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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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檢閱, censorship)은 국가나 단체가 말, 글, 출판물, 방송, 영화, 예술 작품 같은 표현물의 내용을 심사해 공개를 막거나 고치게 하는 일이다. 대상이 되는 표현을 해롭거나 불온하거나 불편하다고 보는 것이 그 근거가 된다.
검열의 주체는 주로 정부지만 종교 단체, 기업, 언론사, 업계 단체가 하기도 하며, 작가나 언론인이 처벌이나 불이익을 피하려고 스스로 표현을 줄이는 것은 '자기검열'이라고 한다. 국가안보, 공공질서, 미풍양속, 청소년 보호, 명예 보호 같은 이유를 내세우지만, 권력에 대한 비판을 막는 수단으로 쓰여 온 역사가 길다. 대한민국 헌법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와 검열을 금지한다.
일상에서 '검열'은 표현에 대한 간섭 전반을 가리키지만, 법에서 말하는 검열은 더 좁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21조 제2항이 금지하는 검열을 "행정권이 주체가 되어 사상이나 의견 등이 발표되기 이전에 예방적 조치로서 그 내용을 심사, 선별하여 발표를 사전에 억제하는, 즉 허가받지 아니한 것의 발표를 금지하는 제도"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검열에 해당하려면 다음 네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보았다.[1]
| 요건 | 내용 |
|---|---|
| 제출 의무 | 허가를 받기 위해 표현물을 미리 제출해야 한다. |
| 행정권의 사전 심사 | 행정권이 주체가 된 사전 심사 절차가 있다. |
| 미허가 표현 금지 | 허가받지 않은 표현은 발표할 수 없다. |
| 강제 수단 | 심사 절차를 관철할 처벌 같은 강제 수단이 있다. |
이에 따라 법원의 판결이나 가처분으로 표현물을 막는 것, 이미 발표된 표현물을 사후에 규제하는 것, 공개 자체는 허용하면서 관람 연령만 나누는 등급 분류는 헌법이 금지하는 검열이 아니다.[1] 또 심의 기관이 형식상 민간 위원회라도 행정권이 그 구성에 계속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실질적으로 행정기관으로 본다.[1]
| 종류 | 내용 |
|---|---|
| 정치적 검열 | 정부나 체제에 대한 비판, 반대 세력의 주장을 막는다. |
| 종교적 검열 | 교리에 어긋나거나 신성모독으로 보는 표현을 막는다. |
| 도덕적 검열 | 음란하거나 풍속을 해친다고 보는 표현을 막는다. |
| 군사 검열 | 전시에 작전, 병력 이동 같은 정보가 적에게 새지 않도록 보도와 편지를 통제한다. |
| 기업 검열 | 언론사나 플랫폼이 자기 회사나 광고주에 불리한 내용을 빼거나 막는다. |
| 자기검열 | 처벌, 소송, 불이익을 피하려고 표현하는 사람이 스스로 내용을 줄인다. |
대상 매체에 따라 출판 검열, 언론 검열, 영화 검열, 음반 검열, 인터넷 검열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기록에 남은 가장 유명한 고대 사례는 소크라테스다. 그는 청년을 타락시키고 나라가 인정하지 않는 신을 섬긴다는 이유로 기원전 399년 사형 판결을 받았다.[2] 동아시아에서는 진시황의 분서갱유, 중국 왕조의 문자옥처럼 국가가 사상과 서적을 통제한 사례가 잘 알려져 있다.
1644년 영국 시인 존 밀턴은 출판 허가제를 되살린 의회의 1643년 출판허가령에 반대하는 글 《아레오파기티카》를 발표해 사전 허가 없이 출판할 자유를 주장했다.[4] 1766년 스웨덴은 처음으로 법으로 검열을 폐지하고 출판의 자유를 보장했으며, 덴마크·노르웨이가 1770년 뒤를 이었다.[2] 1791년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의회가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 수 없다고 정했다.
