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담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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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준론(高談峻論)은 뜻이 높고 바르며 엄숙하고 날카로운 말, 또는 아무 거리낌 없이 잘난 체하며 과장하여 떠벌리는 말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2]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고담(高談)’과 ‘준론(峻論)’을 이어 붙인 말로, 네 글자 ‘高談峻論’은 중국 문헌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조선 문헌에서만 보인다. 한국에서 굳은 형태로 보인다.
확인되는 이른 용례는 곽진(郭𡺽, 1568~1633)의 《단곡집(丹谷集)》 〈사우록(師友錄)〉이다. 풍기의 선비 남𣽤을 소개하면서 “학식이 넓고 문장이 크며, 고담준론으로 한 세상에 우뚝 서서 만 사람도 그를 꺾지 못했다(博學宏詞。高談峻論。獨立一世。萬夫莫回)”고 하였다.[3] 여기서는 꿋꿋하고 날카로운 논의를 높이 사는 말이다.
18세기 들어서는 당론을 앞세운 강경한 주장을 꾸짖는 말로 자주 쓰였다. 《승정원일기》에는 1729년(영조 5) 영조가 “충역(忠逆)을 말하는 것으로도 부족해 또 《춘추》 대의를 말하니, 이 같은 고담준론은 결코 듣고 싶지 않다(如此高談峻論,固不欲聞之矣)”고 한 말이 실려 있다.[4]
1737년(영조 13) 이현필(李顯弼)이 과거 답안에 쓴 글이 문제가 되자, 영조는 그를 용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5]
布衣之士,看作好事,高談峻論,自以爲名士,而鄕人隨而效之,此固近日弊習。
“벼슬하지 않은 선비들이 일 만들기를 좋아해 고담준론을 하며 스스로 명사인 양 여기고, 시골 사람들이 따라서 이를 본받으니, 이것이 참으로 요즘의 나쁜 습속이다.”
1751년(영조 27)에는 도제조 김약로(金若魯)가 “대저 고담준론을 하면 자기들 사이에서 명망이 한 층 더해지므로 이런 일이 왕왕 있다(大抵高談峻論,則自中物望加一層)”고 아뢰었다.[6] 강경한 주장으로 자기 당파 안에서 이름을 얻으려는 풍조를 꼬집은 것이다. 같은 시기 오원(吳瑗)도 벗에게 보낸 편지(1722)에서 “고담준론은 우리도 면하지 못할까 두렵다(高談峻論。亦恐躬不能免也)”며 스스로를 경계했다.[7]
- 중국어에서는 高談闊論(gāotán kuòlùn)을 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에 따르면 《동관한기(東觀漢記)》 〈조근전(趙勤傳)〉의 “高譚清論”에서 비롯해, 당나라 여암(呂巖, 여동빈)의 시 “高談闊論若無人”에서 지금 형태가 처음 보인다. 본래는 식견 높고 폭넓은 담론을 뜻했으나, 나중에는 거리낌 없이 떠들거나 알맹이 없이 거창하게 늘어놓는 말을 뜻하게 되었다.[10] 칭찬에서 비판으로 옮겨 간 흐름이 고담준론과 닮았다.
-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飲中八仙歌)〉에는 “초수는 닷 말 술을 마셔야 비로소 꼿꼿해져, 고담웅변으로 온 좌석을 놀라게 한다(焦遂五斗方卓然,高談雄辯驚四筵)”는 구절이 있다.[11]
- 일본어의 高談(こうだん)은 “거리낌 없이 큰 소리로 이야기함” 또는 남의 이야기를 높여 이르는 말로 쓰인다.[12]
- 보안 사고가 터진 뒤에는 고담준론보다 당장 막아야 할 취약점 목록이 더 급하다.
- 회의 내내 클라우드 전환의 철학에 대한 고담준론만 오가고, 정작 일정과 예산은 정하지 못했다.
- 노학자의 고담준론에 젊은 연구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 ↑ 1.0 1.1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고담준론”,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query=%EA%B3%A0%EB%8B%B4%EC%A4%80%EB%A1%A0, 확인날짜=2026-10-11.
- ↑ 2.0 2.1 2.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고담준론”,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3%A0%EB%8B%B4%EC%A4%80%EB%A1%A0, 확인날짜=2026-10-11.
- ↑ 곽진(郭𡺽), 〈사우록(師友錄)〉, 《단곡집(丹谷集)》 권5.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772A_0060_030_0090, 확인날짜=2026-10-11.
- ↑ 승정원일기, 영조 5년 5월 1일 을사 32번째 기사, https://sjw.history.go.kr/id/SJW-F05050010-03200, 확인날짜=2026-10-1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43권, 영조 13년 4월 29일 정해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ua_11304029_001, 확인날짜=2026-10-1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74권, 영조 27년 10월 10일 계묘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ua_12710010_001, 확인날짜=2026-10-11.
- ↑ 오원(吳瑗), 〈답원화백(答元華伯) 임인〉, 《월곡집(月谷集)》 권11.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515A_0110_010_0080, 확인날짜=2026-10-11.
-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근현대잡지자료, 장지연(張志淵), 〈국가빈약지고(國家貧弱之故)〉, 《대한자강회월보》 제7호, ma_001_0070_0020, https://db.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11.
- ↑ 조선총독부 편, 《조선어사전(朝鮮語辭典)》(1920),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컬렉션, https://dl.ndl.go.jp/pid/1761833, 확인날짜=2026-10-11.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高談闊論”,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697, 확인날짜=2026-10-11.
- ↑ 두보(杜甫), 〈음중팔선가(飲中八仙歌)〉.
- ↑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 “高談”,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AB%98%E8%AB%87, 확인날짜=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