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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金大中政府, 1998~2003)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여야 간 정권 교체를 이룬 김대중이 집권한 정부로, 스스로 '국민의 정부'라 부르며 외환 위기를 극복하고 햇볕 정책으로 첫 남북 정상 회담과 6·15 남북 공동 선언을 이끌어 냈다.

김대중은 1997년 12월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정치 국민 회의 후보로 자유 민주 연합과 연대해 당선되었고, 1998년 2월 취임했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와 겨루었고, 1973년 일본에서 납치되었으며, 1980년 내란 음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는 등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을 이끈 야당 지도자였다. 2000년 남북 정상 회담과 민주주의·인권을 위한 노력으로 한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1]

외환 위기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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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조 조정 - 국제 통화 기금(IMF)의 요구에 따라 금융 기관과 기업의 구조 조정, 시장 개방을 밀어붙였다.
  • 노사정 위원회(1998) - 노동자·사용자·정부 대표가 모여 고통 분담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정리 해고와 근로자 파견제가 도입되었다.
  • 금 모으기 운동 - 국민이 금붙이를 내놓아 외화 마련을 도왔다.
  • 2001년 8월 23일 IMF에서 빌린 돈을 모두 갚았다. 구제 금융을 신청한 지 3년 8개월 만으로, 예정보다 3년 가까이 앞당긴 것이다(→ 1997년 외환 위기).
  •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 - 1999년 제정해 2000년 10월부터 시행했다. 소득이 최저 생계비에 못 미치는 국민에게 생계·주거·교육·의료 등을 국가가 보장하는 제도이다.
  • 2003년 2월 칠레와 첫 자유 무역 협정(FTA)에 서명했다. 국회 비준을 거쳐 2004년 4월 노무현 정부 때 발효되었다.
  • 2001년 여성부를 신설했고, 2002년 일본과 함께 월드컵 축구 대회를 열었다.

대북 화해 협력 정책(햇볕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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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강산 관광 - 1998년 정주영 현대 그룹 명예 회장이 소 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방북한 뒤, 같은 해 11월 바닷길로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었다.
  • 남북 정상 회담(2000년 6월) -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 위원장과 분단 뒤 첫 정상 회담을 열고 6·15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 남측 연합제 안과 북측 낮은 단계 연방제 안의 공통성 인정, 이산가족 문제 해결, 경제 협력을 통한 교류 활성화 등을 담았다.[2]
  • 후속 교류 - 2000년 8월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고, 경의선 철도 복구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개성 공업 지구 개발에 합의했다. 개성 공단 착공(2003)과 가동은 다음 노무현 정부 때 이루어졌다.
  • 정책의 원칙과 평가는 햇볕 정책, 회담과 선언의 내용은 6.15 남북 공동 선언·남북 정상 회담 문서에 있다.

다른 정부의 정책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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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부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 시행, 6·15 남북 공동 선언, 금강산 관광 시작 김대중 정부
금융 실명제, IMF에 구제 금융 요청(1997) 김영삼 정부
개성 공단 착공, 개성에 남북 경제 협력 협의 사무소 설치, 10·4 남북 정상 선언 노무현 정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남북 기본 합의서 노태우 정부
7.4 남북 공동 성명 박정희 정부
  1. ↑ 김대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6·15 남북 공동 선언, 우리역사넷(사료로 본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