1948년 유엔 총회가 채택한 세계인권선언 제19조는 모든 사람이 의견과 표현의 자유를 가지며, 이 권리에는 간섭받지 않고 의견을 가질 자유와 국경에 관계없이 정보와 사상을 구하고 받고 전할 자유가 포함된다고 밝혔다.[5]
1915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뮤추얼 필름 대 오하이오주 산업위원회' 사건에서 영화 상영은 순전히 영리 사업이라며 언론의 자유로 보호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7] 이후 여러 주가 영화 검열 위원회를 두자, 할리우드 제작사들은 주마다 다른 검열을 피하려고 자율 규제를 택했다.
1930년 제작사 단체(MPPDA)는 예수회 신부 대니얼 로드 등이 쓴 '영화 제작 강령'(Motion Picture Production Code)을 채택했다. 단체 회장 윌 헤이스의 이름을 따 '헤이스 코드'라고도 한다. 강령은 1934년부터 조지프 브린이 이끄는 제작강령관리국(PCA)이 대본과 필름을 사전에 심사하면서 엄격하게 적용되었고, 범죄, 성, 마약, 욕설, 종교 모독 등의 묘사를 제한했다.[8]
1952년 연방대법원은 '조지프 버스틴 대 윌슨' 사건에서 영화도 수정헌법 제1조의 보호를 받는 표현이라고 판결을 바꾸었다.[9] 텔레비전과 외국 영화의 영향으로 강령의 힘은 점점 약해졌고, 1968년 미국영화협회(MPAA) 회장 잭 밸런티는 강령을 폐지하고 관람 연령 등급제로 바꾸었다.[8]
| 시기 | 주요 내용 |
|---|---|
| 일제강점기 | 조선총독부가 국내외 모든 영화를 상영 전에 검열했고, 상영장에는 경찰이 입회했다. 1930년대 들어 검열이 더 엄격해졌고 일부 영화는 상영 금지되어 폐기되었다. 1942년에는 한국어 영화 제작이 금지되었다.[10] |
| 1962년~ | 박정희 정부가 영화법을 제정해 영화사를 통폐합하고 영화 산업 전반을 통제했다.[10] 시나리오를 사전에 심사받고, 완성된 영화도 다시 심사를 받아 승인된 대본과 같은지 확인받아야 했다.[11] |
| 1970년대 | 저항과 시위를 다루거나 정치·사회 현실을 사실대로 그리는 내용이 주요 삭제 대상이었다.[11] 1975년에는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외국 저항가요, 포크, 록 음악 상당수의 방송과 판매를 금지했다.[12] |
| 1984년 | 영화법 개정으로 공연윤리위원회가 영화 사전 심의를 맡았다. 심의를 받지 않은 영화는 상영할 수 없었고, 어기면 형사처벌을 받았다.[1] |
| 1988년 이후 | 새 헌법 시행 뒤 정치적 검열이 조금씩 완화되었다.[10] |
| 1996년 | 헌법재판소가 공연윤리위원회의 영화 사전 심의를 위헌으로 결정했다. 같은 해 음반 사전 심의도 위헌 결정을 받았다.[1][13] |
| 1998년 | 비디오물 사전 심의 위헌 결정.[14] |
| 2001년 |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분류 보류' 제도도 사실상 검열이라는 위헌 결정.[15] |
| 2008년 | 비디오물 등급분류 보류 위헌 결정(10월),[16] '제한상영가' 등급 규정 헌법불합치 결정(7월).[17] |
박정희 정부 시기 영화인들은 시나리오 단계와 완성 단계에서 두 번 심의를 받아야 했다. 1950~1980년대에 활동한 김수용 감독은 2019년 기자회견에서 "1958년 첫 작품을 만든 뒤로 정부에 잘려 나간 내 필름을 이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닿을 것"이라고 말했고, 검열이 없었다면 한국 영화가 30~50년 일찍 발전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장호 감독도 자신의 영화 대부분이 여러 차례 가위질을 거쳐 상영되었다고 회고했다.[18] 한국영상자료원은 2019년 한국 영화 검열 100년의 역사를 정리한 전시를 열었다.[18]
