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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에서 넘어옴)

경부 고속 도로(京釜高速道路)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고속 도로로, 박정희 정부가 1968년 2월 착공해 1970년 7월 7일 전 구간 428km를 개통했으며, 수출 주도 공업화를 뒷받침한 국토의 대동맥이 되었다.

1968년 12월 수원~오산 구간 개통(경기도청)

박정희는 1964년 서독을 방문했을 때 아우토반을 보고 고속 도로 건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1967년 국가 기간 고속 도로 건설 계획 조사단을 꾸려 계획을 세웠고, 현대건설의 정주영 등과 공사비를 검토해 예산을 정했다. 자동차가 적고 나라 살림이 넉넉지 않은 때여서 "부유층의 유람 도로가 될 것"이라는 반대 여론도 거셌다.[1]

  • 착공과 구간 개통 - 1968년 2월 1일 서울에서 기공식을 열었다. 1968년 12월 서울~수원~오산 구간이 먼저 열렸고, 1969년 오산~천안, 천안~대전, 대구~부산 구간이 차례로 개통되었다.
  • 난공사 구간 - 노선을 정하는 데 가장 애를 먹은 대전~대구 구간(약 152km)은 교통량이 적고 산이 험해 처음에 2차로로 구상했다가 1968년 10월 당재·황간·추풍령을 지나는 4차로로 확정했다. 1969년 1월 공사를 시작한 이 구간이 1970년 7월 7일 개통되면서 전 구간이 이어졌다.[2] 국가기록원의 다른 해설에는 대구~부산 구간이 마지막으로 완공되었다고 적힌 곳도 있어 기록 사이에 차이가 있다.
  • 규모 - 총공사비는 용지비와 부대비를 합쳐 약 430억 원으로, 1km당 1억 원이 넘었다. 연인원 약 900만 명이 동원되었고 공사 중 77명이 목숨을 잃었다. 추풍령 휴게소의 준공 기념탑은 이들을 기린 것이다.[3]
  • 서울과 부산 사이가 4시간대로 가까워져 '일일 생활권'이라는 말이 생겼다.
  • 고속 도로를 따라 공업 단지가 들어서면서 수출 상품과 원자재를 실어 나르는 산업의 동맥이 되었다. 이후 고속 도로망 확충의 출발점이 되었다.
  • 개통일인 7월 7일은 '도로의 날'로 지정되었다.

같은 시기 경제 개발의 상징물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실 시기
경부 고속 도로 개통 1970년(제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마산 수출 자유 지역 지정 1970년
포항 종합 제철 1기 설비 착공·준공 1970년 착공, 1973년 준공
수출 100억 달러 달성 1977년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 제정 1999년(김대중 정부)
  1. ↑ 기록으로 보는 대한민국: 경부고속도로, 국가기록원, 2026-10-19 확인.
  2. ↑ 경부고속도로 건설: 대전~대구 구간, 국가기록원, 2026-10-19 확인.
  3. ↑ 경부고속도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