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기복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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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복례(克己復禮)는 자기의 욕심을 누르고 예의범절을 따름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공자(孔子)가 제자 안연(顏淵)에게 인(仁)이 무엇인지 설명하며 한 말로 알려져 있다.
《논어(論語)》 〈안연(顏淵)〉 편의 첫 장에 나온다.[5]
顏淵問仁。子曰:「克己復禮爲仁。一日克己復禮,天下歸仁焉,爲仁由己,而由人乎哉?」顏淵曰:「請問其目。」子曰:「非禮勿視,非禮勿聽,非禮勿言,非禮勿動。」顏淵曰:「回雖不敏,請事斯語矣!」
“안연이 인을 묻자 공자가 말했다.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하루라도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간다. 인을 행하는 것은 자기에게서 비롯되는 것이지, 남에게서 비롯되겠는가?’ 안연이 ‘그 조목을 여쭙고자 합니다’ 하자 공자가 말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마라.’ 안연이 말했다. ‘제가 비록 총명하지 못하나 이 말씀을 받들어 힘쓰겠습니다.’”
공자가 가장 아낀 제자 안연에게 인을 설명한 대목이라, 《논어》에서 인을 말한 여러 장 가운데서도 특히 중시되었다. 뒤에 나오는 ‘네 가지 하지 말 것’을 흔히 사물(四勿)이라 부른다.
‘극기복례’라는 말 자체는 공자 이전부터 있던 말로 보인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12년 조에는 초나라 영왕(靈王)이 욕심을 이기지 못해 건계(乾谿)에서 화를 입은 이야기 끝에 공자의 평이 실려 있다.[6]
仲尼曰:「古也有志:克己復禮,仁也。信善哉!楚靈王若能如是,豈其辱於乾谿?」
“공자가 말했다. ‘옛날 기록에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라고 했다. 참으로 좋은 말이다. 초나라 영왕이 이렇게 할 수 있었다면 어찌 건계에서 욕을 당했겠는가.’” 영왕은 신하가 들려준 시를 듣고 감동해 며칠 동안 먹지도 자지도 못했지만 끝내 스스로를 이기지 못했다(數日不能自克,以及於難)고 《좌전》은 적는다.[6] 이에 따르면 공자는 옛 기록(志)에 있던 말을 끌어다 안연에게 인을 설명한 셈이다.
‘극기’를 어떻게 읽느냐를 두고 해석이 갈렸다. 후한의 마융(馬融)은 “극기는 몸을 단속하는 것(克己,約身也)”이라 했고, 공안국(孔安國)은 “復은 돌아간다는 뜻(復,反也)”이라고 풀었다.[7] 남송의 주희(朱熹)는 《논어집주》에서 “극은 이긴다는 뜻이고, 기는 몸의 사사로운 욕심을 이른다. 복은 돌아간다는 뜻이다. 예는 천리의 절문(節文)이다(克,勝也。己,謂身之私慾也。復,反也。禮者,天理之節文也)”라고 하여, 사욕을 이기고 천리로 돌아가는 수양으로 풀었다.[8] 일본 《세계대백과사전》도 옛 훈독은 ‘제 몸을 삼가 예를 행한다’였는데 주희가 己를 사욕으로, 禮를 천리로 보아 해석을 바꾸었다고 설명한다.[4]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 “자기의 욕심을 누르고”는 주희의 해석을 따른 것이다.
북송의 정이(程頤)는 네 가지 ‘하지 말 것’을 두고 〈시잠(視箴)〉·〈청잠(聽箴)〉·〈언잠(言箴)〉·〈동잠(動箴)〉의 사잠(四箴)을 지었다. 조선 건국 직후인 1399년(정종 1) 중추원 학사 이첨(李詹)은 경연에서 《논어》의 극기복례 장을 진강하고 정자의 사잠을 좌우에 써 두고 보시라고 청해 윤허를 받았다.[9]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克己復禮가 30건 보인다.[10]
- 그는 극기복례를 좌우명으로 삼아 화가 나도 먼저 한 번 숨을 고른다.
- 운영자 권한이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설정을 바꾸지 않고 변경 관리 절차를 따르는 것도 일종의 극기복례이다.
- 극기복례는 남을 탓하기 전에 자기부터 다스리라는 가르침이다.
-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에 린뱌오(林彪)가 공자의 ‘극기복례’를 여러 차례 족자로 써 둔 일이 1974년의 비림비공(批林批孔) 운동에서 공격 대상이 되었다. 중국 공산당 당사 연구 기관은 장칭(江靑) 일파가 이 일을 특히 중시해 ‘극기복례’ 비판으로 린뱌오 비판과 공자 비판을 하나로 엮으려 했다고 설명한다.[11]
- 눈·귀·입을 가린 일본의 ‘세 원숭이(三猿, 見ざる·聞かざる·言わざる)’를 《논어》의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라”와 연결 짓는 설명이 있다. 천태종 지관(止觀)의 가르침에서 나왔다는 설도 함께 전한다.[12][13][14]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극기복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7%B9%EA%B8%B0%EB%B3%B5%EB%A1%80, 확인날짜=2026-10-03.
-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극복”,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query=%EA%B7%B9%EB%B3%B5&dicType=1, 확인날짜=2026-10-03.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克己復禮”,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0112, 확인날짜=2026-10-03.
- ↑ 4.0 4.1 4.2 4.3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克己復礼”,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85%8B%E5%B7%B1%E5%BE%A9%E7%A4%BC, 확인날짜=2026-10-03.
- ↑ 5.0 5.1 《논어(論語)》 〈안연(顏淵)〉.
- ↑ 6.0 6.1 6.2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12년.
- ↑ 하안(何晏) 등, 《논어집해(論語集解)》 〈안연〉 마융·공안국 주; 배인(裴駰), 《사기집해(史記集解)》 권67 〈중니제자열전〉 인용.
- ↑ 주희(朱熹), 《논어집주(論語集注)》 〈안연〉.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종실록》 1권, 정종 1년 1월 9일 경진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ba_10101009_002,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克己復禮”,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3.
- ↑ 中共中央党史和文献研究院, “‘批林批孔’運動和毛澤東批評‘四人幫’”, https://www.dswxyjy.org.cn/BIG5/n/2013/0111/c244520-20169552.html, 확인날짜=2026-10-03.
- ↑ 참고: 栃木県立図書館, “日光東照宮の三猿について、「見ざる聞かざる言わざる」以外の解説があると聞いた。”, 국립국회도서관 레퍼런스 협동 데이터베이스, https://crd.ndl.go.jp/reference/entry/index.php?id=1000200417&page=ref_view, 확인날짜=2026-10-03.
- ↑ 참고: “「申」vol.3 三猿があらわす人の叡智”, 井筒授与品店 칼럼, https://juyohinten.izutsu.co.jp/column/46/, 확인날짜=2026-10-03.
- ↑ 《브리태니커 국제대백과사전 소항목사전(ブリタニカ国際大百科事典 小項目事典)》, “三猿”,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8%89%E7%8C%BF,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