공연윤리위원회는 형식상 민간 자율기구였지만 위원을 문화부 장관이 위촉했고, 심의 결과를 장관에게 보고했으며 국가 예산의 보조를 받았다. 헌법재판소는 이 점을 들어 공연윤리위원회를 검열기관으로 판단했다.[1] 영화법 제13조는 "헌법의 기본질서에 위배되거나 국가의 권위를 손상할 우려가 있을 때", "국민정신을 해이하게 할 우려가 있을 때" 등을 심의 불합격 사유로 정해 두어, 해당 부분을 잘라 내야 상영할 수 있었다.[1]
그 뒤에도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 분류를 둘러싼 갈등은 이어졌다. 등급을 매기지 않고 미루는 '등급분류 보류'는 사실상 상영 금지로 작동했다. 1999년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은 두 차례 보류된 끝에 여러 장면을 자르고서야 18세 관람가를 받았고, 《노랑머리》도 한 차례 보류된 뒤 일부 장면을 삭제·수정해 개봉했다. 왕자웨이의 《해피 투게더》는 1997년 보류되었다가 삭제판으로 개봉했다.[19] 헌법재판소는 2001년 등급분류 보류가 검열에 해당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15]
지금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체관람가, 12세이상관람가, 15세이상관람가, 청소년관람불가, 제한상영가 다섯 등급이 있다.[20] 제한상영가 영화는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할 수 있는데 이런 극장이 사실상 없어, 제작사가 장면을 잘라 등급을 낮추는 일이 생긴다. 등급 분류 기관은 직접 장면을 자를 권한이 없지만, 원하는 등급을 받으려면 어떤 장면을 고쳐야 하는지 업계와 비공식적으로 협의해 왔다는 지적도 있다.[19]
권위주의 정권은 대개 신문과 방송을 먼저 통제한다. 대한민국에서도 국가보안법은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하는 표현을 처벌해 정부 비판을 막는 수단으로 쓰였다는 비판을 받았고, 1980년 전두환 정부는 언론사를 통폐합하고 언론인 937명을 해직시켰다.[21] 소련에서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 이전까지 공산당이 모든 보도를 지휘했다.
오늘날에는 노골적인 사전 검열 대신 명예훼손 소송, 정보 접근 제한, 언론사 지배구조를 이용한 압박 같은 간접 방식이 문제로 꼽힌다. 국경없는기자회는 해마다 세계 언론자유지수를 발표해 나라별 언론 환경을 평가한다.[22]
인터넷이 퍼지면서 국가는 특정 사이트 접속 차단, 검색 결과 필터링, 게시물 삭제 요구 같은 방식으로 온라인 표현을 통제한다. 중국의 이른바 '만리방화벽'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법·유해 정보에 대해 접속 차단과 삭제 등 시정 요구를 하며, 2019년부터는 서버 이름 표시(SNI) 정보를 이용해 해외 불법 사이트를 차단하기 시작했다.[23]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단체들은 행정기관이 법원의 판단 없이 온라인 표현을 차단하는 데 우려를 나타낸다.
모든 표현 규제가 검열은 아니다. 다음은 넓은 의미로 '검열'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법적으로는 구별된다.
- 등급 분류: 공개는 허용하고 관람 연령만 나누는 제도. 다만 등급 거부나 보류는 검열이 될 수 있다.[15]
- 사후 규제: 이미 공개된 표현물이 법을 어겼을 때 처벌하거나 유통을 막는 것.
- 법원의 판단: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법원이 내리는 출판·방송 금지 가처분.
- 민간 플랫폼의 운영 정책: 사업자가 자기 서비스의 게시물 기준을 정하는 것. 다만 영향력이 큰 플랫폼의 결정은 '민간 검열'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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