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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개발 5개년 계획(經濟開發五個年計劃, 1962~1981)은 정부가 5년 단위로 경제 성장의 목표와 투자 방향을 정해 추진한 국가 경제 계획으로, 1962년 제1차 계획부터 1981년 제4차 계획까지 이어지며 수출 주도 공업화와 중화학 공업화를 이끌었다.

경제 개발 계획의 구상은 이승만 정부 말기와 장면 내각 때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장면 내각은 1961년 무렵 5개년 계획안을 만들었으나 5·16 군사 정변으로 실행하지 못했다. 군사 정부는 이 안을 바탕으로 계획을 고쳐 1962년 1월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실행에 옮겼다. 1982년 제5차부터는 이름을 '경제 사회 발전 5개년 계획'으로 바꾸었고, 1990년대 신경제 5개년 계획으로 이어졌다.[1]

  • 제1차(1962~1966) - 전력·석탄 등 에너지원 확보, 기간산업과 사회 간접 자본 확충, 수출 증대를 내세웠다. 울산을 공업 지구로 지정해 정유·비료 공장을 세웠다. 연평균 성장률은 7.8%로 목표를 넘었고, 1966년 수출은 약 2억 5,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 제2차(1967~1971) - 식량 자급, 철강·기계·화학 공업 육성, 수출 증진과 수입 대체를 목표로 했다. 섬유·합판·가발 같은 경공업 제품 수출이 크게 늘어 1971년 수출 10억 달러를 넘었고, 연평균 성장률은 9.7%였다. 1970년 경부 고속 도로가 개통되었고, 같은 해 1월 수출 자유 지역 설치법이 만들어져 3월 마산이 수출 자유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포항 종합 제철 1기 설비도 1970년 착공되어 1973년 준공되었다.[2]
  • 제3차(1972~1976) - 1973년 중화학 공업화를 선언하고 철강·조선·전자·화학 공업을 집중 육성했다. 석유 파동 속에서도 1976년 수출이 78억 달러로 늘었다.
  • 제4차(1977~1981) - 중화학 공업 중심의 공업화를 이어 가며 사회 개발과 형평을 목표에 넣었다. 1977년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했으나 과잉 투자와 1979년 제2차 석유 파동으로 1980년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겪었다.
  • 외자 의존 - 투자 재원의 상당 부분을 외국 차관에 기댔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로 받은 청구권 자금과 베트남 파병에 따른 미국의 지원·특수가 공업화 자금으로 쓰였다.
  • 불균형 - 고속 성장 속에서 외채가 늘고, 농업이 뒤처져 도농 격차가 커졌으며, 저임금·장시간 노동이 이어졌다. 이에 1970년부터 농촌의 새마을 운동이 추진되었다.

시기별 경제 정책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실 시기
원조 물자를 가공하는 삼백 산업(제분·제당·면방직) 이승만 정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안 작성, 국토 건설 사업 장면 내각
제1~4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경부 고속 도로, 마산 수출 자유 지역, 포항 종합 제철 박정희 정부
3저 호황(저유가·저금리·저달러), 무역 흑자 전두환 정부
금융 실명제, 외환 위기로 IMF 구제 금융 요청 김영삼 정부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 제정, 외환 위기 극복 김대중 정부
  1. ↑ 경제개발계획,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산업 발전 연표, 국가기록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