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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단결 선언(大同團結宣言, 1917)은 1917년 7월 상하이에서 신규식·박은식·신채호·조소앙 등 14명이 발표한 선언으로, 순종(융희 황제)이 주권을 포기한 것은 국민에게 주권을 넘겨준 것이라는 국민 주권론을 내세우고 독립운동 세력이 모여 임시정부를 세우자고 제창했다.

1917년 7월 상하이에서 발표된 대동단결 선언 문서

1910년대 중반 독립운동은 큰 벽에 부딪쳤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러시아와 일본이 손을 잡으면서 연해주의 권업회·대한 광복군 정부가 해체되었고, 1915년 상하이·베이징에서 이상설·신규식·박은식 등이 고종을 받들어 망명 정부를 세우려 한 신한 혁명당의 계획도 실패했다. 1917년 3월 러시아 2월 혁명으로 군주정이 무너지고 핀란드·폴란드 같은 약소민족이 독립과 임시정부 수립에 나서자, 신규식을 중심으로 한 상하이의 독립운동가들은 군주를 앞세우는 노선을 버리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부를 세우자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1]

  • 주권 양도론 - 1910년 융희 황제가 주권을 포기한 날은 곧 국민에게 주권을 넘겨준 날이라고 보았다. 주권은 민족 고유의 것이어서 남에게 넘길 수 없으므로, 일본의 강점은 무효이며 주권은 국민이 이어받았다는 논리이다.
  • 임시정부 제창 - 국내에서 주권을 행사할 수 없으니 해외 동포가 대표를 뽑아 민족 대회의를 열고, 모든 독립운동을 이끌 최고 기관인 임시정부를 세우자고 했다.
  • 발기인 - 신규식·박은식·신채호·조소앙·신석우·박용만·윤세복·한진교 등 14명이 이름을 올렸다.[2]

선언문은 미주의 『신한민보』 등을 통해 해외 동포 사회에 널리 알려졌으나 당장 정부 수립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독립운동의 목표를 군주제 회복에서 국민 주권의 공화국 건설로 바꾸어 놓았고, 1919년 민주 공화제를 내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지는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 독립기념관은 이 선언을 임시정부 수립의 뜻을 담은 최초의 문건으로 평가한다.[2]

1910년대 독립 선언·단체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문서·단체 때 내용
신한 혁명당 1915 고종을 받든 망명 정부 계획(보황주의)
대동단결 선언 1917 국민 주권론, 임시정부 수립 제창
대한 독립 선언서 1919.2 만주 지린에서 39명 명의, 무장 투쟁 강조(조소앙 기초)
2·8 독립 선언 1919.2 도쿄 유학생
대한민국 임시정부 1919.4 상하이에서 민주 공화제 정부 수립
  1. ↑ 대동단결선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2.0 2.1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탄생, 월간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2026-10-19 확인.