발굴할 때 '태평 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太平八年戊辰定林寺大藏當草)라고 새긴 기와가 나왔다. 태평 8년은 고려 현종 19년(1028)으로, 고려 때 이 절이 정림사로 불렸음을 알게 되어 지금의 이름이 붙었다. 절터에는 고려 때 만든 정림사지 석조 여래 좌상도 남아 있다.[1]

다른 석탑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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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탑
소정방이 백제 평정 글귀를 새김(평제탑), 사비 도성의 백제 탑 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
현존 가장 큰 백제 석탑, 639년 사리봉영기 출토 익산 미륵사지 석탑
4각 기단과 8각 탑신이 어우러진 특이형 탑, 불국사 경주 불국사 다보탑 (통일 신라)
네 마리 사자가 탑신을 받침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 석탑 (통일 신라)
벽돌로 쌓은 5층 탑, 지린성 창바이 영광탑 (발해)
8각 9층, 송 양식의 다각 다층탑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 석탑 (고려)

각 탑의 자세한 내용은 한국의 석탑에 정리했다.

  1. ↑ 1.0 1.1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